젊은 연구자들의 "청춘 스케치"

연구의 맛과 멋을 배우는 젊은 연구자들이 실험실에서, 연구실에서, 그리고 사회와 만남에서 얻는 에피소드와 경험, 그리고 생활의 단상을 전합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시작

'청춘 스케치' 연재를 마감하며


"…아직도 저는 젊고 또 연구자입니다. 더 어른스러워져야 하겠지만 앞으로도 젊은 마음의 연구자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00SDH1.jpg » 새로 배정받은 연구실에 찍은 사진입니다. 이제 또 열심히 가르치고 연구해야겠지요!


녕하세요, 사이언스온 독자 여러분.

지난해 말에 글로 찾아뵙고는 석 달 동안이나 본의 아니게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제 게으름이 가장 큰 이유이겠으나 변명을 드리자면 이번 3월에 시작하는 학기부터 국내의 한 대학에서 조교수로 일하게 되어 이탈리아에서 하고 있던 일을 마무리하고, 면접이며 계약 같은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느라 시간을 내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정신 없었던 학기 초가 조금 지나고 수업자료나 일정이 어느 정도 손에 잡히게 되어 여러분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청춘 스케치’로 인사를 드립니다.


지난해 10월 아내가 이탈리아에 다녀가고, 장래 계획에 대해 심사숙고 하게 되었습니다. 육아휴직 기간이 끝나가 아내가 복직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고, 폴리테크니코 디 토리노(토리노공대)의 재계약 문제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휴직을 연장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제가 국내에 자리를 구하는 것으로 계획을 잡았지만, 정말 막막할 따름이었습니다. 각종 블로그며 관련 사이트를 읽고, 박사급 인력 채용 공고가 나는 곳에 원서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배경 지식 없이 시작하게 되었는데, 기업이나 연구소의 공고는 잘 없는데다 전공 분야가 맞는 곳이 좀체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때가 맞았는지 2014학년도 1학기 채용 공고가 대략 10월 말부터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잘 몰랐지만 국내 대학의 학사일정상 채용 3-4개월 전에 서류심사 공고가 나기 때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컴퓨터공학 전 분야’ 같은 모집 공고에도 무턱대고 지원해서 서류심사조차 통과하지 못하기를 수차례 반복하다가, 차츰 자기소개서나 연구계획서와 같은 지원 서류가 다듬어지고 모집 공고를 꼼꼼히 살펴보고 제 분야와 학과가 원하는 분야가 맞는지 판단해서 지원하다보니 12월쯤 세 군데 정도의 대학에서 면접 일정이 잡히게 되었습니다.

 


이별과 새로운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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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입국해서 면접을 준비하던 중에 암으로 투병 중이시던 장인어른의 병세가 급격히 악화해 임종을 눈앞에 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가족이 모두 모일 것을 당부하셨고, 저는 병원 복도에서 발표 자료를 준비했습니다. 끝내 장인어른께서 돌아가시고, 저는 넥타이만 갈아매고서 빈소와 면접장을 오갔습니다.

 

가는 기차에서, 참 여러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대학에 들어올 무렵 만성 신부전증을 앓으신 아버지의 병세가 악화했고, 끝내는 제 입학식에도 오시지 못했던 기억이며, 저와 아홉살 차이로 정말 형처럼 함께 컸던 막내 삼촌이 돌아가셨던 때도 떠올랐습니다. 막내 삼촌의 상중에도 저는 한 국내 기업에 산학장학생 면접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제 신상에 꽤 굵직한 변화가 생길 때, 또 그것이 소중한 사람들과 헤어지는 이별과 겹칠 때 저는 그다지 의연하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저보다 더 큰 슬픔에 빠져 있는 아내가 있고, 또 무엇보다도 소중한 제 딸이 있다는 것에 짐짓 의연한 척했을 따름입니다.

 

장인어른께서는 저와 같은 대학의 국사학과를 졸업하셨는데, 사위를 맞으면서도 동시에 약간은 후배를 대하는 마음도 있으셨던지 저를 이름으로 부르실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저는 그게 참 좋았습니다. 출판사를 오랫동안 경영하셨던 장인어른께선 저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큰 일을 많이 겪으셨습니다. 필화로 수차례 옥고를 치르셨고 늘 올바른 사회를 위해 매진하셨던 존경하는 선배님이자 큰어른이셨습니다. 임종을 목전에 두시고 ‘동화야 대성해라’라고 힘에 겨워 하시는 말씀에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면접 일정도 끝나 폴리테크니코 강의가 남아 있던 저는 다시 이탈리아로 떠났습니다. 그렇게 겨울 학기를 마치고 저는 운좋게도 채용하는 분야가 제 연구 분야와 잘 맞았던 국내의 한 대학에 조교수로 채용되었습니다.

 

 

몸으로 느끼는 공학교육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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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SDH2.jpg » 딸과 서오릉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이제는 제법 떼를 쓸 줄 알게 되어서 진땀 뺄 때가 많습니다만, 그래도 너무나 예쁩니다. ^^ 8000킬로미터 떨어진 이탈리아보다는 낫습니다만, 지방에서 근무하게 되니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아내는 당분간 직장을 그만둘 생각이 없는 까닭에 제가 사택과 서울 집을 오가면서 주말 부부로 지내기로 했습니다. 딸아이를 날마다 볼 수 없는 점이 가장 아쉽습니다. 제가 이탈리아에 있을 때에는 육아휴직 중이었던 아내가 아이와 시간을 보내며 사진이며 동영상을 찍어서 제게 자주 보내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복직한 뒤로 아내가 눈코뜰 새 없이 바빠진 탓에 아내도 아이가 자는 모습밖에 보지 못하는 터라 저도 대구에서 아기 사진 한 장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고속열차로 2시간이면 닿는 곳에 있으니 전보다 낫다는 것으로 위안 삼고 있습니다.

 

임교원 오리엔테이션을 받으며, 교육부의 수많은 지침과 지표, 각종 사업, 복잡다단한 대학순위, 학업성취도, 취업률 통계들에 약간은 기가 질렸습니다. 여태껏 지도 교수님들의 그늘에서 실험하고 논문만 썼던 시절이 어떤 면에서는 단순하게 행복한 것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수업을 하는 것도 만만치 않습니다. 수업 준비도 준비지만 막상 강의실에 들어선 뒤에도 각자 배경 지식이며 학습 동기가 다른 학생 수십 명과 함께하면서 순간순간 고민하게 되는 것들이 정말 많습니다.

 

실험하고 연구하는 걸 좋아했고, 사실상 여태껏 그것만 하다 운좋게 남들을 가르치게 된 제가, 앞으로 배운 것을 바탕으로 극심한 경쟁을 통해 취업문을 뚫어야 하는 학생들에게 뭘 가르칠 자격이 되는지 마음이 무거운 것이 사실입니다. 칠판 앞에서 학생들을 살펴보면 강의실에 앉아서 수업에 재미를 느낄 겨를 같은 건 없어 보이는 학생들이 참 많습니다. 제가 무심코 학생들에게 던지는 ‘이거 이해가 돼요?’, ‘재미있지 않아요?’ 같은 말들이 학생들 마음에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생각하면, 제가 참 이기적인 사람인 것도 같습니다. 치솟는 등록금, 날로 더해가는 취업 경쟁이 학생들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 '청춘 스케치'에 감사하며

젊은 연구자들의 “청춘 스케치”. 정말 정겹고도 고운 제목입니다. 뜻하지 않게 이탈리아에서 보내게 된 박사후연구원 생활, 졸업과 결혼, 딸아이의 탄생과 장인어른의 임종, 그리고 임용까지. 수 년을 하루 같이 지냈던 석박사 과정을 지나 청춘 스케치와 함께한 지난 일 년은 제 인생에서 가장 다이나믹했던 시절로 기억될 듯합니다. 그날그날 고민을 잊지 않고 좀 더 정리된 언어로 제 자신을 기억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또 여러 훌륭하신 선생님들과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에 정말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저는 젊고 또 연구자입니다. 더 어른스러워져야 하겠지만 앞으로도 젊은 마음의 연구자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족한 글을 다듬고 값진 조언을 해주신 사이언스온 운영자께도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독자님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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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화 이탈리아 토리노공대 연구원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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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화 이탈리아 토리노공대 박사후연구원, 컴퓨터공학
이탈리아 토리노공대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있다. 공인된 분류를 따르자면 설계자동화 분야를 연구하고 있고, 구체적인 전공은 내장형 컴퓨팅 시스템의 저전력 설계 기법인데 사실은 납땜부터 코딩까지 가리지 않고 다했다. 취미랑 전공이 비슷해서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메일 : donghwa.shin@polito.it      
블로그 : http://mimosa.snu.ac.kr/~zira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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