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대의 "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박사우울증’이라는 게 있습니다. 많은 대학원생이 흔히 겪는 우울한 증상을 뜻한다고 합니다. 우리 시대 ‘박사우울증’을 앓는 많은 이공계 대학원생의 삶을 소설 형식에 담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서로 이해하며 보듬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카이스트 박사과정 김창대 님이 씁니다.

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2) 연구 체증

00phD4.jpg » 제작 / 김창대, 그림재료/ openclipart.org



#2. 연구 체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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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있어야 잠도 자고 싶은 법이다. 세 시 반에 기숙사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후딱 잠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행여 뇌가 각성될까 봐 스마트폰도 알람만 재빨리 맞추고 덮었다. 그런데, 그런데, 이대로 지나가는 하루를 견딜 수가 없었다. 가슴께가 찜질방 소금방처럼 뜨거웠다. 뭔가 짠 것이, 목이 탔다. 읽으려던 논문도 읽지 못했고, 구현을 해보려던 프로그램마저 손도 안 댔다. 아, 어쩌면 좋을까. 그래, 웹툰만 좀 보자. 가슴을 조금만 가라앉히면, 잠을 잘 수 있겠지.


스마트폰이 룸메이트를 등지도록 자세를 잡고 웹툰 앱을 켰다. 오늘이 화요일이니까, 그래 <마음의 소리>가 올라오는 날이구나. 손가락을 휙휙 대며 내려갔다. 오늘도 조석이 엄한 곳에서 똥을 싼다. 웃기네. 하지만 얼굴 가죽은 움직이지 않는다. <가우스전자>를 열었다. 재미는 있지만 짧다. 난 그냥 시간을 좀 더 보냈으면 좋겠는데.


‘캔디크러쉬사가’[1] 게임을 켰다. 이주일 째 못 깨고 있는 판이 나온다. 하루에 4~5시간까지도 했는데, 342판이 하도 안 깨져서 좀 시들해졌다. 캔디들을 움직여본다. 캔디들이 터지고 캔디 옆에 있던 벽돌들도 터진다. 좀 되나 싶더니 제한 횟수가 끝났다. 재도전한다. 또 캔디들이 터지고 벽돌들도 터진다. 거의 다 된다 싶었는데 제한 횟수가 세 번 남았다. 이번에도 텄다. 제길. 대충 세 번을 해치우고 재도전을 한다. 또 하고, 또 한다.


친구들이 보내준 하트까지 금방 사라졌다. 하지만 난 이것을 깨야만 할 것 같다. 1,200원을 결제했다. 하트 5개다. 단지 다섯 번 더 실패했다. 여전히 342판, 제자리다. 슬몃 태양이 노크를 한다. 깜깜하던 방에 옷장 그림자가 진다.


다섯 시다. 잠시 외면하던 생각이 물밀 듯 밀려온다. 나는 왜 게임 한 판을 깨보겠다고 이러고 있는 것일까? 30분에 하나씩 꼬박꼬박 채워지는 하트를 당장 쓰려고 돈까지 들여가면서. 그래, 어쩌면 난 게임 속에서나마 성취감을 느끼고 싶은 것일 게다. 게임이라도 성취해서 오늘의 의미를 찾고 싶은 것일 게다. 한 판, 한 판, 뭔가 하고 있다는 느낌, 뭔가 해내고 있다는 느낌, 적어도, 뭔가 도전하고 있다는 느낌, 그 느낌들에 중독된 것도 같다. 성공이든 실패든 금방 결과가 나오고, 또 금방 다시 도전해볼 수 있다는 것도, 연구랑은 참 다르다.


마음의 지진이 더 심해졌다. 이러면 안 되는데, 또 이렇게 밤을 새워버렸다. 드디어 몸이 잠을 자야만 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래, 이 정도의 피곤이라면 잠이 들 수 있을 것 같다. 아, 그런데 소변이 마렵다. 화장실에 갔더니 찬바람과 약한 암모니아 냄새에 잠이 달아난다. 제기랄. 뇌 속으로 핏발이 강해진다. 눈을 감았지만 깊은 잠에 잘 도달하지 못했다. 머리는 깨어 있는데 몸만 잠든 것 같은 느낌이다.



한 시. 늦게까지 잤지만 겨우 6시간쯤밖에 못 잤다. 제대로 잔 것 같지도 않다. 여전히 피곤하다. 일어나려 해봤지만, 정작 마음이 말을 듣지 않는다. 엎질러버린 물 같다. 바닥에 축 늘어져 있다. 다시 자 보려 해도 역시 마음이 말을 듣지 않는다. 일어나야만 할 것 같다. 계속 불안하다. 왜 늦잠을 자는 날은 항상 우울할까? 육체에 대한 열등감일까, 정신에 대한 자괴감일까. 이딴 생각을 계속하면 더 우울해지기밖에 안 한다는 걸 안다. 그리고 나에게 필요한 건 단지 침대에서 일어나는 일이란 것도, 나는 잘 안다.


하는 수 없이 스마트폰을 켰다. 페이스북을 넘긴다. 다들 잘 산다. 누구는 연애를 하고 누구는 회사를 다닌다. 누구는 논문이 됐고 누구는 숙제 때문에 멘붕이다. 누구는 짜증이 났고 누구는 맛있는 걸 먹었다. 누구는 좋은 말을 발견했지만 나는 그런 투의 말들이 지겹다. 이제 다 본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은 바닥에 꼭 들러붙어 있다. 한겨레 앱을 켰다. 이런저런 소식들. 어떤 사람은 정치를 떠난다고 하고 어떤 부자는 돈을 더 벌려다 죄를 짓고 어떤 서민은 돈을 못 벌어 자살을 한다. 그리고 나는 연구를 하러 가야 하는데. 한참을 더 눕고서야 씻으러 갈 수 있었다.


기숙사에서 나왔다. 멀리서 음악이 울린다. 까리용을 고쳤다더니, 그건가. 까리용은 이상하게 생긴 조형물인데 여러 크기의 종들이 달려있다. 그걸 컴퓨터로 제어하면 음악도 연주할 수 있다는데, 지난 몇 년 간 고장 난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다. 외국에서 기술자를 불러와야 고칠 수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프랑스던가, 네덜란드던가. 왜 우리나라 기술자는 못 고치는지 모르겠지만, 수업료는 꼬박꼬박 받아가면서도 내버려둔 걸 보면, 정말 우리나라 기술로는 안 되나 보다 싶었다. 저게, 정오에 울린다고 했나... 걸음걸이를 보채긴 싫었다. 땅만 바라보며 그렇게 걸었다.


그래, 나도 외계의 기술자가 필요한 건 아닐까. 지구의 힘으로는 안 되고, 외계의 기술이 필요한 건 아닐까. 허허. 별 생각을 다 한다. 그런데 난 왜 또 이제야 연구실에 가고 있는 것일까. 대체 어디부터 잘못된 걸까. 오늘은 뭐부터 시작해야 하지? 아, 도저히 모르겠다. 아무 생각도 안 난다.


교통체증이 일어나는 이유를 분석한 논문이 나왔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2] 사고도 나지 않았고 나들목도 아닌 곳에서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차 한 대가 무슨 이유에서건 속도를 조금이라도 낮췄기 때문이다. 그러면 뒤차는 앞차가 속도를 줄인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반응하기 때문에 사고가 나지 않으려면 앞차보다 속도를 조금 더 많이 낮춰야 한다. 그러니 그 뒤차는 더 많이 낮추게 된다. 그러다 보면 연쇄작용으로 모든 차량이 멈추다시피 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 “차 한 대”는 무엇이었을까? 왜 나는 지금 멈추어 있는 것일까. 그래, 아까 페이스북이나 보면서 뒹굴지 않고 후딱 일어났다면 1시간은 일찍 연구실에 당도했을 것이다. 그러면 지금쯤 열심히 연구 중일 텐데. 아니, 새벽에 게임을 켰던 게 문제였을 것이다. 그것만 아니었으면 훨씬 일찍 일어날 수도 있었겠지. 게임은 내가 새벽에 늦게 들어갔기 때문에, 밤을 견디지 못해서 일어난 것일 게다. 역시 밤에 이불을 차지 않으면 아침에 이불을 차게 되는 법이다. 늦게 들어간 것은 <마녀사냥>을 보느라 그랬고, <마녀사냥>을 본 건 주성이가 술을 마시러 가자는 걸 거절했지만 결국 연구는 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연구를 하기 싫은 건 왜 그랬을까? 어려워서? 해봤자 안 될 게 뻔해서? 두려워서? 그렇다면 연구를 하는 이유는 뭘까? 그거야 대학원생이니까 그렇지. 그럼 박사과정은 왜하려고 했었지? 왜 그랬더라... 너무 오래돼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어폰을 귀에 꼽고 핸드폰으로 음악을 틀었다. 피아의 <소용돌이>. 두껍고 거친 소리가 머리를 울린다.

  ‘내 기억에 혼돈스럽고 또 지나쳤던 건 이제 모두 떨치고 싶어 깊은 늪 소용돌이 속 던져버려 다 지우고 싶었어’

박자에 맞춰 건들거리며 연구실로 향했다.


연구실에 도착하니 주성이와 보영이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보영이가 나를 본다.

  “오빠, 안녕하세요. 식사하셨어요?”

그러고 보니 위장에 기체만 가득 든 느낌이다. 밥을 먹어야겠다.

  “어, 아직 안 먹었어. 먹어야지. 넌 먹었어?”

  “네. 근데 혼자, 드시게요?”


딱히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당연히 혼자 먹게 되겠지. 이제 와서 같이 밥 먹을 사람 찾기도 번거롭거니와, 굳이 누구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도 아니다. 별것도 아닌데 괜히 처량하게 보이는 것만 같다. 아무렇게나 둘러대기로 한다.


  “어차피 혼자 살다 혼자 가는 게 인생이야.”

주성이가 끼어든다.

  “아이참, 이 형 또 이상한 소리하네. 형, 그건 그렇고, 저녁은 돼지국밥 어때요?”

  “너도 함께 밥 먹었을 거 아냐. 점심 갓 먹어놓고 저녁 먹을 궁리부터 하는 거야?”

  “아니, 이따 장보러 갈 건데, 그 마트 근처에 돼지국밥 맛있잖아요. 형도 같이 가자구요.”

  “장을 왜 봐?”

  “내일 준상이 형 프로포잘하잖아요.”[3]

  “그게 내일이었어?”

  “아따, 이 형 소식 느리네.”


그래, 얼마 전에 프로포잘 리허설을 했지. 굳이 언제 하는지는 물어보지 않았구나. 장보는 거야 저년차 위주로 부탁하면 되니까 굳이 나에게 프로포잘 날짜를 공지하진 않았겠지. 벌써 프로포잘을 하는구나. 내 동기가.


  “봐서, 이따 결정할게.”

  “알았어요. 어쨌든, 그럼 보영아. 이따 다섯 시쯤 출발하자. 더 늦으면 차 막혀.”

  “네.”


주성이가 나가고 보영이와 둘만 남았다. 책상에 앉았다. 밥을 먹으러 가야 하나. 마우스를 휙휙 대니 모니터가 켜진다. 어제 밤에 (정확히 말하자면 저녁 즈음에) 읽다만 소스코드가 화면에 뜬다. 나머지는 어제 다 닫아버리고 갔다. 웹브라우저부터 다시 띄웠다. 메일함과 캘린더와 페이스북을 띄웠다. 기숙사에서 나오기 직전에 다 봐서 남은 것이 없다. 밥이나 먹으러 가야지. 연구실을 나섰다. 그래, 연구실 오기가 무섭게 밥이나 먹으러 가는데, 연구가 진행될 틈이 있나.


찬바람이 촉촉하다. 아직 식당엔 사람이 꽤 있다. 삼삼오오의 무리들 틈에 식판을 놓고 혼자 앉았다. 텔레비전을 보았다. 어떤 기업의 신제품이 잘 팔려서 주가가 많이 올라갔다고 한다. 그리고 어떤 드라마가 중국에서 잘 팔린다고 한다. 그런데 준상이가 프로포잘을 하는구나. 그래, 할 때가 됐지. 준상인, 열심히 했잖아.


이번엔 아나운서가 교통 정보를 전해준다. 전국 교통 상황은 원활하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다섯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그런데 호남고속도로에서는 사고가 났고 그래서 많이 막힌다고 한다. 교통체증에 대해 연구한 MIT(미국 매사추세츠공대) 과학자가 남겼던 말이 떠올랐다. “일단 정체가 발생하면 탈출이 불가능하다. 저절로 풀릴 때까지 차 안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다.”[4]


침이 잘 나오지 않는다. 몇 술 뜨지 않은 식판을 들고 일어섰다. 걷고 싶었다. 멈추어 앉아 밥을 먹고 싶지 않았다.


* * *


[1] 캔디크러쉬사가: 퍼즐 게임이다. 화면에 캔디들이 가득 나오고, 색색의 캔디를 3개 이상 연결하면 캔디가 터지게 된다. 제한 횟수 (혹은 시간) 내에서 각 판의 목표(일정 이상의 점수 획득, 화면 속의 젤리들을 모두 없애기, 특정 아이템을 제일 아래까지 내려오게 만들기)를 달성하면 다음 판으로 넘어갈 수 있다. ‘애니팡2’가 이 게임을 표절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을 정도로 유사하다.

[2] 김한별 기자, "과학으로 본 교통체증 원인", 중앙일보 2011년 3월30일(온라인 게재일). 다음 논문을 중심으로 한 기사이다. Orosz, G. & Stepan, G. 2006 Subcritical Hopf bifurcations in a car-following model with reaction-time delay. Proc. R. Soc. A 462, 2643?2670.

[3] 프로포잘(Proposal):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서는 보통 다섯 명의 박사(주로 대학 교수들)에게 구두 발표 심사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심사를 받기 전에(몇 개월에서 2~3년 전) 같은 심사위원들에게 박사학위 내용에 대해 예비 심사(역시 구두 발표로 진행됨)를 받으면서 조언도 듣게 되는데 이것을 프로포잘이라고 한다. 이때 참석하신 심사위원들이 발표를 듣는 도중에 먹을 다과를 준비하기도 한다. 소설 속에서 “장을 보러” 가는 이유는 다과를 준비하기 위함이다.

[4] A. Trafton, "Mathematicians take aim at 'phantom' traffic jams", MIT News June 9, 2009.  다음 논문에 대한 기사이다. Flynn, M. R., Kasimov, A. R., Nave, J. C., Rosales, R. R., & Seibold, B. (2009). Self-sustained nonlinear waves in traffic flow. Physical Review E, 79(5), 056113.


작가의 말


이 이야기에 공감이 된다는 건, 당신이 혼자가 아니란 걸 이야기해주는 겁니다. 그러니 우울하지 마세요.

그리고 공감이 되신다면, 제게도 이야기해 주세요. 제가 혼자가 아니란 걸 알 수 있도록.


김창대 카이스트 전산학 박사과정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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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대 카이스트 전산학 박사과정
20대를 공대에서 보내고 30대도 공대에서 맞이한 전산학도. 그리고 소설 쓰는 사람. 무언가를 고찰하여 글로 표현해내는 것을 좋아한다. <용감한 작가들> 회원이며 페이스북 페이지 <글 쓰는 김창대>를 운영 중이다. https://www.facebook.com/holypsychowrites
이메일 : holypsych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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