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 우주 급팽창을 엿보다’…원시중력파 검출
미국 연구팀, 급팽창 가설 뒷받침하는 중력파 흔적 첫 포착
» 우주에서 날아오는 우주배경복사의 빛에서, 원시 중력파의 효과로 생기는 특정한 편광의 패턴을 찾아낸 그림. 출처/ 하버드-스미소니언 천체물리센터(CfA)
우주는 거시 구조로 볼 때 왜 이토록 균일할까? 그러면서도 왜 물질이 이리저리 한곳에 모여 은하, 항성, 행성을 이룰까? 그것은 우주 대폭발(빅뱅) 직후 빛보다도 빠른 속도로 공간이 팽창한 이른바 ‘급팽창(인플레이션)’의 순간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현대 우주론의 설명이다.
이런 급팽창 시기에 중력 요동으로 생긴 ‘중력장의 물결’인 중력파의 원시 흔적이 정밀한 우주 관측에서 처음 검출됐다. 이는 태초에 급속 팽창의 단계를 거쳤기에 지금처럼 균일하고 평탄한 우주 공간이 이뤄졌다는 오래된 급팽창 이론을 확인해주는 강한 증거로 받아들여진다.
☞ 중력파: 전기장이 흔들릴 때 나타나는 전파적 현상을 전자기파(빛)이라고 정의하듯이, 중력파는 중력장이 흔들릴 때 나타나는 전파적인 현상을 말한다. 빛 속도로 전파되며 거기에는 진동수가 있다. 잔잔한 물에 돌을 던지면 물결이 일고 거기에 파가 생기는데, 중력파도 중력의 변화로 생기는 중력장의 흔들림이 전파되는 것이다. '시공간의 출렁임'이라고도 얘기된다. (도움말 이형목 서울대 교수)
미국 하버드-스미소니언 천체물리센터(CfA)는 17일(현지시각) 기자회견을 열어 “남극에 설치한 전파망원경 시설 ‘바이셉2’(BICEP2)를 통해 우주배경복사를 관측해 이런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은 인터넷으로 세계에 생중계됐다.
연구팀은 우주에서 날아오는 빛의 특정한 편광 성분(‘원형 편광’)을 매우 넓은 우주 공간에서 관측해냈다. 이 편광은 중력파로 인해 생기는 것으로 알려졌기에, 연구팀은 이런 편광의 우주 분포와 패턴을 관측하고 원시 중력파의 흔적만을 걸러내 이를 급팽창의 증거로 제시할 수 있었다.
이번 관측 결과가 주목받게 된 배경과 관련해, 언론에 제공한 도움자료에서 한국천문연구원은 다음과 같이 전했다.
“현대 우주론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받는 생성 이론인 대폭발(빅뱅) 이론에는 한 가지 이론적 맹점이 있었음. 현재 관측되는 서로 다른 우주 공간은 초기에는 인과적으로 분리되어 있었으므로, 우주 전 공간에 걸친 균일성을 설명하기 어려웠음. 이를 보완하기 위해 1980년대에 인플레이션 모델이 제시되었고, 빅뱅 이후에 가속 팽창을 하는 이 인플레이션을 가정하면, 현재 관측되는 우주의 인과성 문제가 해결되었음. 하지만, 인류가 우주를 이해하는 표준모형의 시작 단계가 가설의 수준에 머물고 있었고, 35년에 걸쳐 노력했지만 간접적인 증거 외에 인플레이션이 정말 존재했는지가 관측되지 않았음. 우주 초기 중력파는 인플레이션이 존재했다는 거의 유일한 직접적인 증거로 알려져, 최근 10여 년 동안 많은 관측 노력이 있었음. 인플레이션에 대한 증거가 없는 이 시기에, 이론 연구자들은 아주 복잡한 이론들을 만들고 있었던 중이었음.”
» 남극에 설치된 우주배경복사 관측 시설. 출처/ NSF
최근엔 그런 우주 중력파 관측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남극 지역에 천체 관측 시설을 갖추고 우주의 중력파를 검출하려는 경쟁이 치열하게 이뤄져 왔으며 지난해와 올해 초에도 남극 지역에 있는 다른 관측 시설의 연구그룹들(남극망원경[SPT], 폴라베어[POLARBEAR] 등)이 우주 편광 관측 결과를 발표했으나, 중력파에 의한 직접 효과를 보여주지 못했거나 관측 영역이 크지 않고 정밀도도 상대적으로 떨어져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이번 관측에선 중력파에 의해 생기는 직접 효과인 빛의 특정 편광 패턴을 '우주배경복사'에서 찾아냈다. 현대 우주론에 따르면 138억년 전 우주가 뜨거운 대폭발 이후 팽창하며 점차 식어 대폭발의 흔적이 매우 미미한 복사열로 전 우주 공간에 배경처럼 퍼져 있는데, 그런 우주배경복사에서 원시 중력파의 흔적인 편광 패턴을 확인해낸 것이다. 우주론을 연구하는 이석천 고등과학원(KIAS) 연구원은 “빛은 물결과 달리 진동방향과 진행방향이 직각을 이루는 편광 특성을 지니는데, 특히 특정 편광의 패턴(원형 편광)은 중력파에 의해 생기기에 우주배경복사에서 이런 편광 패턴을 관측했다는 것은 곧 원시 중력파의 흔적을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 우주배경복사: 우주가 팽창하면서 점차 식어 우주 전체에 남아 있는 우주 대폭발의 흔적으로 ‘우주의 온도’라고 말할 수 있다. 전 우주에서 고르게 관측되는 우주배경복사는 영하 270도(절대온도 2.7K)이지만 국지적으로는 매우 미세한 차이(0.0001K 정도)가 나타난다.
» 우주 대폭발과 그 이후. 출처/NASA
그러면 급팽창 시기에 우주는 얼마나 빠르게 팽창했을까? 연구팀은 이런 편광 패턴을 분석해 급팽창이 대폭발 직후 10-37 초 동안에 1016 기가전자볼트(GeV)의 에너지 규모에서 일어났음을 보여주었다. 이 시기에 우주는 원자보다 훨씬 작은 크기에서 순간 팽창으로 축구공 만한 크기로 커졌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이석천 연구원은 우리 눈에 공은 작은 크기이지만 원자보다 작은 것이 축구공 만한 크기가 되는 배율을 생각하면 엄청난 급팽창이라며 이런 팽창이 균일한 우주의 씨앗이 되었고 이런 균일한 우주가 이후에 계속 팽창해 현재 우주에 이르렀다고 설명한다.
여러 과학매체는 이번 발견을 주요 기사로 크게 보도했다. 과학저널 <네이처>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에서 중요한 요소이지만 찾지 못했던 중력파의 존재를 보여준 가장 직접적인 증거”라고 보도했다. 지난 1980년 급팽창 가설을 처음 제시한 앨런 구스 교수(미국 매사추세츠공대·물리학)는 “급팽창의 그림과 맞아떨어지는 완전히 새롭고도 독립적인 우주론 차원의 증거”라며 환영했다. 이번 연구는 전자기력, 약력, 강력과 더불어 우주의 기본 힘이면서도 여전히 수수께끼에 쌓인 중력의 성질에 관해 더욱 정밀하게 연구할 수 있는 단서를 줄 것으로도 기대된다.
다음은 한국천문연구원이 해설자료에서 정리한 이번 연구의 의미이다.
”가설에 불과했던 인플레이션 이론이 검증됨으로써, 인류가 우주를 이해하고자 도입했던 가설이 정설임이 밝혀짐. 그리고 생각했던 것보다 높은 에너지 영역에서 관측됨으로써, 단순한 인플레이션의 크기만이 아닌 구체적인 역사를 검증할 수 있는 길을 열게 됨. 그리고 복잡하게 전개되던 인플레이션 이론 모델 중에서 가장 단순한 모델이, 관측값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으로 판명되어, 과학의 일반적인 가정, 즉 가장 단순한 것이 진리라는 격언을 일깨워 줌.”
이석천 연구원은 “우주배경복사의 편광 패턴을 통해 관측하는 것과는 다른 방법으로 중력파를 검출하려는 다른 연구 프로젝트들(LISA, LIGO)은 계속 진행될 것”이라며 “이번 연구에선 대폭발 우주론에서 급팽창이 언제 어느 정도의 에너지 규모에서 일어났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를 제시했다는 점이 가장 눈에 띄는 성과”라고 말했다.
현대 우주론 모형에서, 우주는 138억 년 전 특이점에서 대폭발을 일으켰으며 직후에 원자보다도 더 작은 우주 크기에서 축구공만한 우주 크기로 빛보다 빠르게 순간 팽창하는 시기(급팽창)를 거쳐 ‘균일 우주’의 토대를 마련했으며, 이후 계속 팽창하고 식으면서 지금 우주에는 우주 탄생의 흔적인 우주배경복사를 남긴 것으로 이해된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 한겨레 지면에 보도된 원 기사에 보조 자료와 설명을 덧붙여 정리한 글입니다.
■ ‘원시중력파 관측’ 발표부터 논란, 번복까지
▨ '원시중력파 관측 아니다' -최종결론 [2015.02.04]
http://scienceon.hani.co.kr/237038
▨ 플랑크위성 관측결산: ‘138억년 우주진화’ 재확인 [2014.12.09]
http://scienceon.hani.co.kr/221068
▨ 우주먼지에 얼룩진 원시중력파 발표..‘성급했군’ [2014.09.24]
http://scienceon.hani.co.kr/196261
▨ ‘우주 태초 원시중력파의 흔적 맞나’ 논란 잇따라 [2014.05.20]
http://scienceon.hani.co.kr/166416
▨ 우주 급팽창 입증 첫 단추…검증·후속 연구 주목 [2014.03.31]
http://scienceon.hani.co.kr/156139
▨ ‘태초 우주 급팽창을 엿보다’…원시중력파 검출 [2014.03.18]
http://scienceon.hani.co.kr/153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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