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풀이와 증명의 통쾌함과 즐거움' -황준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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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수학자대회 기조연설 하는 황준묵 고등과학원 교수  

수학의 즐거움에 빠진 수학자한테 수학은 어떤 모습일까

HJM_interview.jpg » 지구촌 수학자들이 한 자리에 모인 세계수학자대회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기조강연하는 황준묵 고등과학원 교수가 수학 문제 풀이가 가득한 연구실 칠판 앞에서 수학 하기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에 관해 얘기하고 있다. 출처/ 오철우 기자


구촌의 수학 지성이 오는 8월 서울에 모인다. 저명하거나 무명이거나 신진이거나 노장이거나, 선진국과 개도국의 수학자 5000여 명이 한 자리에 모여 오늘날 수학의 성과를 나누며 풀어야 할 난제를 탐색하고 논의하는 세계수학자대회(ICM)가 8월13일 서울에서 개막한다. 1897년 첫 대회 이후 세계 수학을 대표해온 이 대회는 서울에서 제27회를 맞는다. ‘노벨 수학상’이라 불리는 필즈상의 수상자가 발표되고 시상식이 열려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 대회에서 전체 참석자를 대상으로 하는 기조강연자로 선정된 황준묵 고등과학원 교수를 지난 4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나 수학과 수학자대회에 관해 얘기를 들었다. 기조강연은 한국인 수학자로서 처음이다. 황 교수는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서울대 교수를 거쳐 15년째 연구에 전념하는 고등과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난해한 복소기하학을 연구하는 그는 2010년 ‘국가과학자’로 선정됐다. 인터뷰에서 그는 순수 수학의 기쁨과 가치는 결과보다 과정에 있다고 거듭 강조한다. 문제 풀이와 증명의 통쾌함과 아름다움에 빠져 사는 수학자의 수학은 어떤 모습일까? 


(분량을 줄이고 다듬은 인터뷰 기사는 <한겨레> 지면의 '한겨레가 만난 사람'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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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세계수학자대회에 기조강연자로 초청받으신 걸 축하드립니다. 한국 수학자의 기조강연은 처음이라고 들었는데요. 수학자대회에서 초청강연은 어떻게 이뤄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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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수학자 대회에서 200여명 정도 초청강연을 하는데, 이 중 20명 정도가 참가자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기조강연을 하고 나머지는  전문 분야별 분과강연을 합니다. 서울 대회에 한국 수학자로는 기조강연자 1명과, 분과강연자 5명이 초청받았지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기조강연을 하게 돼 크나큰 부담을 느낍니다."



강연자로 초청받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요?

  “세계수학자대회에서 강연한다는 건 대단한 영광입니다. 우리나라 수학자가 분과강연에 처음 초청된 것도 2006년이 처음입니다. 2006년 스페인 대회에 저와 오용근 교수, 김정한 교수가 초청 받았지요. 일반인한테 이 대회의 의미를 설명할 때 흔히 올림픽과 비교해서 말하곤 하는데, 4년마다 열리고 올림픽 금메달 수가 300개 정도 되는 점에서 두 대회가 비슷하다고 보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비교하면, 분과강연 초청은 그 종목(분과)에서 금메달을 받는 영광 정도로 여길 수 있습니다.”



한국인으론 처음, 부담감



한국 수학의 위상이 아주 낮진 않을 텐데, 2006년 이전엔 왜 강연 초청이 없었을까요?

 “초청강연자는 선정위원회가 정합니다. 선정과정은 로비를 막기 위해서 극비로 이뤄지며 선정위원 명단도 개막식까지 비밀이지요. 그래서 사실 왜 그동안 한국 수학자가 강연자로 초청받지 못했는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다만 2006년 최초 초청강연자가 나온 뒤에 2010년 인도 대회에선 박종일 교수와 오희 교수가 분과강연자로 초청됐지요. 2014년 서울 대회에선 6명으로 늘어났습니다. 한국 수학의 국제적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음을 말해준다고 생각해요.”



황 교수가 말했듯이, 한국은 2002년 대회 때까지 “세계 수학계에서 잘 보이지 않는 나라”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2000년대 중반 이후에 한국 수학의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2006년 스페인 대회에 3명의 초청강연자가 선정됐으며, 이듬해인 2007년 국제수학연맹(IMU)은 한국 수학의 지위를 당시 ‘2단계’에서 ‘4단계’로 2등급이나 상향 조정했다. 국내 수학자들은 ‘2등급 상향’을 큰 사건으로 여긴다.



'단계' 등급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요?

 “국제수학연맹(IMU)의 총회(General Assembly)에서 세계수학자 개최지 선정 같은 중요한 결정을 할 때 투표권은 나라마다 동등하지 않습니다. '4단계' 회원국은 4표, '2단계' 회원국은 2표, 이런 식인데, 한국이 이제 4표를 갖게 된 것입니다. 최고 등급은 5단계로서 G8국가와 중국과 이스라엘 총 10개국입니다.”



등급 상승 분위기에 힘입어 박형주 포스텍 교수(서울 세계수학자대회 조직위원장)를 비롯해 몇몇 수학자들이 세계대회의 서울 유치에 나섰다. 황 교수는 “한국 수학의 잠재력은 드러나진 않았지만 꾸준히 성장하고 있었다”며 “세계대회 유치는 시기상조라는 분위기도 많았는데 몇몇 분들이 적극 나서고 국제 사회도 호응해 유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기조강연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이메일로 기조강연자 초청 소식을 들었습니다. 당연히 수학자로서는 대단한 영광이지요. 그런데 2006년 분과강연 초청을 받았을 때가 더 기뻤습니다. 그때에도 이메일로 소식을 받았는데 꿈만 같았고 누가 장난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기조강연은 훨씬 더 큰 영광이지만 사실 기쁨에 앞서 책임감이 더 큽니다. 자기 분야를 대표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고, 특히 이번에는 개최국 수학자로서도 책임감이 크니까요. 지난 주에 국제수학연맹 회장이 기조강연에 대한 당부 이메일을 보내 왔습니다. 모든 수학자들이 듣는 기조강연이니 너무 전문적이지 않게 모두 향유할 수 있게 강연을 준비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청중 따라 다른 전문성



수학자의 얘기를 일반인이 이해하기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직업 수학자들의 세계 대회에서도 많은 수학자들이 이해하기 힘든 전문 내용이 있으니 이를 피하라는 권고가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최근 연구를 다루다보면 사실 다른 분야는 물론이고 같은 분과의 수학자들 사이에서도 기본 용어가 잘 이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일반 수학자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개념 중심으로 얘기해야 합니다. 흔히 ‘수학’으로 통칭하지만 그 안에 세부 분야가 엄청 많고 기조강연은 모든 분야 수학자들이 들어야 하니 고민이 많습니다.” 

HJM_KIAS.jpg » 황준묵 교수. 출처/ 고등과학원


세계 수학자들이 몰리는 자리에서 하는 강연이니 원고를 준비하는 일은 무척이나 세심한 손길이 필요한 모양이다. 서울 대회는 8월에 개막하지만 벌써부터 강연 준비 작업은 빠듯한 일정에 들어가고 있었다. 그는 “3월 말까지 원고를 완성해 넘겨야 하고 5월까지 강연용 프레젠테이션을 넘겨야 한다”며 “지금은 정신없이 바쁜 시기”라고 말한다. “좋은 아이디어만 잡히면 원고를 쓰는 건 몇 주 안에 해낼 수 있을텐데, 아직 확실한 아이디어를 잡지 못하고 있다. 영감을 얻어야 하는데. 강연 준비는 연구논문 준비와는 다르고, 또 세계대회 기조강연이 평생 한 번 하는 거니 잘하고 싶은 욕심도 생긴다.”



기조강연에 어떤 내용을 담을지 구상한 게 있나요?

  “한 시간 동안 강연합니다. 처음엔 제가 하는 분야의 최근 연구를 개괄할까 생각해 준비해왔지요. 그러다가 얼마 전에 계획을 바꿨습니다. 연구결과를 나열하는 것 말고 핵심 개념 한두 개에 집중해 여러 가지 예를 들면서 강연할까 합니다. 물론 제가 하는 ‘복소기하학’ 분야에 관한 강연입니다.”



세계대회 이후에 한국 수학은 위상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세계수학자대회엔 다른 학회와는 비교가 안 되게 많은 수의 뛰어난 수학자들이 참가합니다. 한 번 서울에 와 보면, 다음에 또 오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수학자대회는 세계적 수학자와 한국 수학계의 교류를 넓힐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세계대회는 젊은 수학자들이 자신감을 얻는 데에도 좋은 기회이지요. 월드컵을 한 번 치르고 나서 젊은 선수들이 자신감을 얻고서 뛸 수 있었듯이, 세계대회에서 저명한 수학자들을 직접 만나고 얘기를 나누면서 젊은 수학자들도 자신감을 얻고 더 어려운 문제에도 도전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수학은 인류 문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현대 사회에서 그 쓰임새는 더욱 더 넓어지고 있다. 컴퓨터공학은 물론이고 이론물리학과 우주론에서 수학은 없어선 안 될 지식의 도구다. 요즘엔 생물학에서도, 금융계에서도 중요하다. 이처럼 여러 방면에서 다른 전문가들이 활용하는 응용 수학과 달리, 황 교수처럼 수학 자체를 업으로 삼아 연구하는 수학은 어떻게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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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쓰이는 응용 수학과 비교해, 수학 자체에 매달리는 직업 수학자의 정체성은 어떤 것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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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하신 대로 많은 과학자, 공학자들이 수학을 합니다. 연구과정에서 어느 정도 단계를 넘으면 전문적인 수학과 연결되곤 하지요. 여러 분야에 응용되는 수학과 비교하면, 직업 수학자들은 대체로 ‘기초(fundamentatl) 수학’을 한다는 점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응용 수학에서는 알려진 이론을 실제 모델에 적용하는 데 중점을 두지만, 순수 수학은 오히려 아직 이해되지 않은 이론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지요. 수학을 쓰는 과학자, 공학자한테는 엄밀한 증명에 한계가 있지만, 직업 수학자한테는 확실한 증명이 필수이고요. 몰론 응용 수학과 순수 수학이 겹치는 부분도 아주 많지만.”



말씀하신 순수 수학은 어떤 성격의 문제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는가?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순수 수학이 중시하는 문제가 응용과 무관한 게 많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불가능함'과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데에 순수 수학은 많은 관심을 기울입니다. 예컨대 “√2는 유리수가 아니다”라는 명제가 있지요. ‘유리수 표현이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문제인데, 이런 부정적인(negative) 결과는 어디에 써먹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현실에선 쓸모가 없지만 수학자한테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실 고대 그리스 수학에서 성취한 가장 중요한 명제를 꼽으라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수학에서 ‘불가능함’ ‘존재하지 않음’ 같은 부정적인 논증은 훨씬 더 큰 깊이를 지니고 있습니다. 또 다른 예로 “눈금 없는 자와 콤파스만을 사용해 주어진 각도를 3등분 하는 방법을 찾으라”는 문제는 고대 그리스 수학에서 제기된 것으로 아주 오랜 난제였는데 19세기 초에 '그런 방법은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3등분 불가능성’과 같이 우리가 무언가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수학을 응용하는 입장에서 보면 쓸모가 없는 일이겠지요.”



응용과는 다른 관심



그런데도 이런 문제 풀이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뭘까요?

 “증명의 과정에서 이전 수학과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수학이 도입되곤 합니다. 증명 과정에서 얻은 것들은 다른 수학에도 영향을 주고, 그러면서 나중에는 쓸모 있는 것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그런 증명 과정에서 수학자들은 어떤 통쾌함을 느낍니다. 무엇이 존재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해 결국엔 그런 전제가 모순임을 보임으로써 결국에 존재하지 않음이나 불가능성을 증명해내면, 마치 지저분한 것들을 다 잡아 없애고 모든 것을 깨끗하고 말끔하게 정리한 느낌을 얻곤 하지요. ’우아함’(elegance) 같은 느낌이랄까. 거기에서 어떤 아름다움을 느끼는 겁니다. 사실 ‘없음’보다 더 큰 아름다움은 없지 않나요?(웃음).”



그런 증명의 또 다른 사례를 얘기해주시면.

 “사실 진짜 심오한 문제는 이런 불가능성이나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분야에 더 많아요. 리만 가설을 보면, 이 가설이 요구하는 바는 ‘어떤 함수의 근이 어떤 값 이외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직까지도 증명되지 않고 있습니다. 페르마의 문제도 그렇죠. ‘어떤 방정식의 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의 문제인데, 제가 대학생일 때만 해도 300년도 넘은 오랜 문제로 유명했습니다. 1990년대에 비로소 증명돼 ‘세기의 증명’으로 불리게 됐지요. 수학을 응용할 때에는 어떤 방정식에 해가 없음을 증명한 뒤에 응용하는 것이나, 그냥 해가 없다고 믿고 응용하는 것이나 별 차이가 없지만, 증명되지 않은 명제는 수학자들한테 참을 수 없게 하는 존재입니다.”



결과만을 볼 때엔 쓸모 없지만 잘 보이지 않는 긍정적 영향은 당연히 있게 마련이군요.

 “많은 경우 이런 증명의 ‘과정’에서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수학적 대상 사이의 놀라운 ‘관계’가 발견되곤 합니다. 증명하는 과정에서 그 안에 아름다움, 어떤 질서가 숨어 있음을 발견하는 것이지요. 그건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듣다보니 직업 수학자들은 어떤 문제를 말끔하게 증명하는 논문을 읽을 때엔 마치 위대한 장인의 작품을 감상할 때와 같은 어떤 짜릿함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당연히 문제를 풀었을 때엔 뿌듯하지요. 웬만한 문제는 몇 년씩 안고 생각을 하니까, 문제를 풀었을 때 만족감은 아주 큽니다. 물론 쉽게 풀리는 문제도 있고, 몇 년씩 고민해 풀거나 그래도 풀지 못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오래 생각했던 문제가 풀리면 흥분돼 며칠 잠을 잘 이루지 못하기도 합니다. 어려운 문제를 도무지 풀지 못해 포기한 것도 많고, 10년 넘게 생각해 마침내 푼 문제도 있고, 15년 넘게 붙잡고 있는 문제도 있어서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기에 죽기 전에는 꼭 풀었으면 하는 문제도 있고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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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계에서는 연구자를 평가할 때 얼마나 영향력 있는 학술지에 논문을 출판했느냐 또 남의 논문에서 얼마나 많이 인용됐느냐 하는 점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수학계에선 영향력지수(IF, 임팩트팩터, 인용지수)는 어떻게 다뤄지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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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과학계에 비해서, 세계 수학계에서 인용지수는 상대적으로 그리 중시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다만 국내나 제3세계에서는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지만요. 세계수학자대회 초청강연자 중에는 논문을 거의 발표하지 않은 분도 있습니다. 제 분야에서는 논문 한두 편 낸 분이 초청강연자가 된 적도 있습니다. 반면에 논문을 많이 내고 인용지수가 높은데도 강연 초청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2010년 세계수학자대회 초청강연자를 선정하는 추천위원회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위원회에서 누구를 추천할 것인지 얘기할 때 어떤 학술지에 논문을 냈느냐, 얼마나 인용이 되었느냐를 따지는 위원은 없었습니다. 그건 낮은 수준의 연구 평가 작업에서 어떤 기준을 정할 때에 필요할지 몰라도, 세계수학자대회 초청강연자를 선정하는 단계에선 고려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초청강연자를 선정할 때 이전에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이 후보로 올라와 토론이 벌어진 적이 있었지요. 지금껏 논문을 한두 편밖에 내지 않았고 인용도 거의 없는 분인데, 앞으로 출판될 논문을 미리 받아 읽어보니, 논문의 머릿말만 읽고도 ‘보통 사람이 아니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이른바 ‘내공’이 대단한 분이었다. 결국 중요한 건 얼마나 독창적인가(original) 하는 점인 것 같습니다.”



독창적이냐 아니냐는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힘든 것 같은데요.

  “정량화 평가에서 독창성(originality)을 평가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논문 수나 인용횟수로는 도저히 측정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당시에 유행하는 주제를 다루면 논문은 더 많이 인용될 수 있습니다. 인기가 없더라도 자기만의 길을 걷는 사람은 독창적이지만 많이 인용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수학계에선 아주 상위그룹을 평가할 때에는 인용횟수를 그리 중시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임팩트팩터 문화가 낯선



그렇지만 국내에선 인용지수가 높은 학술지에 논문을 내고 많이 인용되는 것을 높게 평가하는 게 현실이지 않은가요?

 “수학의 특수성이 잘 인정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그래서 안타까운 일도 생기죠. 미국에서 박사학위 받고 좋은 연구를 하던 분이 국내에 들어와서는 논문을 많이 써야 하니까 좋은 연구를 그만두고 누구나 하는 연구로 방향을 돌리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좋은 연구를 하라고 주는  연구비가 오히려 더 안좋은 연구를 하게 만드는 일도 생깁니다.”



황 교수가 수학자로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그는 애초 물리학자를 꿈꾸던 젊은이였으나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하다가 수학으로 학문의 길을 바꾸었다. 그는 “혁신적인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는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1980년대 대학의 물리학은 실망감을 안겨주었다”며 "수학이 그런 지적 욕구를 채워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000Q.jpg 수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며, 평생 직업이 된 수학의 매력은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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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부 시절에 물리학을 하다가 재미 없어 수학으로 길을 바꾸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잘된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당시 대학 물리학이 저한테는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당시 물리학과로 진학한 학생들은 아인슈타인을 꿈구던 친구들이 많았는데, 뭔가 새롭고 혁신적인 철학과 원리를 찾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1980년대 대학에서 배우는 물리학은 그런 기대를 가진 눈으로 보기에 반도체나 통신기술 등 작은 문제에 매달려 있는 듯해서 재미가 없었거든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발전시키기에는 제약이 많았고 전문적인 세부 지식을 갖추도록 요구하는 게 많았어요.

 그런데 수학에서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풀리지 않는 문제를 최근에 와서 푸는 일도 많고, 오랜 난문을 풀 땐 언제나 혁신적인 생각과 새로운 개념이나 이론이 도입돼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던 것을 약간 개선하는 방식으로는 오랜 난제를 풀 수 없지요. 그래서 그런 지적 욕구를 수학이 채워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수학은 개인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크게 발휘돼 새로운 것을 할 수 있는 열린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물리학도 그렇지 않은 분야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여전히 수학을 택한 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19세기의 전설적 수학자의 업적에 버금가는 그런 혁신적인 일이 오늘날에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수학에서는 혼자서 생각만 잘 하면 자기만의 독창적인 학문 세계를 이룰 수 있습니다.”



혁신적인 생각을 아무나 하긴 힘들지요. 그 정도가 되려면 먼저 수학의 언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글쎄요, 능수능란해야 문제를 풀 수 있다기보다는 문제 풀이에 골몰하면서 능수능란해진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대학원 생활을 할 때 굉장히 어려운 문제에 도전했습니다. 지금도 못 푸는 난제였죠. 지도교수가 이 문제를 풀어서 박사학위 논문을 써보라면서 던져준 문제였습니다. 어떻게 풀어야 할지도 모르는 문제였어요. 몇 년 간 생각했습니다. 밑바닥에서 도전하는 과정이었죠.. 결국에 그 문제를 못 풀었지만 거기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다른 연관된 문제를 풀어 학위 논문을 완성했습니다. 그 시기에는 3~4년 동안 아무런 진전도 없이 문제 풀이만 생각했습니다. 요즘에는 그런 경험의 기회를 학생들에게 주질 않는 것 같아요. 박사과정 때부터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해야 학위를 주는 풍토이니, 접근 방법이 잘 알려진 문제만을 다루곤 합니다. 그런 면에서 (풀 수 없는 문제에 도전할 기회를 얻었던)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지요. 외국에서도 이런 기회가 주어지는 학교는 많지 않고 국내에선 그런 기회를 거의 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너무 실적 위주로 나아가니까 정말 크게 성장할 기회도 줄어드는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그는 ‘풀 수 없는 벽’ 앞에 섰던 대학원생 시절을 강한 인상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결실 없는 도전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지금도 생생하게 생각난다. 아무런 진전도 없이 2년이 지나갔을 때, 졸업은 해야 하는데 문제를 풀 길은 없고 그때엔 정말 안절부절했다. 세상 어느 누구한테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다. 누구도 풀지 못했던 문제였으니까. 절대적인 어려움. 때로는 그런 벽을 만나볼 필요가 있다. 벽을 샅샅이 살피면서 뚫고 나갈 길을 찾으려는 노력을 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성공하지 못해도 가치는 크다”며 “국내 학생들한테 그런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논문 실적을 강조하는 분위기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요?

 “물론 세계적으로도 이전보다는 (학생들한테 논문 실적을 강조하는) 그런 분위기입니다. 그렇지만 미국이나 유럽의 좋은 대학에서는 여전히 그런 (난제 풀이에 도전해볼) 기회를 줍니다. 우리는 좋은 대학에서도 학생이 논문을 출판해야 졸업하는 분위기입니다. 물론 여러 복잡한 현실을 고려하면 대학에서 그런 분위기를 만들지 못하는 상당한 이유가 있겠지만.”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노트르담대학에 계셨고, 이후에 서울대에도 계셨지요?

 "박사학위를 받은 뒤 노트르담대학에 테뉴어트랙 교수로 임용됐습니다. 당시에 제게는 박사학위 논문 외에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이 한 편도 없었지만 면접 뒤에 임용됐습니다. 물론 요즘에야 힘든 이야기이죠. 학술지에 출판한 논문의 성과를 요구하니까. 그 뒤에 서울대 교수로 왔는데, 답답했습니다. 연구 시간이 별로 없었어요. 강의가 많고 잡일이 많아서, 방학 때에만 연구를 할 수 있었으니까요. 방학 때에도 여러 일들이 주어지곤 해서 아예 해외에 나가서 연구하곤 했습니다. 서울대에 3년 있다가 이곳 고등과학원으로 옮겼습니다. 1999년이니까 15년째이군요. 여기에선 강의 없이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그런데 강의를 안 하다 보니 복소기하학이라는 내 분야를 연구하는 국내 후배 연구자가 너무 적어서, 올해엔 카이스트 대학원에서 강의 하나를 맡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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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 연주자 황병기 선생님과 소설가 한말숙 선생님의 아들’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닙니다. 예술가 부모와 수학자 아들이라는 게 독특한데 예술이 수학에 영향을 준 바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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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향이 있다고 보자면 있는 건데, 요즘 와서 생각하면 제가 수학에서 상대적으로 스토리텔링에 익숙한데, 부모님 덕을 본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요즘에도 연구하면서도 틈틈이 소설 작품을 봅니다. 소설을 읽으면 주인공의 마음 속에 들어가서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볼 수 있는데, 영화를 통해서는 할 수 없는 경험이지요. 연구에도 긍정적인 영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또 소설을 통해서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게 되는데 사실 수학에서도 그건 중요합니다. 남의 논문을 볼 때에는 저자의 의식 흐름을 읽어야 어떻게 그런 발견에 이르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고,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발표할 때에는 청중의 의식 흐름을 유도해야 아이디어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습니다. 후배 수학자들 중에는 문제 푸는 것은 아주 잘하는데 설명을 설득력 있게 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종종 있는데, 수학 공부만 하지 말고 소설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수학은 논리로 짜 맞추는 것이지만 그 안에 스토리가 있고 스토리의 흐름, 의식의 흐름이 있습니다.”



'의식의 흐름'



일반인의 눈높이에서 말씀을 나누어보지요. 일반인 중에는 이른바 ‘수학불안’을 느끼는 분도 많은 것 같습니다. 어떤 연구에서는 수학불안을 느낄 때에는 육체적으로 통증과 유사한 반응이 나타난다고도 하더군요.

  “그래요? 나도 사실 그런 걸 느낄 때가 있는데요. 연구가 잘 되는 것 같다가 잘 안 풀리는 상황으로 돌아갈 때, 느낌이 불안할 때가 있습니다. 괴로운 때입니다. 지금에야 그런 느낌이 익숙하지만 젊을 때엔 그런 상황이 종종 우울하게 만들었어요.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듭니다. 수학만이 특별히 불안을 일으킬까? 글쎄요, 특별한 게 있다면, 그건 수학이 직업 수학자한테나 일반인한테나 언제나 과정의 문제라는 점인 것 같습니다.

   수학을 한다는 건, 계산하고 증명하는 것이고, 그것은 머릿속에서 자신만이 밟아가는 과정입니다. 그러니 수학을 한다는 건 그런 과정을 회피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게 수학의 본질이니까. 남이 만들어준 결과나 결론을 편리하게 쓸 수만 있다면 쉬운 일이겠지만, 그건 수학이 아닙니다. 수학은 그 과정을 자신이 스스로 밟아야 하는 것입니다. 과학에서는 결과만 알아도 어느 정도 충분한데, 수학은 결과만 아는 것은 본질과 거리가 멉니다. 생각하고 따지고 논증하는 과정을 따라가야 합니다.”



사실 수학은 일반인의 화제에 오르기 쉽지 않아요. 생물학은 물론이고 물리학에서도 의인화하거나 생로병사에 비유하는 이야기가 가능한데, 수학에선 기껏해야 ‘몇 십 년, 몇 백 년만의 이런저런 난제가 드디어 풀렸다’ 정도만이 화제가 될 법합니다. 게다가 그 난제의 내용은 이해할 길이 없고.

 “사실 수학은 과학과 다른 성격의 학문입니다. ‘수학이 과학이냐 예술이냐’는 수학자들 사이에도 의견이 갈립니다. 엄밀히 말하면 수학은 과학과도 다르고 예술과도 다릅니다. 수학에서는 결과만 얘기하면 의미가 없어질 수 있기 때문에 다른 과학처럼 재미있게 이야기로 바꿔서 설명하긴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수학에서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을 수 있는데 지난해 미국에서 수학적 발견이 대중적인 뉴스로 다뤄진 적도 있지요.”



어떤 뉴스이지요?

 “소수 아시죠? 소수는 나눠지지 않는 수인데, 2, 3, 5, 7, 11 식으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소수가 정수의 세계에서 어떻게 분포되어 있는지는 신비로운 문제입니다. '어떤 소수와 그 다음 소수 사이에 얼마나 거리가 벌어져 있나' 하는 물음은 큰 문제였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죠. 수가 커질수록 나누어질 가능성도 더 많아지니 어떤 소수와 다음 소수의 간격은 갈수록 더 벌어질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면 '소수가 충분히 커지면 그 다음 소수와의 거리도 항상 커질까?' 이것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계속된 물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큰 수를 잡아도 그보다 큰 소수 중에 그 다음 소수와의 간격이 7000만이 안 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 지난해에 증명되어 수학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이 증명을 한 중국계 미국 수학자(Zhang 교수)는 이번에 세계수학자대회 분과강연에 초청되었습니다. 이후에 이 증명이 계속 개선돼 지금은 다음 소수와의 간격이 600이 안 되는 임의로 큰 소수가 있다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정수라는 게 1씩 더해 무한히 커지는, 그래서 거기엔 별다른 특징도 없어 보이는데, 그런 독특한 패턴 또는 특성이 있다는 게 신기하군요.

 “수라는 건 수학에서 여전히 크나큰 미스터리입니다. 정수라는 게 단지 더하기 1로 계속 이어질 뿐인데, 거기에 곱셈이 들어가면 인수가 생겨나고, 그래서 수의 관계에서는 여전히 모르는 게 너무 많이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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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수학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듣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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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상황은 희망적입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서울대, 카이스트, 포스텍 같은 대학들에서 수학과에 최상위권 학생들이 많이 지원한다고 들었습니다. 수학과가 이렇게 인기 높았던 적은 없었다고 하는데 수학계에서도 그 이유를 궁금해하고 있어요.”



'희망을 본다'



우리나라에서 수학이 입시의 주요 과목으로 주목받는 현상에 대해선?

  “좋은 면도 있지만 안 좋은 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초중고에서 선행학습을 많이들 하는데, 수학자들이 보기에는 왜 저러나 싶기도 해요. 수학에서는 논리를 배우는 게 중요한데 문제 풀이의 패턴을 익히는 데 열중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엔 경시대회나 입시 수학 문제를 중에는 배배 꼬아 이상한 것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초중고생한테 수학 공부를 시키는 데에는 열심이면서도 정작 수학의 기초 연구 지원은 좋지 않은 편입니다. 입시 문화는 쉽게 풀 수 없는 복잡한 문제이긴 하지만, 이 때문에 수학 성적은 높지만 수학을 싫어하는 학생도 많은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수학 학문의 길에 발을 내딛거나 내딛으려는 젊은이들한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모든 수학자가 저와 같지는 않겠지만 수학자의 직업 만족도는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수학자들은 동료 의식도 높아서 수학을 한다고 하면 국적과 세대 차이를 넘어서 금세 친해지지요. 수학자 사회에는 상대적으로 편견도 적고 유명하다고 해서 권위를 주장하는 문화도 없어요. 세계수학자대회에서 다수의 초청강연자가 티셔츠에 허름한 차림으로 강연할 것입니다. 수학자들은 대부분 격식을 안 차리고 자유분방하지요. 그런 겉치레보다는 아이디어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런 수학의 세계, 수학자의 세계에 빠져들 만합니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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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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