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의료의 이상과 현실

  endo의 편지  


“…원격의료는 지리적 장애를 극복하는 미래 의료서비스 중 하나로 정착할 것입니다. 따라서 원격의료의 문제는 채택할 것인지 아닌지 결정하는 문제가 아니고 미래 의료서비스의 공공성을 담보하는 바람직한 결과를 만들기 위해 지금 구체적으로 어떤 기반 설비와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하고 다져나갈지를 투명하게 논의하고 결정해야 하는 문제에 더 가깝다고 할 것입니다.…”

00telemedicine.jpg » 의료영리화 논란과 맞물려 원격의료가 논란의 대상이 됐다. 6개 보건의료단체는 지난해 11월 "정부가 추진 중인 원격의료와 영리병원 허용 등 보건의료영리화 및 상업화 제도 도입을 반대한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한겨레 자료사진(2013)


‘원격의료(telemedicine)’는 환자와 의사 또는 의사와 의사가 서로 직접 만나지 않고도 통신수단을 매개로 진단과 치료에 국한한 임상의료 서비스를 전달하는 수단입니다. 따라서 전달되는 서비스의 범위가 이것을 넘어 모든 형태의 건강 관리 서비스를 대상으로 할 때에는 보통 ‘원격 건강관리(telehealth)’라는 확장된 개념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런 원격의료가 고전적 방식이 아니라 무선통신과 각종 현대적 장비를 통해 전달되는 현대적 의미로서 자리를 잡은 시초는 아마도 1960년대 초 유인 우주선 시대의 부산물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유인 우주선 시대에는 우주 항공기술뿐 아니라 우주비행사들이 우주 공간에서 정상적인 신체 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사전 확인과 더불어 우주 공간에 머무는 동안 지속적으로 건강 상태를 감시하는 기술까지도 필요해졌습니다. 이를 위해 미국과 옛소련에서는 몸에 생물학적 기능을 감시할 수 있는 장치를 부착한 동물을 우주로 보내고서 무선통신으로 동물의 건강 상태를 점검하는 자료를 받아 분석하는 실험을 반복함으로써 우주비행사의 예상되는 신체 기능을 사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우주비행사들이 우주 공간에 머무는 동안 건강 상태를 감시하는 데에도 이 방법을 그대로 적용해 발전시켰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70년대 후반에 미국 항공우주국은 의료기관의 혜택을 받기 어려운 지역에 고립되어 있는 미국 애리조나 주 인디안 보호지역에 이 기술을 활용해 원주민들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이로부터 우주 공간과 지상 사이라는 엄청난 거리의 장벽을 극복할 수 있는 원격의료 기술이 지상에서도 거리의 장벽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광범위하게 이용될 수 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원격의료라는 용어가 1970년대에 처음 쓰이기 시작한 데에는 이런 시대 배경이 전적인 역할을 한 것은 아니겠지만 결코 무관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원격의료의 혜택? 아직은 평가조차 힘든 초기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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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적으로 원격의료의 잠재력은 이렇게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지역을 대상으로 한 의료서비스에 국한하지 않습니다. 외딴 지역에 자연재해가 발생해 전문의의 응급처치가 필요할 때, 노약자가 만성질환에 시달리면서도 병원에 자주 가기 힘들 때, 환자를 대형병원으로 이송하지 않고도 근처 동네병원에서 전문의의 추가 진단과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또한 암 진단과 같은 경우에 암전문의, 방사선전문의, 병리학자 등이 영상통신을 통해 동시에 진단과 치료 방법을 논의할 수 있다는 점 등에서 그 확장 가능성은 통신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무한하게 열려 있기도 합니다.


이런 잠재력으로 인해 미국의 많은 의과대학은 원격의료 또는 원격건강관리를 적용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개발해 왔지만, 1960년대 이래 약 50년의 역사를 지닌 현대적 의미의 원격의료는 아직 정착하지 못한 초기 단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원격의료의 적용을 위해서는 국가의 의료시스템 자체에 변화를 주어야 하지만 그런 변화를 적극 수용할 만큼 원격의료 자체의 시스템이 발달하지도 않았고 또한 그 효과에 대한 과학적 근거도 아직 미비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2010년 ‘코크란 리뷰(Cochrane Review)’에 따르면, 의사와 환자가 직접 대면한 결과에 비해서 원격의료의 혜택이 많거나 비용이 절감된다는 증거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왔고, 2012년 노르웨이에서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원격의료 서비스를 받은 결과를 통합하여 분석한 자료도 역시 원격의료 서비스의 혜택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미약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크크란 리뷰는?

코크란 연합은 보건의료의 효과와 근거에 관한 최신 정보를 제공하는 국제기관입니다. 1993년에 설립되어 120개국 이상의 31,000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조직이며, 코크란 연합의 목적은 보건의료 분야에서 양질의 체계적 고찰인 코크란 리뷰를 생성하여 이를 널리 보급 하는 데 있습니다. 이러한 코크란 리뷰를 통하여 보건의료 전문가, 정책 관련자, 환자 및 보호자가 보건의료 분야에서 올바른 의사 결정을 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코크란연합이 운영하는 코크란 라이브러리에서는 5000건 이상의 코크란 리뷰를 열람할 수 있습니다. 또한, 코크란 연합은 무작위 임상시험 논문들에 관한 세계 최대의 데이터베이스인 ‘센트럴(CENTRAL)’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발췌 정리, 출처/ 코크란 연합 한국지부 http://www.cochrane.or.kr/intro/sub2.php)


미국 정부, 비영리 공공병원에만 원격의료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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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적으로는 충분히 수긍할 수 있을 만큼 예상되는 잠재력과 장점은 많이 있으나 원격의료의 실제 효과를 분석한 그간의 자료들은 이렇게 아직 그 잠재력과 장점을 인정할 만큼의 과학적 근거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상대적으로 짧은 원격의료 역사와 제한된 실험자료 탓에 많은 제약을 받고 있으며, 또 한편으로는 원격의료가 기본적으로는 의학의 발전에 의해 의료서비스의 질이 개선된 새로운 의료가 아니라 기존의 의료서비스를 전달하는 방법의 차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질병에 따라서는 예상과 달리 그 혜택이 미약할 수 있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격의료의 내용이나 형식, 방법 등이 아직 제대로 확립되지도, 정착되지 않았고 실험단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까지의 과학적 근거만으로 원격의료의 유용성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이론적으로 동네의원과 대학병원 사이에 원격의료 시스템을 갖추어 동네의원에서 진단이 어려운 부분을 대학병원 전문의의 도움을 받아 진단을 내릴 때, 환자가 굳이 대학병원에 가서 진단을 다시 받는 불편함과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가 있을 수 있는데 이런 시스템이 많이 갖추어져 충분한 평가자료가 있을 때만이 그 혜택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 가능할 것입니다.


또한 원격의료의 혜택은 그 나라의 의료시스템, 의료기관의 지리적 불균형 정도와 접근성, 원격의료로 전달되는 의료서비스의 내용과 형식, 원격의료와 관련된 기술 수준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을 뿐 아니라 국가가 지향하는 의료시스템의 방향과 이를 위한 국가차원의 지원에 의해서 원격의료의 미래가 결정되는 면도 있습니다. 원격의료의 내용과 범위 그리고 서비스의 질과 혜택 정도가 국가에 따라서 차후에 다양한 차이를 보일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예로서, 지난해 1월 미국 연방통신위원회(The Federal Communications Commission)는 지역 병원들이 원격의료를 위한 기반 설비를 구축하는 데 4억 달러를 지원하는 계획을 발표한 바가 있습니다. 이 자금은 비영리 목적의 공공병원들에게만 지원되는 것으로서 시스템이 구축된 뒤 미래에 의료서비스의 지역적 불균형이 공공병원의 원격의료 확장으로 많이 극복되는 과학적 근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원격의료 장점 실현할 구체적 조건과 환경이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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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에서 현재 한국에서 논란이 되는 원격의료는 지금까지 으레 그래왔듯이 전문 분야에 대한 정책을 전문가들의 투명한 논의와 협의과정 없이 정치적으로 결정하고서 논란이 되면 나중에 합리화할 수 있는 근거를 찾아 그것들에 대해 일방적 수용을 강요하는 행태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과학을 바탕으로 한 대부분의 정책 논란에서 숨겨진 상업적 의도를 위해서 과학이 들러리 역할을 했듯이 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원격의료를 통한 의료서비스의 공공성 확대가 목적이 아니라 원격의료를 빌미로 그 매개체인 통신 분야에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것이 주목적이기 때문에 애초부터 원격의료 자체를 위한 정책과 시스템의 개선에 대한 투명한 논의와 협의가 있을 수 없었다고 보는 것이 더욱 맞을 것입니다. 통신 분야의 수익 창출과 공공의료가 충돌할 때 상업적 이유로 국가의 의료체계 자체까지 희생시킬 수 있음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을 만큼 비슷한 과정을 거친 과거 사례들이 그 증거입니다.


이론적인 잠재력과 혜택이 미래에 충분히 실현될 수 있는 구체적 조건과 환경, 원격의료의 내용과 형식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시스템에 대한 개선과 지원 등에 대한 적절한 평가와 근거 제시 없이는 원격의료를 위해서 국가의 의료체계가 바뀌어야 할 근거 자체가 막연한 주장이 되는 것입니다. 사실상 이런 평가와 근거 제시 없이 공공의료가 목적이 아닌 것을 위해 막연한 주장을 할 때는 찬성뿐만 아니라 반대를 하는 쪽에서도 설득력이 없기는 마찬가지이고 일방적인 주장과 억지로 논란과 혼란만이 있을 뿐입니다. 당장 환자들에게 필요한 의료서비스임을 입증하고자 시도하거나 그 반대로 필요하지 않음을 입증하고자 시도하는 노력은 어느 쪽도 현재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원격의료의 이론적인 개념과 혜택이 한국에 그대로 적용될 것이라는 가정에서 나오는 논란이나 정책 결정은 모두 무책임한 탁상공론인 것입니다. 한국의 실정에 맞게 설계된 시스템으로 이론적인 잠재력과 혜택이 실현되고 그것이 예측가능함을 보이는 과학적 증거를 기반으로 투명한 논의가 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현실적으로 도시와 시골 사이에 존재하는 병원과 의료진의 지리적 불균형, 지리적 장애가 있는 병원 간에 전문의들의 협진할 필요성, 병원 접근성이 낮은 노약자의 삶의 질과 관련된 통합의학의 실현, 의료비용의 절감 필요성 등 다양한 요인으로 원격의료는 어떠한 형태이건 미래에 중요한 의료서비스의 전달 방법 중 하나로 정착될 것입니다. 다만 의료서비스를 전달하는 기존의 의료체계가 국가마다 차이가 있고 그에 따라 의료서비스의 질과 양에도 차이를 보이듯이 원격의료도 역시 그 방법과 범위에서 국가마다 차이를 보일 것입니다.


따라서 원격의료의 문제는 채택할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고 미래에 의료서비스의 공공성을 담보하는 바람직한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현재 구체적으로 어떻게, 어떤 기반 설비 및 관련 시스템을 구축하고 다져나가야 하는가를 투명하게 논의하고 결정해야 할 문제에 더 가깝다고 할 것입니다.


글쓴이 ‘endo’는? 미국에서 현업 의사이자 대학 초빙교수로 일하는 의학자 ‘endo’(필명) 님은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의 온라인 게시판에 유익한 글을 올려 주목받아왔습니다. 사이언스온의 독자이기도 한 endo 님은 생의학의 쟁점들에 관한 글을 부정기적으로 사이언스온에 보내오고 있습니다.


[주요 참고자료]


Currell R, Urquhart C, Wainwright P, Lewis R. Telemedicine versus face to face patient care: effects on professional practice and health care outcomes (Review). The Cochrane Library 2010.

http://www.thecochranelibrary.com/userfiles/ccoch/file/Telemedicine/CD002098.pdf


Richard Wootton. Twenty years of telemedicine in chronic disease management . an evidence synthesis. Journal of Telmedicine and Telecare 2012.

http://jtt.sagepub.com/content/18/4/211.full


WHO. Telemedicine: opportunities and developments in Member States: report on the second global survey on eHealth 2009.

http://www.who.int/goe/publications/goe_telemedicine_2010.pdf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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