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연구자들의 "청춘 스케치"

연구의 맛과 멋을 배우는 젊은 연구자들이 실험실에서, 연구실에서, 그리고 사회와 만남에서 얻는 에피소드와 경험, 그리고 생활의 단상을 전합니다.

과학자의 괴짜 이미지? 우리 만의 아름다움은...

홍주은의 ‘천문학 연구생의 동서남북'


[6] 과학자의 이미지, 문화, 정체성

00bigbangtheory_2010.jpg » 미국 시트콤 드라마 '빅뱅이론'. 출처/ '빅뱅이론'


써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해가 바뀌었다. 크리스마스엔 많은 이들이 연인을 만나거나 아이들과 오순도순 트리를 만들며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크리스마스에는 낭만적이고 달콤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통념과 달리 ‘뉴턴 탄신일’을 축하하며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이가 문득 떠오른다. 바로 미국 드라마 <빅뱅이론>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쉘든 쿠퍼 박사다. ‘빅뱅이론(Bigbang theory)’은 과학도 네 명의 이야기를 그린 미국 시트콤이다.


00bigbangtheory1.jpg » 미국 시트콤 '빅뱅이론'의 한 장면.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쉘든은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품으로 뉴턴 동상을 준비했다. 출처/ '빅뱅이론' 하루하루 겨우 허우적대느라 보고 싶었던 미국 드라마는 접어둔 지 오래였지만 ‘빅뱅이론’은 유일하게 챙겨보는 미국 드라마다. 빅뱅이론을 챙겨보는 데는 재미도 재미이거니와 한때 물리학을 공부했던 사람으로서 약간의 의리감(?)도 한 몫 한다. 물리학의 전문 용어나 개념을 이용한 개그에 큰 소리를 내며 웃기도 하고, 주인공들의 터무니없는 행동에 웃기면서도 슬픈 미묘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시트콤이라는 장르 특성을 생각하면 주인공의 성격을 과장하는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공감할 만한 부분도 또한 있다. 내가 접했던 과학 분야에는 ‘빅뱅이론’의 괴짜 주인공 ‘쉘든’과 분위기가 비슷한 사람들도 꽤 있다. 쉘든의 괴짜 같은 면모를 보고 난 왜 웃었을까.



나도 몰랐던 진짜 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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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고등학교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고교시절 이과반에서 공부했지만 대학에 진학해서는 영상학을 전공했다. 친구를 만난 자리에는 친구의 대학 동기도 있어 자연스레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친구의 대학 동기는 내 전공이 천문학이라고 소개하자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학부 때 교양과목으로 천문학 관련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내용이 어려워 좋은 성적을 받지는 못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며 갑자기 ‘밤하늘이 까만 이유는?’이라는 문제가 나왔다고 말하면서, 아직까지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고 나에게 그 이유를 설명해달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마치 해당 과목의 강사라도 된 듯이 ‘올베르스 역설’에다 우주론까지 곁들여 자세히 설명할까 싶다가 “우주가 팽창해서 그래요”라고 짧게 답했다. (올베르스 역설(Olber‘s paradox)은 ‘우주가 무한하고 정적이라면 밤하늘은 밝아야 한다’는 모순을 말한다.)


내가 짤막하게 답하자 내 친구는 “원래 얘는 친구들한테 전공 관련 내용을 자세히 말하지 않아”라며 거들었다. 나도 몰랐던 진짜 내 모습은 비슷한 전공을 하지 않는 친구들에게는 전공 관련 이야기를 전혀 풀어놓지 않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대학 동기와 대학원 동기와는 전공이나 연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내 전공과 무관한 일을 하는 친구 앞에서는 왜 물리와 천문에 대해 전혀 말하지 않았지? 친구들의 관심과는 먼 내용이니 입 밖으로 꺼내놓지 않았을까? 재미없는 이야기로 들릴까봐, 내가 재미없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으로 보일까봐, 걱정스러웠나? 이공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다른 이들이 어떻게 바라본다고 생각했던 걸까. 그리고 자신을 스스로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을까.



‘이런 자리에서 연구 얘기 해야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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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물리학 전공 수업이 시작하기 5분 전쯤에 여자 동기 한 명이 방긋 웃으며 강의실에 들어왔다. 기분이 좋아진 사연을 듣자하니 강의실에 들어오기 전 지나가는 행인이 말을 걸어왔고 '음대생이냐'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었다. 음대생으로 보였다니! 순간 여자 동기들은 부러운 듯 친구를 쳐다보았다. 그럴 법도 한 것이 우리에게는 음대생과 미대생에 얽힌 기억이 너무도 많다.


몇 년 전 텔레비전 광고에서 보았던 '여자 공대생 아름이' 이야기는 텔레비전에서만 볼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2006년 동아리의 스무 살 동기들끼리 강촌으로 떠난 첫 엠티. 홍익대학교 조소과 학생들도 같은 곳으로 엠티를 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동아리 남학생들 몇몇이 우리 모임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미대 여학생들을 보겠다며 곧바로 우르르 나가버렸다. 난 숙소에 남아 있던 동기들과 우정을 다짐했다. 또 꽃이 피던 어느 봄날. 음대는 자연대와는 멀리 떨어져 있어 한참을 걸어가야 하는데도 남자 동기생은 굳이 음대 식당까지 찾아가 점심 밥을 먹었다. 그는 정작 음대생은 왜 안보이냐며 투덜대면서 나왔다. 그런 추억을 간직한 물리학과의 여학생에게, 최고의 칭찬은 "음대생처럼 보인다" "미대생 같다"는 말이었을 것이다.


00s_image2.jpg » 강촌 엠티의 추억이 있는 동아리 동기들. 자연대 축제가 한창이던 날 동아리 깃발을 들고 있다. 자연대동아리답게 이름도 빅뱅이다. 빅뱅과는 끊을 수 없는 연이 있나 보다. 인문학 계열을 전공하는 여자로 보이는 것도 물론 좋다. 음악을 전공하면 예쁠 것 같고 미대를 다니면 세련될 것 같고 인문학을 전공하면 교양이 철철 넘칠 것 같으니까. 내가 보는, 그리고 우리가 보는 이공계 학생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너저분하고 촌스러운 겉모습에 고리타분한 성격을 가진 그런 사람이었을까? 그렇기에 스스로도 과학 전공이 아닌 듯이 보이고 싶었던 걸까. 연구는 물론 잘 하되 그렇다고 과학에만 빠져 있지는 않은 세련된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을까? 잘 놀면서도 공부는 잘 하는 모습으로 보이길 원하는 중2처럼.


‘빅뱅이론’의 금발 미녀 주인공 페니는 일반인을 대변한다. 페니는 괴짜 셸든을 어떻게 볼까. 쉘든의 고집스럽고 황당하고 어이없는 행동과 성격에 페니의 눈썹은 자꾸만 찌푸려진다. 더욱 웃긴 것은 다른 과학도들도 페니와 비슷한 시선으로 쉘든을 보고 있다는 점이다. 쉘든을 보는 시선이 페니나 다른 주인공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과학을 하는 우리끼리도 마찬가지다. 술자리에서 연구에 대해 설을 풀고 있는 사람에게 “이런 자리에서까지 연구 이야기를 꺼내야 하냐”며 핀잔을 주곤 했다. 무슨 소재든 과학이나 연구와 연관을 짓는 친구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미디어가 그리는 과학자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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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학회를 다녀온 어느 교수님께서는 학회 동안 인상적이었던 점을 대학원생들한테 들려주었다. 우선 그 학회는 무척이나 느슨했다고 한다. 학회에는 커피나 차를 마시는 시간이 자주 있었으며, 학회에 참석한 연구자들은 발표가 없는 시간에 파리 시내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떨었다고 한다. 학회에서 만난 사람들과 카페에서 수다를 떨다보면 자연스레 연구에 대해 이야기꽃이 펼쳐지며 토론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학회의 가장 중요한 목적 중 하나인 소통이 딱딱한 학회장 대신 카페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파리가 아닌 서울에서 그런 학회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이번 학회는 날로 먹는 학회라며 내심 좋아하지는 않았을까. 다른 연구자가 쉬는 시간에 연구로 수다를 떨고 있었다면 “에이 왜 그래”라는 말이 순간 나오지는 않았을까. 남들이 보는, 그리고 우리가 보는 과학자에 대한 인식이 그물이 되어 소통이라는 녀석을 덮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진짜 모습이든 아니든, 수많은 로봇 만화에 나오는 괴짜 과학자가 바로 대중이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이다. 물리학도들 사이에서나 인기가 있을 줄 알았던 미국 시트콤 ‘빅뱅이론’은 국내에서도 꽤 많은 사람들한테서 인기를 끌었다. 어렵고 궁금하지도 않은 물리학자들의 세상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가고 궁금하게 만들었다는 좋은 평가와는 달리 한편으로는 우려되는 점도 있다.


빅뱅이론에서 그려지는 물리학자는 미디어에서 멋지게 그려지는 의학, 건축학, 법학, 언론, 금융 등 다른 분야의 직업인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시트콤의 주인공은 술을 먹지 않으면 여자에게 말도 못 거는 천체물리학자, 유당 분해를 못해 우유도 못 마시는 실험 물리학자,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는 공학도, 잘난 척에 극도로 예민한 이론물리학자로 등장한다. 물론 시트콤이니까 우스꽝스러운 소재로 한번 웃고 넘기면 그만일 수도 있지만, 물리학을 넘어서 이공계 연구자들의 세계를 잘 알지 못하는 일반인의 인식 속에 미디어에서 묘사된 이미지가 뿌리박힐까 염려스럽다. 일반 사람들이 행여 이공계 학생 또는 물리학도에 대해 선입견이란 것을 가지게 될까봐.



우리 식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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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는 연구에 치여 바삐 살고 있지만 내면적으로나 외면적으로나 멋있는 사람도 참 많다. 그리고 설령 겉모습이 조금 너저분하든 무엇이 문제가 되랴. 찢어지려고 하는 운동화 밑창과 이미 밑단이 너덜너덜 찢어져 있는 바지를 보며 동갑내기 동기에게 “너 쇼핑 좀 해”라고 말은 했지만, 매일 연구실과 자취방을 오가는 그의 동선에 쇼핑이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친구의 생일이면 생일 케이크나 귀걸이 대신 겨울을 무사히 넘길 수 있도록 두툼한 겨울용 양말이나 모자를 주고받으며 기뻐했다. 촌스러움은 연구에 쏟는 순수한 열정의 증표인 것을, 그게 우리 식의 아름다움인 것을 사실 우리는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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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은 서울대 천문학 박사과정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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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은 서울대학교 천문학과 박사과정, 대학원생
활동성 은하핵의 기작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는 천문학도. 퀘이사의 환경, 초거대 블랙홀의 성장과 은하진화에 관심이 많다. 죽기 전에 이집트 피라미드는 꼭 직접 보고 싶다.
이메일 : jueunhong.astro@gmail.com      
블로그 : http://ju-o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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