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말 줄무늬의 '착시 효과'
■ 사이언스온 뉴스 플러스
» 얼룩말. 출처/ Wikimedia Commons
얼룩말은 왜 줄무늬를 갖게 되었을까요? 얼룩말의 줄무늬가 어떤 기능을 하는지는 진화학에서 오랫동안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습니다. 줄무늬의 기능에 대해 여러 이론이 제기되었지만 정확한 사실은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죠. 이런 가운데, 오스트레일리아 퀸즈랜드대학과 영국 로열할로웨이대학의 과학자들은 ‘움직임 추적 알고리즘’을 사용해 모의실험으로 얼룩말을 관찰해보니 얼룩말이 이동할 때 줄무늬가 흡혈 곤충이나 포식자의 시감각에 두 가지 착시 효과를 일으켜 혼란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고 최근 과학저널 <동물학(Zoology)>에 발표했습니다.
자연선택설로 유명한 알프레드 러셀 윌리스와 찰스 다윈이 얼룩말 줄무늬의 기능에 대해 처음 엇갈린 의견을 내놓은 이후로 과학자들에게 이 문제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습니다. 윌리스는 ‘얼룩말은 줄무늬를 지녀 웃자란 풀 숲에서 위장할 수 있다’는 주장을 폈고, 이에 다윈은 ‘남아프리카의 넓은 평원에서 얼룩말의 줄무늬는 아무런 보호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반박했습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지금까지 여러 이론이 제시되었습니다. 얼룩말이 줄무늬를 이용해 서로 신호를 주고 받는데 사용한다거나, 새벽이나 해질녘에 풀숲에서 위장하는 데 이용한다는 주장이 제시되었습니다. 얼룩말의 줄무늬가 관찰자한테 혼동을 일으킨다는 ‘다즐 위장(Dazzle camouflage)’ 학설이 가장 그럴듯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죠.
» 다즐 위장을 한 전투함, 1918년. 출처/ Wikimedia Commons
‘다즐 위장’이란 대비가 뚜렷한 두어 가지 색으로 그려진 기하학적인 무늬가 서로 간섭 효과를 일으켜, 관찰자로 하여금 그 크기, 속도, 방향을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게 하는 위장입니다. 세계 1차 대전 당시 전투함을 위장하는 데 쓰였던 것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육안만으로 관측과 사격이 이루어졌습니다. 다즐 위장으로 선명한 무늬를 그려 넣은 전투함(옆 사진)은 시각적 교란을 일으켜 상대편이 전투함을 향해 정확히 사격하기 어렵게 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시각적 효과가 관찰자의 눈에 혼란을 일으키는지는 구체적으로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연구진은 얼룩말의 사진과 동영상에서 얼룩말이 무리 지어 움직일 때 나타나는 움직임 신호(motion signal)를 ‘움직임 추적 알고리즘’을 사용해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움직임 신호가 ‘허위 정보’로 넘친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즉 얼룩말의 흑백 줄무늬가 관찰자에게 두 가지 착시를 일으켜 정보를 판단하는 데 어려움을 겪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웨건 휠 효과(wagon wheel effect)’입니다. 웨건 휠 효과는 회전하는 자동차의 바퀴가 어느 정도 일정한 속도에 이르면 뒤로 도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것을 말합니다.
얼룩말의 줄무늬에서 관찰할 수 있는 두 번째 착시 효과는 ‘바버폴 착시(barberpole illusion)’로, 이발소의 간판 기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착시입니다. 이발소의 간판 기둥은 가로로 움직이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줄무늬가 세로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하지요.
로열할로웨이대학의 요한 쟁커(Johannes Zanker) 교수는 “얼룩말의 등과 목에 있는 좁은 세로 줄무늬가 등의 넓은 사선 줄무늬와 더불어 예상치 못한 ‘움직임 신호’를 보냈으며, 이는 따로 움직일 때보다 무리를 지어 움직일 때 더 강해졌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이러한 착시로 얼룩말을 물기 위해 다가 오는 곤충은 얼룩말의 몸에 제대로 착지할 수 없으며, 얼룩말을 쫓던 포식자들은 사냥할 시점을 정확히 포착하기 어렵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얼룩말 줄무늬에 진화적인 이점이 있다는 이론을 입증하는 것으로, 얼룩말 외에도 흑백의 줄무늬가 있는 뱀이나 자리돔 등 다른 동물의 무늬도 설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읽을거리: “점, 얼룩, 줄 무늬 패턴 만드는 유전자의 수학적 발현”, 사이언스온 2012년 9월25일치)◑
김성은 직장인, 과학저널리즘 동아리 '과감' 회원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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