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수상자들, 요즘 학문세태에 잇단 쓴소리

셰크먼 “네이처,셀,사이언스 권위구조 반대, 논문 보이콧”
힉스 “오늘날의 아카데미 풍토에선 나는 생산적이지 못해”


00shekman_higgs.jpg » 올해 노벨상 수상자인 랜디 셰크먼(왼쪽)과 피터 힉스 교수. 출처/ Wikimedia Commons


해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들이 요즘 학문 세태를 비판하는 쓴소리를 잇따라 내고 있다.

2013년 노벨 생리의학상 공동수상자 중 한 명인 미국 과학자 랜디 셰크먼(Randy Schekman,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 교수)은 최근 영국 일간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네이처, 셀, 사이언스 같은) 최고급 저널들의 전제정치(tyranny)를 깨뜨려야 한다”며 “앞으로 우리 연구실은 최고급 저널들에 논문을 내지 않겠다”며 사실상 ‘논문 보이콧’을 선언했다. 세 저널은 매우 높은 평균 피인용 지수를 갖춰 과학계에서 영향력이 큰 3대 과학저널로 꼽히고 있다.


셰크먼은 이런 전통적 과학저널의 대안으로서 웰컴트러스트, 하워드휴즈의학연구소, 막스플랑크연구회가 함께 설립해 출범한 온라인 과학저널 ‘이-라이프(eLife)’의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그는 일정 수준을 충족하는 모든 연구논문을 출판하며 현업 연구자들이 직접 편집하고 독자한테 무료 공개되는 공개접근의 온라인 과학저널이 이런 전통적인 권위의 저널들이 지닌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주장은 세계의 저명한 과학자와 과학단체들이 참여해 ‘저널의 영향력 지수(임팩트 팩터)로 저널에 실린 개별 연구논문을 평가하지 말라’며 밝힌 지난 5월의 ‘샌프란시스코 선언’, 그리고 전통적 과학저널들의 일방적 권위구조에 맞선 지난해 과학자 출판운동의 문제의식과 같은 연장선에서 이뤄진 것으로 풀이된다.


다음은 <가디언>에 기고한 그의 글 일부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우리는 왜곡된 인센티브 제도가 금융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다 압니다. 우리 동료들이 마주하는 인센티브 제도는 물론 큰 보너스가 아니라 권위 있는 저널, 주로 네이처, 셀, 사이언스에 논문을 출판해 얻는 전문가사회의 보상입니다.


 이런 최고급 저널들(luxury journals)은 최상의 연구만을 출판해 질을 보증하는 기념탑처럼 여겨집니다. 연구기금과 임용을 결정하는 위원들은 종종 과학의 질을 보여주는 잣대로 어느 저널에 논문이 실렸는지 따지기 때문에, 그런 저널들에 논문이 실린다면 종종 연구기금과 교수직이 뒤따릅니다. 그러나 거대 저널들의 명성은 부분적으로만 보증될 뿐입니다. 그 저널들이 많은 수의 뛰어난 논문을 싣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오직 뛰어난 논문만을 싣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그 저널들이 뛰어난 논문을 출판하는 유일한 저널인 것도 아닙니다.


 이런 저널들은 매우 중요한 연구를 자극하기보다는 구독상품을 판매하는 데 좀 더 적합한 방식으로 자신의 브랜드를 적극 관리합니다(curate). 한정판의 핸드백이나 수트를 만드는 패션 디자이너처럼, 이 저널들도 희소성이 수요를 낳는다는 점을 알고서 인위적으로 게재 승인하는 논문 수를 제한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배타적인 브랜드들은 ‘임팩트 팩터(영향력 지수, 인용 지수)’라는 장치와 함께 시장에 나옵니다. 각 저널의 이런 지수는 저널에 실린 논문들이 후속 연구에서 얼마나 자주 인용되는지 그 횟수를 측정한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논문이 훌륭할수록 더 많이 인용되고, 그래서 저널이 훌륭할수록 더 높은 지수를 자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심각한 잘못을 지닌 측정치인데도 그 자체로 추구할 목표가 되니, 보너스 문화가 금융계에 그런 것처럼 이것은 과학에 해를 끼치고 있습니다.


 연구성과가 논문이 실린 저널의 임팩트 팩터에 의해 평가되는 일은 일반적이고, 또한 많은 저널들에 의해 권장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널의 지수는 평균치이기 때문에 개별 연구논문의 질에 관해서는 거의 얘기해주는 바가 없습니다. 더욱이 논문의 인용이 논문의 질과 연결되는 것은 때때로 있는 일이지 언제나 그런 것도 아닙니다. 논문은 훌륭한 과학이기 때문에 많이 인용되기도 하지만, 눈길을 사로잡기 때문에, 자극적이거나 틀렸기 때문에 자주 인용되기도 합니다. 최고급 저널의 편집인들도 이런 점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섹시한 주제를 탐구하거나 도전적인 주장을 내세워 파장을 일으킬 만한 논문들을 받아들입니다. 이는 과학자들이 행하는 과학에 영향을 줍니다. 연구자들은 이런 저널들이 바라는 과감한 주장을 내세울 수 있는 유행을 타는 분야에서 거품을 만들고, 그래서 다른 중요한 연구들을 낙담하게 만듭니다. … 극단적인 경우에는, 최고급 저널들의 유혹이 빨리 가는 지름길을 부추기고 그래서 오류나 속임수가 드러나 철회되는 논문 수를 늘리는 데 기여할 수도 있습니다.”


노벨상 수상자가 밝힌 상당히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뜻밖의 선언에 대해, 미국의 한 생화학자는 <가디언>의 뉴스 보도에서 “과학 논문 출판에 큰 문제가 있다는 점에는 동의한다”면서도 ”그러나 더 나은 대안 모델이 아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네이처의 필립 켐벨(Philip Campbell) 편집장은 “우리는 과학적 중요성에 따라 네이처에 출판할 논문을 선정하며 논문 인용과 언론 보도는 뒤따르는 것”이라며 ”네이처 편집위원들이 (논문 인용과 언론 보도 같은) 이런 고려사항들에 이끌려 판단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에 앞서, 올해 노벨 물리학상 공동수상자 중 한 명인 영국 과학자 피터 힉스(Peter Higgs, 에딘버러대학 명예교수)는 최근 <가디언>과 한 인터뷰에서 “요즘과 같은 (경쟁적인 연구 평가를 강조하는) 아카데미 풍토라면 나는 생산적 과학자가 되지 못했을 것”이라며 연구성과 평가와 논문 생산을 강조하는 현재 학문 풍토에 회의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그는 이번 노벨상 수상 업적으로 평가된 힉스 메커니즘을 밝힌 1964년 연구논문을 낸 이래 자신은 10편도 채 되지 않는 논문만을 낸 비생산적인 연구자라고 전하며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도 1964년에 했던 연구를 할 만한 평화와 평온을 내가 가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상상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00dot.jpg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 구글
  • 카카오
  • 싸이월드 공감
  • 인쇄
  • 메일
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창조과학’ 장관후보에, 과학기술계 ‘깊은 실망과 반대’‘창조과학’ 장관후보에, 과학기술계 ‘깊은 실망과 반대’

    취재수첩오철우 | 2017. 09. 05

     취재수첩 | 창조과학자 박성진 장관 후보 지명 논란  문 정부 지지층에서 비판 더 강해, ‘창조과학 비판’ 과학자들 자발적 연재뉴라이트 역사관, “창조공학 필요”, “대기업집중 불가피” 인식도 논란불씨 한 중견 과학자는 “여러 정...

  • 실험실의 지엠오, 시장에 나온 지엠오실험실의 지엠오, 시장에 나온 지엠오

    취재수첩오철우 | 2016. 07. 05

     …취 재 수 첩…  노벨상 수상 110명 “인도주의적 GMO, 반대운동 중단하라”미국과학아카데미 “지엠오와 전통작물 차이 증거 발견 못해”그린피스 “식량과 생태농업 현실적 대안 이미 있는데” 반박“표시제논란과 겹쳐 가열…과학논쟁,...

  • ‘전문연 제도’, 연구인력 정책 틀에서도 논의해야‘전문연 제도’, 연구인력 정책 틀에서도 논의해야

    취재수첩오철우 | 2016. 05. 25

    제도 시행 40여 년 거치며, 병역 정책은 이제 기초 과학기술 연구에도 영향국방 정책 울타리 넘어 연구인력 육성수급이라는 더 큰 관점에서 논의 필요 1973년 이래 시행된 ‘전문연구요원(‘전문연’)의 대체복무 제도’를 폐지할 계획이라고 밝힌 국...

  • 이런 상상: 우리가 인공지능 기자, 판사 만든다면…이런 상상: 우리가 인공지능 기자, 판사 만든다면…

    취재수첩오철우 | 2016. 03. 15

      취 · 재 · 수 · 첩   사람세상 경험의 데이터로 학습하는 인공지능어뷰징, 선정기사로 학습한 인공지능 기자는?불합리 논란 판결로 학습한 인공지능 판사는? 알파고의 학습형 인공지능이 그 어렵다는 바둑 게임에서 최고수를 5전...

  • 궁금한 인공지능과 ‘딥러닝’궁금한 인공지능과 ‘딥러닝’

    취재수첩오철우 | 2016. 03. 11

      취 · 재 · 수 · 첩  컴퓨터 바둑 프로그램이 바둑의 정상에 있는 프로기사를 5번기 제1, 2국에서 잇따라 이겼습니다.바둑을 둘 줄 모르다가 이번 ‘이세돌 대 알파고’ 대국을 계기로 이것저것 살펴보니, 컴퓨터 바둑 프로그램은 ...

자유게시판 너른마당

인기글

최근댓글

트위터 팔로우

sub2 untit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