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암호 재작성 생물'(GRO) 대장균 생산

하버드-예일대 연구팀 ‘유전암호 재지정’ 대장균 생산

아미노산 지정하는 중복 유전암호 중 하나를 치환한뒤

치환된 유전암호엔 자연에 없던 21번째 아미노산 지정

“GMO 유전자 오염 방지, 바이러스 저항성 증가 효과“


00GRO2.jpg » 유전암호들이 지정한 아미노산들을 이어붙여 단백질을 합성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그림. 오른쪽 큰 구조물이 단백질 공장으로 불리는 리보솜. 운반RNA(tRNA)가 유전암호(코돈)가 지정하는 아미노산을 찾아와 리보솜에 차례대로 들어서고 있다. 운반RNA의 꼭대기에 붙은 아미노산이 차례대로 이어지면서 아마노산 사슬인 단백질이 만들어진다. 미국 연구팀은 유전암호 일부에 지정된 의미를 없앤 다음에, 전에 없던 아미노산을 찾아다 붙이라는 새로운 기능을 부여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유전암호는 [거의 모든 지구 생물이 공통으로 사용할 정도로] 거의 보편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자연 생물은 [종간의] 수평적 유전자 이동을 통해 이로운 형질을 공유할 수 있으며, 종이 다른 생물의 유전자도 본래 있지 않았던 생물에서 정확하게 발현할 수 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공통 유전암호를 사용하기 때문에, 바이러스는 [유전정보를 바탕으로] 단백질을 생성하는 숙주의 '번역 과정(translation machinery)'을 강탈할 수 있으며 세포 활력에 손상을 가할 수 있다. 또한 유전자 변형 생물(GMO)은 기능을 하는 디엔에이(functional DNA, 유전자)를 환경에 방출할 수 있다. 바이러스 저항성과 생물안전성은 오늘날 생명공학계가 해결하지 못한 큰 문제 중 하나인데, 유전적으로 격리되거나 바이러스 저항성을 갖춘 생물을 만들어내는 일반적 전략은 아직 없다. 더욱이, 생명공학은 삼중암호 코돈이 64종이나 되는데도 이를 모두 다 사용하는 아미노산은 20종일 뿐이라는 제한에 놓여 있다. 이 때문에 [자연에 없는] 비표준 아미노산을 사용해 단백질의 화학적 속성을 넓히려는 시도도 제한되고 있다. 우리는 유전암호를 다시 정의함으로써 안전하고도 유용한 '유전체 유전암호 재작성 유기체(GRO)'를 만들고자 한다.”

(두 편의 논문 [1] [2] 도입부를 종합해 작성)


유전암호에 지정된 ‘의미’를 임의로 바꾼 대장균 생물체를 만들어 최근 발표한 미국 하버드대학과 예일대학 연구팀은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실은 2편의 논문(논문 [1] [2])에서 이전과 아주 다른 방식을 쓰는 유전자 조작 기법의 개발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두 대학 연구팀은 개개 유전자와 그 염기서열을 다루는 기존의 유전자 재조합 또는 유전자 변형(GM) 방식과 달리, 유전암호가 사용되는 일반 방식을 활용하되 특정한 유전암호를 일반 유전암호 목록에서 빼어낸 다음에 전에 없던 의미를 지정해 부여하는 방식으로 이런 기법을 고안해냈다. 이렇게 해서 자연 생물체의 유전암호가 다루는 20종 아미노산에 더해, 새로운 생물체가 21번째 아미노산을 사용할 수 있음을 실험실 수준에서 입증해 보였다.



생물 공통의 유전암호 일부를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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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GRO_codon.jpg » 출처 / ko.wikipedia.org이런 기술이 가능한 것은 지구상의 모든 생물이 사용하는 공통의 유전암호 사용법 덕분이다. 유전암호가 사용되는 방식을 요약하면 이런 식이다.


생명현상의 청사진인 디엔에이 염기서열 정보가 생명현상을 실제 일으키는 물질인 단백질 분자를 만들려면 세포 안에서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먼저 ‘원본’ 격인 디엔에이 염기서열 정보는 아르엔에이 염기서열 정보로 복사(전사)되어야 한다. 네 염기(아데닌/A, 티민/T, 구아닌/G, 시토신/C)가 연쇄사슬을 이룬 디엔에이 염기정보는 아르엔에이 염기정보(아데닌/A, 우라실/U, 구아닌/G, 시토신/C)로 복사('전사')된다.


길게 이어진 아르엔에이 염기서열에서 염기는 3개씩 유전암호 단위(코돈, codon)가 된다. 4개 염기서열이 3개씩 짝을 이뤄 유전암호를 생성하기 때문에, 가능한 조합의 유전암호는 모두 64종(43)이다. 그러나 실제 존재하는 아미노산은 20종인데, 그 이유는 하나의 아미노산을 지정해 불러내는 유전암호가 여러 종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알라닌'이라는 아미노산을 지정하는 유전암호, 코돈은 GCU, GCC, GCA, GCG 이렇게 4종이다.


염기서열 정보는 운반아르엔에이(tRNA)가 유전암호별로 지정된 아미노산을 찾아서 가져와 세포 안의 '단백질 공장'으로 불리는 리보솜에서, 염기정보 순서대로 차례차례 아미노산을 이어붙여 단백질을 만든다. 단백질은 20종 아미노산의 긴 사슬로 이뤄진다(맨위 그림, 아래 동영상 참조). 단백질 생산 작업이 끝났음을 알리는 유전암호도 있다. UAG, UAA, UGA는 아미노산을 이어붙이는 단백질 생산 작업이 완료됐으니 지금까지 만들어진 아미노산 사슬의 단백질을 단백질 공장에서 떼어내야 한다고 알리는 유전암호다. 예컨대 GCUGCAUAG라는 서열이 있다면 리보솜에선 알라닌 아미노산 2개를 잇따라 찾아다 이어붙이고서 작업이 끝난다.


연구팀은 이런 유전암호 사용 방식에 주목해 '이음동의어'처럼 같은 의미를 나타내는 서로 다른 유전암호 중에서 하나를 다른 것으로 일괄 치환하고서, 치환된 애초 유전암호에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을 개발했다. 단순 비유하면, ‘사람’과 ‘인간’이라는 이음동의어를 쓰는 문서 파일에서 ‘사람’을 ‘인간’으로 일괄 검색·치환하고서(의미에는 변화가 없다), 치환된 애초 단어인 ‘사람’에는 새로운 의미를 지정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사용할 수 있는 ‘의미’의 숫자가 더 많아지는 효과가 생긴다.


[유전암호를 바탕으로 단백질이 생산되는 과정('전사'와 '번역')을 설명하는 애니메이션]



“21번째 아미노산을 지정하는 유전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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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GRO.jpg » '단백질 생산 종료'를 지정하는 UAG 유전암호(맨위)를 같은 의미의 유전암호 UAA로 모두 치환하고(1), UAG를 인식해 단백질 생산 종료를 실행하던 단백질 RF1도 제거하고서(2), 새로운 아미노산 NSAA를 지정하도록 UAG의 의미를 재지정하는 방식으로(3), 유전암호 재작성 생물체인 대장균이 만들어졌다. 출처/ Marc J. Lajoie et al., Science 342(2013), 357-360. 이번에 발표된 두 편 중 첫 번째 논문에서, 연구팀은 대장균 유전체에서 ‘단백질 생산 종료’를 뜻하는 UAG, UAA, UGA 유전암호를 이용했다. 연구팀은 대장균 유전체를 분할해서 특정 염기서열을 일괄 검색하고 치환하는 기법(MAGE)과 이후에 분할된 것을 하나의 유전체로 합치는 기법(SAGE)을 사용해, 대장균에 존재하는 UAG 코돈을 모두 다 UAA로 바꾸었다. 둘 다 ‘단백질 생산 종료’라는 같은 의미를 지니니까, UAG를 UAA로 바꾸었다고 해도 대장균의 단백질 공장이 가동되는 데엔 아무런 변화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생산물인 단백질에도 변화가 없다.


연구팀은 단백질 공장의 생산라인에 UAG라는 유전암호가 뜨면 ‘단백질 생산 종료’를 인식하고서 지금까지 조립된 아미노산 사슬(단백질)을 단백질 공장에서 방출하게 하는 '아르에프1(‘RF1)’이라는 단백질도 대장균에서 다 제거했다. 이제 대장균 유전체를 통틀어 UAG 유전암호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졌지만, 대장균의 생존에는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UAG 코돈 없는" 대장균이 된 것이다.


UAG은 이제 연구팀한테 새로운 자원이 되었다. 64종 유전암호가 지정하는 ‘20종 아미노산’과 ‘단백질 생산 종료’라는 의미 외에 새로운 의미를 임의로 만들어 UAG에 부여할 수 있게 된다. 연구팀은 이를 “생물학적 기능의 확장(expand biological functions)”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UAG 유전암호에다 자연에는 없는 21번째 아미노산을 대응시켰다. UAG 유전암호가 나타나면 이를 인식해 연구팀이 임의로 집어넣은 21번째 아미노산을 찾아다가 단백질 공장에 가져와 아미노산 사슬(단백질)에 이어붙게 하자는 것이다. 그런 기능을 하는 운반아르엔에이(tRNA)도 제작했다. 물론 재료가 되는 새로운 아미노산 물질도 대장균에 넣어주었다. 이제 UAG는 ‘단백질 생산 종료’라는 의미로 인식되지 않으며, 21번째 아미노산을 끌어와 단백질 생성에 참여하는, '특정 아미노산을 지정하는 유전암호(sense codon)'로 기능하게 된다.


이런 대장균 실험은 중복 유전암호 중 일부를 치환해도 생물체가 생존할 수 있으며, 치환된 유전암호를 새로운 아미노산을 지정하는 데 할당해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은 이런 조작이 가능한 기술임을 확인해주는 기초연구 수준이기는 하지만, 기존의 유전자 조작이나 편집 기법과는 판이하게 다른 새로운 방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렇게 유전암호가 재작성된 대장균은 활력이 다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애초에는 유전암호가 재작성된 대장균에선 바이러스 저항성이 매우 높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그 효과가 있었으나 기대만큼 크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연구팀은 보고했다.


두 번째 논문에서, 연구팀은 다른 차원의 대장균 실험 결과를 보고했다. 첫 번째 실험이 ‘단백질 생산 종료’를 지정하며 특정 아미노산 물질을 지정하지는 않는 유전암호를 사용했으나, 이번에는 특정 아미노산 물질을 지정해 단백질 생산 과정에 참여하는 유전암호(의미코돈, sense codon)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연구팀은 대장균의 생존에 필수적인 핵심 유전자 42개에서 유전암호 31종을 선정해 비슷한 방식으로 치환해 없애고서 대장균이 잘 생존하는지 살폈다. 이 실험에서 16개 유전자에서는 실패하고 26개 유전자에서는 대체로 성공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런 결과가 특정 아미노산을 지정하는 유전암호(sense codon)의 치환도 생물학적으로 가능한 일임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런 기법으로 만들어진 생물체에 유전자 변형 생물(GMO)과 다른 이름을 붙였다. GMO는 개개 유전자를 다루지만 새 방식은 유전체 전체를 대상으로 일괄 검색·치환할 수 있으며 단백질 합성 공정까지 직접 조작한다. 그래서 유전체 수준에서 유전암호가 재작성된 생물(Genomically Recoded Organism)이라 부른다. 줄여, 지아르오(GRO)다.


연구팀은 유용한 물질을 만들어내는 미생물이나 동물에 GRO의 인공 유전암호 기법을 사용하면 "유전적으로 격리되는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거의 모든 생물이 공유하는 자연의 유전암호를 이용해 감염하는 바이러스의 공격에 저항성을 높일 수 있으며, GMO의 유전자가 자연환경에 방출돼 생태계가 교란되는 것을 막아주는 예방 기술이 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또한 전에 없던 새로운 아미노산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새로운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토대 기술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새로운 유전자 조작 기법이 얼마나 일반적인 쓰임새를 얻을 수 있을지, 또한 "유전학적으로 격리된 생물"로 인해 생길 수도 있는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나 잠재적 위험은 없을지 현재로선 알기 어렵다. 아직은 기술의 잠재적 가능성을 보여주는 기초연구 단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유전체를 다루는 현대 생명과학이 지금 어디 정도 수준까지 와 있는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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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 취재하는 데 생물학 연구자 한 분이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이 기사는 한겨레 미니칼럼 ‘유레카’(10월30일치)에 실린 글을 풀어쓴 것입니다. 그 글은 다음과 같습니다.


GRO


지구 생물은 공통의 유전암호를 지니며 유전암호 사용법도 거의 같다. 이런 식이다. 네 염기(A, T, G, C)가 연쇄사슬을 이룬 디엔에이 염기정보는 아르엔에이 염기정보(A, U, G, C)로 복사되고, 이어 염기 3개가 유전암호 단위(코돈)를 이뤄 단백질 공장(리보솜)에서 순서에 맞게 20종 아미노산을 찾아다 붙인다. 예컨대 GCU, GCC, GCA, GCG라는 염기서열은 알라닌 아미노산을 찾아 붙이는 유전암호다. 이렇게 아미노산 사슬이 길게 이어지면 생리대사를 일으키는 단백질이 된다.


최근 유전암호 일부의 ‘의미’를 임의로 바꾼 새로운 생물체가 만들어졌다. 대장균 유전체(게놈)에서 특정 유전암호만을 찾아 다른 암호로 치환하고 치환된 애초 유전암호엔 새로운 아미노산에 대응하는 의미를 할당했다. 자연에 없는 21번째 아미노산이다. 단순 비유하면, ‘사람’과 ‘인간’이라는 이음동의어를 쓰는 문서 파일에서 ‘사람’을 ‘인간’으로 일괄 치환하고 ‘사람’엔 새 의미를 지정하는 방식이다. 저명한 유전체학자 조지 처치 하버드대 교수 연구팀이 이런 연구 결과를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이 생물체에 유전자 변형 생물(GMO)과 다른 이름을 붙였다. 지엠오는 개개 유전자를 다루지만 새 방식은 유전체를 대상으로 일괄 검색·치환할 수 있으며 단백질 생성 단계까지 직접 조작한다. 그래서 유전체 수준에서 유전암호가 재작성된 생물(Genomically Recoded Organism)이라 부른다. 줄여, 지아르오(GRO)다.


연구팀은 지아르오가 인공 유전암호를 쓰기에 자연 유전암호를 쓰는 바이러스의 감염에 저항성을 높일 수 있고 지엠오의 유전자 오염을 막는 예방 기술이 되리라 기대한다. 전에 없던 단백질을 얻는 토대 기술이 될 수 있다고도 말한다. 아직 쓰임새가 얼마나 될지, 부작용은 없을지 알기 어렵다. 지금은 기초연구다. 그러나 유전체를 다루는 현대 과학이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이번 연구는 보여준다.(오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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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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