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은 뇌에 쌓인 노폐물을 씻는 과정” -쥐실험

미 로체스터대 연구팀, 살아있는 쥐 뇌의 수면-각성 상태 비교

“수면 동안 뇌 신경세포 간 틈새공간 넓어져 노폐물 쉽게 씻겨”


00sleep.jpg » 호랑이도 잠은 자야 한다. 출처/ Wikimedia Commons


2005년 미국 하버드대학교 앨런 홉슨 교수는 과학저널 <네이처>에 “잠은 뇌에 의한, 뇌를 위한, 뇌의 현상”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잠에 관한 연구의 과제를 정리했다.


“잠은 폭넓은 생물학적 현상이며 그에 대한 과학 연구는 다양한 수준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근본 물음에 답하는 과정에서 두드러진 진보가 이뤄지고 있는 중이다. 즉 잠이란 무엇인가? 잠의 메커니즘은 무엇인가? 잠의 기능은 무엇인가? 이런 물음에 대한 가장 눈에 띄는 답들은 신경과학의 기초·응용 연구에서 나오는 새로운 테크닉을 적용함으로써 얻어져 왔다. 잠 연구는 또한 잠에 의해 유도되는 뇌의 변화와 더불어 변화하는 의식을 이해하는 데에도 빛을 던져주고 있다.”


세 가지 근본 물음 중에서 ‘생물학적 관점에서 잠은 어떤 기능을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한 가지 답변을 제시하는 새로운 연구결과가 나왔다. 연구자들은 잠 자는 동안에 뇌에서는 깨어 있는 동안에 생성돼 쌓인 노폐물을 씻어내는 작용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살아 있는 동물 뇌 실험에서 관찰했다. 잠이 뇌를 청소하는 기능과 관련돼 있다는 것이다.


미국 로체스터대학 메디컬센터의 마이켄 네더가르드(Maiken Nedergaard) 연구팀은 최근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잠은 어른 뇌에서 대사산물 청소를 일으킨다(Sleep Drives Metabolite Clearance from Adult Brain)’는 제목으로 쥐실험 결과를 담은 논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이광자 현미경(two-photon microscope)이라는 장비를 이용해 살아 있는 쥐의 뇌에다 관찰용 염료를 넣은 뒤에 수면과 마취, 그리고 각성 동안에 뇌에서 구조 변화와 유체 이동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관찰했다. 연구팀은 “자연 수면이나 마취는 신경세포 간 틈새 공간(interstitial space)이 60퍼센트가량 확장하는 현상과 연관되어 있으며, 이로 인해 뇌척수액(CSF, cerebrospinal fluid)과 틈새 공간의 유체(interstitial fluid) 사이에서 환류 교환이 눈에 띄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이는 잠자는 동안에 뇌 안에서는 뇌척수액 같은 유체가 흐르는 통로가 넓어지는 구조 변화가 일어나면서 유체들이 좀 더 쉽게 흐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에 앞서 지난해 세포 대사산물을 청소하는 림프계와 비슷하게 뇌 안에도 유체가 흐르는 '글림프계(glymphatic system)가 존재함을 발견해 발표한 바 있어, 이번 연구결과는 살아 있는 쥐의 뇌를 대상으로 글림프계의 기능을 관찰하고 확인한 셈이다.

00brainwash.jpg » 신경세포들의 틈새 공간에 유체가 채워진 채 존재하는 통로(파란색)는 쥐가 잠을 자는 동안에 확장해 노폐물을 씻어낸다. 뇌척수액이 이런 ‘배관 시스템(plumbing system)’을 통해 뇌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출처/ 로체스터대학교 보도자료, 사이언스

더 나아가 연구팀은 치매 같은 퇴행성 신경질환의 원인물질인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실험쥐의 뇌에다 주입하고서 수면과 각성 동안에 일어나는 이 단백질의 이동을 비교했다. 여러 차례의 쥐 실험에서 글림프계는 수면 동안에 10배 이상 더 활성화했으며, 잠 든 뇌가 훨씬 더 많은 베타-아밀로이드를 제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책임저자인 네더가르드는 로체스터대학 보도자료에서 “이 연구는 뇌가 잠잘 때와 깨어 있을 때 서로 다른 기능적 상태가 됨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잠이 지니는 회복 능력은 사실 신경활성의 부산물이 각성 동안에 축적되었다가 수면 동안에 활발히 청소되는 효과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 논문의 저자들이 논문 서두에서 제기한 이번 실험연구의 기본 물음이다.


“수십 년 간의 노력이 있었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생물학의 최대 수수께끼 중 하나는 왜 잠은 회복(restorative) 기능을 하는가, 거꾸로 말해 수면 결핍이 왜 뇌 기능에 장애를 일으키는가 하는 물음이다. 수면 박탈(sleep deprivation)은 학습 능력을 떨어뜨리고, 인지 검사에서 수행 능력에 장애를 일으키며 반응 시간을 늦춘다. 수면 박탈은 졸도(seizures)의 흔한 원인이다. 가장 극단적인 경우에, 지속적인 수면 박탈 상황에서는 며칠 내지 몇 주 안에 실험쥐와 파리들이 죽는다. 인간의 경우에 치명적인 가족력 또는 산발성 불면증이 있다면 이는 수면 결핍 상태를 점차 악화해 결국에는 치매나 몇 달 내지 몇 년 이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이런 뇌 기능 장애는 이번 연구결과와 연관해 추론한다면 수면 동안에 이뤄져야 할 유해 노폐물 청소가 수면 결핍으로 인해 제때에 이뤄지지 못하는 것과 관련될 수 있다는 것이다. 네더가르드 연구팀은 <사이언스> 뉴스 보도에서 "이런 연구결과는 밤샘 근무를 하는 교대 노동자들한테 많은 논쟁거리를 던져줄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논문의 말미에 실린 결론 대목이다.


“신경세포들은 주변 환경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신경 대사(neural metabolism)에서 나오는 노폐물(waste products)을 신속하게 효율적으로 뇌의 세포간 공간에서 제거해야 한다. 세포 활동에서 생겨나는 베타 아밀로이드 올리고머와 아밀로이드 침착물 같은 몇 가지 변성 대사산물은 시냅스간 전달과 세포질의 Ca2+ 농축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 수면 동안에 흩어지며 각성 동안에 축적되는 ‘수면 요구’ 물질(“need to sleep” substance)을 비롯해 수면에 이르게 하는 항상성 기능의 추동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동안 제시돼 왔다. 생물학적 활동은 불가피하게 대사의 변성 산물 생성과 연결되기 때문에, 잠은 다양한 잠재적 독성 CNS 노폐물을 청소하는 중요한 기능에 도움을 줄 가능성이 있다. 우리 분석은 피질의 세포간 틈새 공간이 수면 동안에 60%이상 증가하며, 이로 인해 베타 아밀로이드 등 성분들을 효율적인 환류 작용으로 청소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잠의 목적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시대 이래로 수많은 이론의 주제가 되어 왔다. 이 논문에서 보고하는 발견을 확장하면, 수면의 회복 기능은 뇌가 각성 동안에 축적되는 신경활성의 변성 대사산물을 청소하는 것을 촉진하는 기능 상태로 전환하는 데에서 비롯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왜 깨어 있는 동안에 신경활성의 산물로 생겨 축적될 수 있는 노폐물은 그때그때 처분되지 못하고 잠이 든 사이에 청소된다는 걸까? 네더가르드 연구팀은 다음과 같은 설명을 제시했다.


“뇌가 다룰 수 있는 에너지는 한정돼 있다. 그래서 뇌는 서로 다른 두 가지 기능 상태 사이에서 선택해야만 한다. 깨어 있고 의식이 있는 상태, 또는 잠이 들고 청소하는 상태. 여러분이 집에서 파티를 여는 것과 비슷하다. 여러분은 손님을 접대하거나 또는 집을 청소할 수 있다. 하지만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는 없잖은가.”(로체스터대학 보도자료)


이번 연구는 살아 있는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이며 거기에서 관찰된 사실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수면과 관련해 아직도 많은 부분은 해명되지 않고 있다고 <사이언스>의 뉴스 보도는 전했다. 예컨대, 그런 뇌 상태의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며, 청소 효과가 신경세포 기능의 향상에 직접 기여하는지는 아직 확인되지는 않았다. 또한 잠의 여러 가지 기능 중에서 일부만을 본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험쥐가 아닌 다른 생물종에서도 이런 수면 효과가 나타나는지, 나타나더라도 어느 정도로 효과가 나타나는지도 더 밝혀져야 하는 과제다.


[취재후기] 눈에 띄는 테크니션 제1저자

논문에서는 흥미로운 점이 하나 더 눈에 띄었다. 박사후연구원과 더불어 테크니션이 공동 제1저자의 이름에 올랐기 때문이다. 중국인인 강홍이(Hongyi Kang)는 <사이언스온>과 주고받은 이메일에서 “미국에서 테크니션 직업의 상황이 어떠한지 많이 모르지만 논문 저자의 지위는 개인이 지식과 실험에서 기여한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테크니션이냐 아니냐는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나는 데이터 분석과 이광자 현미경 작업에 관여했으며, 실험동물의 외과시술은 모두 내가 맡아서 했다”고 말했다. 이번 실험연구는 ‘살아 있는 뇌’가 깨어 있거나 잠을 잘 때를 비교할 수 있을 때에만 수행할 수 있는 것이어서, 살아 있는 뇌의 내부를 시각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실험 설계와 운영이 매우 중요한 기여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쥐에서 뇌의 노폐물 제거는 수면의 유일한 기능은 아니겠지만 여러 가지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인 점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실험·연구실을 운영하며 연구원의 연구 진행을 지원하는 인력으로서 테크니션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지만, 더 나아가 테크니션의 직업전문성이 보장되고 그 기여를 충분히 인정하는 연구문화가 마련돼 테크니션이 연구팀 스태프로서 저명 저널에 실린 주요 논문의 제1저자 목록에도 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길 기대해본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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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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