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연구자들의 "청춘 스케치"

연구의 맛과 멋을 배우는 젊은 연구자들이 실험실에서, 연구실에서, 그리고 사회와 만남에서 얻는 에피소드와 경험, 그리고 생활의 단상을 전합니다.

연구 안팎 삶의 균형, 그 사이에 놓이는 선택들 앞에서

홍주은의 ‘천문학 연구생의 동서남북'

[5] 할머니의 임종과 첫 학회 발표

00HJE1.jpg » 할아버지께서는 지난 4월 고운 꽃마차를 타고 마지막 길을 가셨다. 학회 발표 일정 때문에 할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송함은 여전히 남아 있다. 사진/홍주은


석 대보름. 시골집에 내려가 차례를 지내고 묘소로 향했다. 이제는 외로워 보이지 않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무덤 한 쌍. 지난 4월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처음 맞는 추석이다. 무덤 한 쌍을 마주하며 절을 하려는데, 할아버지 묘의 위치가 순간 헷갈렸던 오빠는 난감한 표정으로 내게 급히 속삭였다. “할아버지 묘소가 어느 쪽이지?” 나는 급히 손가락으로 왼쪽을 가리켰다. 생각해보니 오빠는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던 당시에 방문연구생으로 미국에 머물러 있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우리 손자와 손녀는 한 명씩 돌아가며 임종의 순간을 지키지 못했다. 지난 2011년 할머니께서 돌아가시던 날, 나는 학회 발표를 하러 일본으로 향했고 결국에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누구에게나 살면서 선택을 해야만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 순간이 길 수도 짧을 수도 있고, 즐거운 선택일 수도 있고 때로는 가혹한 선택을 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내게 가장 가혹하게 느껴지는 선택의 순간은 아무래도 지지난해 2월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였던 것 같다.



눈물겨운 첫 구두발표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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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설날 시골집에 내려갔을 때, 연로하신 할머니께서 건강이 많이 나빠져 이제 사실 날이 많지 않으리라는 것을 우리 가족은 직감하고 있었다. 나는 2주 뒤에 참석하기로 예정된 학회 기간만 제발 임종의 순간이 피해가길 내심 바랄 뿐이었다. 그때에 가기로 예정된 학회는 일본에서 열리는 글로벌 시오이(Global COE)라는 국제 심포지엄으로, 다양한 분야의 발표가 있는, 주제의 폭이 매우 큰 학회였다. 지도교수님께서는 일본에 있는 교수의 초청을 받았고, 일본 쪽의 경제적 지원을 받아 연구실 대학원생 몇 명이 학회에 참석할 수 있었다. 나는 학회에서 포스터 발표를 하고, 또 천문학 분과모임에서는 구두 발표를 할 계획이었다. 내게는 첫 번째 해외 학회 참석의 기회였고 첫 번째 구두발표를 경험하게 될 학회였다. 첫 구두발표를 국제학회에서 해야 하니, 영어회화에 자신감이 별로 없었기에 발표 준비를 완벽하게 하고 싶었다.


학회에 가기 며칠 전, 금요일 팀 미팅 시간에 학회에서 발표할 학생들이 미리 발표 예행연습을 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내 발표가 있기 직전의 쉬는 시간에 오빠한테서 걸려온 한 통의 부재중 전화가 있는 걸 알게 됐다. 나는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께서 지금 응급실로 실려 가시는 중’이라는 급박한 소식을 들었다. “임종이 가까웠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아버지는 비행기 타러 가셨어. 넌 어떻게 하는 게 좋겠어?” 전화를 끊고서 머릿속이 새하얘진 채 나의 예행발표는 시작되었다.


발표가 마치고 연구실 선배들, 연구원 분들과 교수님한테서 쏟아지는 수많은 코멘트는 할머니 소식과 뒤범벅이 되어 정신이 없었다. 그날 밤 연구실에 혼자 남아 발표 내용을 수정하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저 눈물이 나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조건 연구와 발표 준비를 빨리 끝내고 장례식을 갔다 와서 학회를 가는 거였다. 하지만 연구라는 놈은 호락호락하지 않아 내 마음대로 그리 쉽게 되지 않았다. 빨리 끝나지 않았다. 토요일 내내 교수님과 12통의 메일을 주고받은 뒤 발표할 내용을 겨우 정리할 수 있었다.


다행히 부모님께서는 일요일 저녁에 다시 서울로 올라오셨고, 할머니께서는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겨우 숨을 쉬고 계시다고 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내게 ‘너는 아무래도 장례식을 못 볼 것 같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라’고 하셨다. 일요일 밤새 포스터를 만들고 월요일 밤새 구두 발표 파일을 만들며 ‘제발’이라는 한 단어를 되뇌이고 되뇌였지만 화요일 새벽에 할머니의 임종 소식이 들려왔다.


00HJE3.jpg »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고 내 포스터 발표는 같은 연구실 대학원생들이 맡아주었다. 4시도 되지 않은 새벽에 집 안의 모든 불이 켜졌고 서둘러 짐을 꾸리시던 아버지께서는 ‘걱정하지 말고 할 일 잘 하고 오라’고 하셨다. 왜? 차라리 혼이라도 냈으면. ‘네 연구가, 네 발표가,  네 일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냐’고. 가족보다 더 소중한 거냐고 따지고 혼을 냈으면 차라리 덜 미안했을 텐데. 어미를 잃은 슬픔이 몰려오는데도 그 슬픔이 제 자식에게는 짐이 되지 않게 하시려는 듯한, 그런 말씀이 오히려 내게는 더 큰 슬픔이고 죄송스러움이 되었다. 학회에 가야 하는 것인지, 장례식에 가야 하는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할 시간도 없이 나는 공항에 가기 직전까지 발표 내용을 작성했다.


가족이 모두 급히 고향 마산으로 떠나고 홀로 끌고 가는 짐은 너무나 무거웠다. 그 짐을 들고 인천공항으로 가는 길은 무척이나 길었다. 나는 ‘프로페셔널’하지 않은 걸까? ‘프로’는 무엇이고 어떤 사람인 걸까? ‘프로’라는 이름의 무게가 나를 짓누르는 순간이었다. 나는 마산으로 내려갔어야 했다. 하지만 일본으로 향했다. 그 사실 자체가 나를 무겁게 짓눌렀지만 일본 쪽의 경제적 지원으로 예약한 비행기 표였기 때문에 함부로 시간 변경도 할 수 없었다. 다행히 지도교수님께서는 내 상황과 사정을 일본 쪽에 전달하는 데 힘썼고 돌아오는 날짜를 앞당길 수 있었다. 결국 구두 발표까지는 마치고 포스터는 선배에게 쥐어준 채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일본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다시 마산으로, 마산터미널에서 다시 시골집으로. 혼자 아무 말도 소리도 없이 가는 긴 여정이었지만 마음은 오히려 가벼웠다. 이미 발인도 놓친 상황에 남은 학회 일정을 보내지 못한 것에 대해 아무도 뭐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나는 아직 ‘프로’는 아닌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프로가 아니어도 좋으니 한국에 돌아가고 싶었다. 도착한 시골집에는 할아버지의 눈물이 있었고, 나는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은 결정을 했을 것이다.



'관대함'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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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들이 때때로 가족에 신경을 쓰지 못하면서 사는 경우가 있다. 퇴근 시간이라는 것이 없는 연구 생활에 치여 살다보면 가족과 함께 보낼 시간이 많지는 않다. 물리학도였던 학부 시절에 공부했던 상대론 교재의 맨 첫 장 첫 문구에 노란 형광펜으로 줄을 그었던 적이 있다. 첫 장에는 “To my wife Linda the most generous person I have ever known (내가 아는 한 가장 관대한 사람인 내 아내 린다에게)”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제야 책 저자가 이 문구를 쓴 이유를 조금 알 것 같다. 그에게 아내가 ‘Generous(관대하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한다.


공부를 무척 잘 한 아들이 명문 대학에 들어가 다른 아주머니들의 부러움을 샀던 한 동네 아주머니가 있었다. 하지만 그 아주머니는 공부 잘한 첫째 아들보다 공부는 잘 하지 못했던 둘째 아들이 더 좋다고 말씀하셨다. 명문대 공대를 나와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첫째 아들보다 집에서 멀지 않은 대학을 졸업했지만 어머니가 마트에 갈 때면 언제나 차로 태워다 주고 짐도 들어주는 둘째 아들이 더 효자라고. 대단한 업적을 다른 누구를 위해 쌓는 것도 아니지만 자신이 세운 대의가 일상의 소소한 행복과 상충할 때 많이 아쉽기도 하다. 가족과 다른 누구에게 소소한 행복을 자주 베풀지 못하는 점. 그 점이 가장 아쉽다.


대학원 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연구와 다른 삶과의 균형을 잘 잡지 못했던 것 같다. 수업을 듣고 과제하고, 조교 활동을 끝내고 팀 미팅 갔다 오면 저녁을 먹으러 가야할 시각이었다. 연구는 늘 저녁부터 시작이었고 하면 할수록 끝이 안보일 때가 많았다. 사실 끝이 안 보이는 것이 아니라 연구에는 끝이란 존재하지 않기에 대학원 생활에 있어 하루씩 마무리를 잘 짓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도 박사과정 선배들이나 교수님들을 보면 연차가 쌓일수록 점점 시간 관리하는 법을 터득하고, 연구와 다른 삶에서 자신이 원하는 균형대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점차 생기는 듯하다. 지도교수님께서는 저녁이 되면 반드시 퇴근을 하셨다. 집에 일찍 들어오라는 아내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다. 물론 연구와 업무는 장소를 바꿔 집에서도 계속됐고 급한 경우에 자정까지는 메일을 보내면 답장을 곧바로 하셨다. 굳이 집에 가셔서 일을 하고 메일을 보내시는 이유는 분명 있으리라 생각한다.


* * *


00HJE4.jpg » 할아버지, 할머니의 묘소. 사진/홍주은 할머니를 생각하며 글을 씁니다. 책임감 있는 천문학도와 도리 있는 손녀 사이에서 나는 무엇을 선택해야 옳았을까요? 전 아무 것도 택하지 않았고 또 아무것도 버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것입니다. 둘 중 하나만 택해야 한다면 어떤 길을 가든 저는 응원해주고 싶습니다. 충분히 고민했던 동안에 두 길은 모두 그에게 값진 것이 됐을 테니까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을 끝내 포기하지 못해 당신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함께 하지 못했던, 못났지만 당신을 누구보다 빼닮은 손녀가 이 글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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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은 서울대학교 천문학과 박사과정, 대학원생
활동성 은하핵의 기작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는 천문학도. 퀘이사의 환경, 초거대 블랙홀의 성장과 은하진화에 관심이 많다. 죽기 전에 이집트 피라미드는 꼭 직접 보고 싶다.
이메일 : jueunhong.astro@gmail.com      
블로그 : http://ju-o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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