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민주주의: 증거와 토론에 열린 사회를 위해

  endo의 편지    정부, 과학, 민주주의


"...과학과 증거 기반에 의한 의사결정 그리고 건설적인 토론은 국민의 번영과 건강 및 안전을 증가시키고 민주주의를 강화합니다. 과학과 민주주의는 열린 마음으로 언제든지 새로운 증거에 의해 결론이 바뀔 수 있다는 전제가 없다면 독선으로 탈선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4대강 사업의 과학적 타당성에 대한 전문가 비평은 억압되거나 정치적 탄압으로 이어졌고, 천안함 사고는 아예 이념 논쟁으로 둔갑했습니다. 민주주의 자체가 바로 개개인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문제임을 인식하고 과학의 올바른 제자리인 과학의 원칙과 윤리를 고민해야 할 시기입니다..."
00democracy.jpg » 과학을 강조하는 우리 사회는 관찰과 증거에 기반해 열린 의사결정과 결론에 도달하는 '과학'에 익숙해 있는가? 과학은 여전히 경제개발의 도구일 뿐이고 정치적 주장을 포장하는 수사로 사용될 뿐인가? 사진은 민주주의 의사결정의 주요한 제도인 국회의 본회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2013. 9. 30)


미국의 '과학 복구'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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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연설에서 ‘미국 과학을 제자리로 복구해 놓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전임인 조지 부시 대통령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정면으로 그가 미국 과학을 탈선시켰다고 규정한 셈입니다. 이런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을 두고 2009년 1월 26일치 <뉴욕타임즈>에는 매우 의미있는 글이 실렸습니다.


‘과학을 향상하는 것은 곧 민주주의를 향상하는 것’이라는 제목의 글은, 미국 과학계의 어깨에 드리운 먹구름이 걷히는 느낌이 드는 연설 내용이라는 점을 전하며 과학과 민주주의는 항상 쌍둥이로 지내왔다고 지적했습니다. 건전한 과학을 하지 않고 있다면 건전한 민주주의를 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고, 역으로 건전한 민주주의를 하지 않고 있다면 건전한 과학을 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 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한 나라의 과학은 마냥 인간에 유익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타락하고 탈선했을 때에는 그 나라 민주주의 자체를 파괴하는 흉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1999년 유네스코(UNESCO)가 주체했던 세계 과학자 컨퍼런스에서 어느 학자의 발표 내용처럼 과학은 민주주의가 작동하도록 하는 논리의 형식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는 개인이 자유롭게 정보와 자료를 평가하고 대안을 비교·분석하며 최선의 의사결정을 내리는 그런 것이고, 이것이 바로 과학이 제공하는 논리의 형식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과학이 제공하는 논리의 형식에 조작과 왜곡이 있을 때에는 민주주의 자체가 왜곡되어 정상적으로 기능하기 어려울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영국 물리학자 브라이언 콕스가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사람이 과학적 방법을 이해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도 이런 연관성을 간파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과학 발달로 인해 사회 전반에 걸쳐 과학적인 요소가 많이 침투해 있는 오늘날에 와서는 많은 의사결정이 과학적 근거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기에 그 중요성은 더욱 커졌습니다. 그러나 과학적 의사결정의 중요성이 커진 만큼 그 과학에 대한 조작과 왜곡으로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려는 유혹도 또한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의 부시 정권은 바로 이렇게 세계적 선도 위치에 있는 미국 과학을 타락시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흉기로서 전례없이 과학을 많이 이용한 사례였던 것입니다.


2004년 49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비롯해 수천 명 과학자들이 부시 대통령에게 잘못된 과학을 바로잡아 달라는 탄원서를 내었던 사실은 이를 증명하고도 남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자격이 없거나 혹은 이해관계에 연루된 고위 공직자들을 임명해 과학적 사실이 정치적 목적에 부합되지 않을 때 과학을 조작하도록 했고 과학적으로 근거가 희박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왜곡과 허위 논리로 과학을 뒤틀어 국민을 오도해 왔습니다. 그 실례로 2004년과 2006년에 미국 언론과 과학자 단체가 미국 식약청(FDA)에 근무하는 과학자들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5명 중 1명 정도가 식약청이 내린 과학적 판단에 대한 자료를 정치적으로 조작 또는 왜곡하도록 요청받았다고 했습니다.



미국보다 심각한 한국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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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대통령 시절에 이렇게 많은 노벨상 수상자들과 수천 명 미국 과학자들이 탈선한 미국 과학을 바로잡아 달라고 요청하고 있을 때 한국 정부는 광우병 논란이 일자 ‘사전예방’에 기반을 둔 수입식품의 위생문제로서 자국의 독립적인 과학적 판단보다는 과학을 타락시켜 비난을 받고 있던 부시 행정부의 말을 더 믿었고, 미국 대사는 한국 국민의 과학적 사고를 의심한다는 발언을 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국 사회에서 4대강 사업의 과학적 타당성에 대한 전문가 비평은 억압되거나 정치적 탄압으로 이어졌고, 천안함 사고는 아예 이념 논쟁으로 둔갑했습니다. 부시 정권이 교묘하게 종교적 신념을 과학적 논란인 것처럼 부추겼으나 실패했던 이른바 ‘창조과학’이 한국에서 활개를 치고 있어도 정부는 그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학 자체의 미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당리당략에 함몰된 정치와 언론의 선동에 의해 과학정책이 좌지우지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이는 한국에서 사회적 논란으로 드러난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예일 뿐입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미국 오바마 대통령처럼 탈선해 있는 과학을 복구해야 한다는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현 정부의 인식 수준입니다. 과학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하고, 현란한 정치적 수사를 동원해 홍보해도 결국 현 정부는 과학을 단순히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주는 도구와 목적으로서 중요성을 인식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렇게 단정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과학은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일관성 있는 논리의 형식을 제공하기 때문에 모든 의사결정에 민주주의적 절차가 스며들게 마련입니다. 정부의 모든 정책과 의사결정에 일관성이 없고 독선적이라면 진정성 있는 과학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도구와 목적으로서 기회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인 것입니다.


21세기의 혁신적 아이디어 중 하나로 얘기되는 ‘증거 기반 의학(EBM)’이 결코 우연으로 현대 의학의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은 것이 아닙니다. 이것도 역시 과학과 민주주의의 의사결정이라는 두 가지가 결합되었을 때 최선의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 입증되었기 때문입니다. 의사가 개인적 경험과 지식에 의존해 전문가로서 수동적인 환자에게 독선적인 진단과 치료 결정을 내리던 전통적 치료 방법을 버리고서 의사결정 과정에 과학적 증거라는 객관성과 투명성을 부여하고, 환자의 의사를 반영하는 증거 기반 의학은 바로 과학과 민주주의의 결합인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 정부의 과학에 대한 인식 수준은 지극히 저급한 수준으로, 기술과 과학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기도 합니다. 과학과 기술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만 바탕이 되는 사고 방향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과학은 과학적 사실을 지식으로 축적하여 ‘왜?’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지만 기술은 과학을 응용하여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한 방법으로서 ‘어떻게?’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을 제시합니다. 과학과 기술은 각기 다른 전문가들이 각기 다른 목적으로 추구하는 분야입니다. 그 중간에서 이 둘을 연결하는 중개연구(translational research)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 의학에서 과학이 기술적 측면인 의술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적 의사결정을 하기 위한 근거로서 핵심적 역할을 하듯이, 기본적으로 과학은 모든 분야의 민주주의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그 핵심이 있습니다. 정부가 진실을 모를 때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해답을 찾을려는 의지가 바로 과학이며 이것은 민주주의적 의사결정 과정으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진정한 과학적 사고는 조작과 왜곡이 없는 투명한 자료를 바탕으로 자유로운 실험과 토론을 통해 의사결정에 이르고 그러한 의사결정마저 다시 전문가들의 동료평가(peer review)로 수정과 보완을 거치고 최종 결정에 이르는 일련의 과학적 과정을 모든 의사결정에 일관성 있게 적용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과학을 앞세울 때는 과학을 빙자한 사이비과학에 지나지 않고 그것은 곧 과학이 탈선하고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천되지 않고 있다는 증상과 징후가 될 것입니다.


그러한 증상을 가진 사회에서 과학적 논리의 형식이 갖추어지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과학적 문제가 개인의 성향과 취향에 의한 이념논쟁으로 변질되고, 또한 이러한 저급한 논쟁을 선동하는 언론 보도들을 비판적 수용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현상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탄탄한 근거로 결론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정부의 어떠한 해답과 해명에도 비판적 수용의 자세로 남아 있어야 할 주체인 국민이 스스로 타락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사이비 과학과 사이비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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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탈을 쓰고 있지만 과학이 아닌 것을 사이비 과학이라고 하듯이 민주주의의 탈을 쓰고 있지만 민주주의가 파괴되어 부분적인 민주주의에 지나지 않을 때 사이비 민주주의라고 부릅니다. 국민에 의해 지도자가 선출되는 민주주의적 절차를 가지고 있더라도 그 지도자가 행사하는 권력의 근거와 정당성에 대한 정보가 차단되거나, 혹은 정보가 조작 또는 왜곡되어 전달되거나, 논쟁을 기꺼이 수용하지 않고 표현의 자유에 유무형의 제한이 있으면 비자유적 민주주의로서 사이비 민주주의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이비 민주주의에서는 비판적 수용이 과학의 핵심인데도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는 특징을 드러내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과학 그 자체나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과학이 아니라 소수의 정치적 목적과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단적인 예로 옛소련이 노벨상 수상자를 많이 배출했지만 민주주가 없는 과학의 실상을 잘 말해 주기도 합니다. 정부의 막대한 집중투자로 물리학 분야에서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을 뿐 그 이외의 과학 분야에서는 거의 노벨상 수상자가 없습니다. 특히 국민 삶의 질에 연관된 여타 과학 분야는 후진성을 면치 못했습니다. 옛소련의 과학에는 휴머니즘이 없었고 과학 본연의 목적보다는 정치적 목적과 수단으로서 과학이 중요했을 뿐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자연적으로 정치가 과학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구조로서 사회주의 이념에 반하는 기초과학적 사실까지도 오히려 부르주아 사이비 과학으로 규정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유전학을 부정하고 과학계에서 이미 폐기된 용불용설에 근거한 라마르키즘을 정치적 이념에 의해서 받아들였던 리센코이즘(Lysenkoism)은 노벨상 수상자들을 배출할 정도로 발전한 특정 과학 분야의 발달이 결코 그 나라 전체의 과학 수준을 높여주는 것이 아님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예가 될 것입니다.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던 옛소련의 발달된 과학도 민주주의에 영향을 받은 소련연방의 붕괴를 막지 못한 것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의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대통령 과학자문위원의 지위를 이전보다 격상하고, 백악관 과학기술정책국(White House Office of Science and Technology Policy)으로 하여금 정부의 의사결정에 과학적 진실성을 복구하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는 각서에 서명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각종 정부 기관에 과학에서 정치를 분리할 것을 지시하는 등 다양한 실천적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그리고 올해 5월 오바마 대통령의 과학 수석보좌관인 존 홀드런(John Holdren) 은 스티븐스 공과대학 강연에서 다양한 증거를 제시하며 오바마 대통령이 그동안 미국 과학을 본래 있어야 할 제자리로 복구해왔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의 노력이 얼마나 성과가 있었는지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공공정책의 목적과 수단으로서 과학이 핵심적 역할을 하게 하겠다는 그의 공약은 과학을 단순하게 상업적 이익과 경제성장의 수단으로 연계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과 쌍둥이인 민주주의라는 이념을 건전한 과학으로 구체화하고 국민이 체험하게 하는 데 많은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과학적 사실을 말할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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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북부 왕국이었던 프러시아의 어퍼 실레지아 지역에 1847부터 발진티푸스가 유행하고 많은 희생자들이 발생하자 정부는 1848년 당시 26세의 의사이며 베를린의 한 병원에서 병리학 강의를 하고 있었던 루돌프 피르호에게 역학조사를 맡겼습니다. 약 3주 간에 걸친 역학조사 뒤에 그는 개별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나 일시적인 의식주 해결을 위한 지원으로는 이 질병의 유행을 막을 수 없으므로 제한 없는 민주주의, 정부로부터 의사결정의 이양, 종교의 영향력 축소 등과 같은 획기적인 대처 방안을 담은 역학조사 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그 보고서는 발진티푸스를 퇴치하거나 대책을 세우는 데 이용되지도 않았고, 오히려 이 보고서로 말미암아 루돌프 피르호는 1849년 그의 직위를 박탈당해야 했습니다.


오늘날 통용되는 인수공통감염병(zoonosis)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내는 등 ‘병리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루돌프 피르호는 이렇게 자신의 과학적 판단과 소신을 지킴으로서 정치적 탄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경험을 통해 현재의 사회의학(Social Medicine) 분야가 발달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습니다. “의학은 일종의 사회과학이며, 정치는 규모가 큰 의학일 뿐이다”라는 그의 유명한 말은 의학으로 표현된 과학과 과학자들이 민주주의에서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학은 실험과 관찰로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낼 뿐 아니라 그런 지식으로 다양한 사회문제를 찾아내고 식별해서 위험을 경고하거나 대안을 제시하는 학문이기도 합니다. 이런 역할을 하는 과학에 진정성이 없거나, 양심 있는 과학자의 소신이 억압받는다면 규모가 큰 의학으로서 정치는 돌팔이가 의료 행위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돌팔이가 행하는 의학은 사이비 의학이며 그 사회는 사이비 민주주의가 될 것입니다. 의사가 의학의 원칙과 윤리에 따라 양심껏 건전한 의료행위를 해야 한다면 같은 기준으로 과학자, 정치가 등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들의 직업윤리에서 주어지는 책임이지 권한이 아닌 것입니다.


2012년 참여과학자연합(the Union of Concerned Scientists)이 ‘과학과 민주주의 센터(The Center for Science and Democracy)’를 설립했습니다. 과학과 증거 기반에 의한 의사결정 그리고 건설적인 토론의 역할 증대를 통해 미국 국민의 번영과 건강 및 안전을 증가시키는 한편 미국의 민주주의를 강화한다는 것이 이 센터의 설립 목적입니다. 적어도 미국은 과학이 정치적, 상업적 이익만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과 목적으로 탈선하는 것을 감시하는 한편 건전한 과학을 통한 민주주의를 실천하려는 양심 있는 과학자들이 가시적인 활동을 하고, 완벽하지는 않지만 거기에 동의하고 실천적인 노력을 하는 대통령이 있습니다.


국민의 건전한 기초과학 교육이 민주주의가 정착되도록 하는 필수불가결의 요소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 과학자들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한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가 앞장서서 건전한 과학을 방해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면서 과학의 중요성을 운운한다면 그것은 비양심적이고 파렴치한 모순행위입니다. 민주주의를 추구하기보다는 독선적이고 억압적인 것을 선호하는 정부나 그러한 정부에 기생하여 사익을 추구하는 세력이 항상 과학을 통제하고 지배하려는 시도를 하기 마련입니다. 건전한 과학이 제공하는 과학적 진실에 대한 공포가 그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고도 남을 만큼 크기 때문입니다.


과학과 민주주의는 열린 마음으로 언제든지 새로운 증거에 의해 결론이 바뀔 수 있다는 전제가 없다면 독선으로 탈선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도 민주주의 자체가 바로 개개인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문제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과학의 올바른 제자리인 과학의 원칙과 윤리를 고민해야 할 시기입니다.◑


필자 endo는 미국에서 현업 의사이자 대학 초빙교수로 일하는 의학자 ‘endo’(필명) 님은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의 온라인 게시판에 유익한 글을 올려 주목받아왔습니다. 사이언스온의 독자이기도 한 endo 님은 생의학의 쟁점들에 관한 글을 부정기적으로 사이언스온에 보내오고 있습니다. -사이언스온


[주요 참고자료]



Brian Cox on the Role of Science in a Democracy.

http://www.youtube.com/watch?v=mVffDBjmdXE


Dr. John Holdren‘s speech at the Stevens Institute of Technology. May 13, 2013

http://www.youtube.com/watch?v=y3hH38_1Pbo


Michael D. Gordin. How Lysenkoism Became Pseudoscience: Dobzhansky to Velikovsky. Journal of the History of Biology. 2012.

http://link.springer.com/article/10.1007%2Fs10739-011-9287-3


RexTaylor and Annelie Rieger. Rudolf Virchow on the typhus epidemic in Upper Silesia: an introduction and translation. Sociology of Health & Illness, 1984.

http://onlinelibrary.wiley.com/doi/10.1111/1467-9566.ep10778374/pdf


Rosenberg AA, Halpern M, Shulman S, Wexler C, Phartiyal P. Reinvigorating the Role of Science in Democracy. PLoS Biology 2013.

http://www.plosbiology.org/article/info%3Adoi%2F10.1371%2Fjournal.pbio.1001553


The Center for Science and Democracy, home page.

http://www.ucsusa.org/center-for-science-and-democracy/


The New York Times. Elevating Science, Elevating Democracy. January 26, 2009.

http://www.nytimes.com/2009/01/27/science/27essa.html?_r=0


UNESCO. World Conference on Science. 1999.

http://www.unesco.org/science/wcs/abstracts/thematic_meetings.htm#II_11


US House of Representatives Committee on Government Reform. Politics and Science in the Bush Administration. 2003.

http://oversight-archive.waxman.house.gov/documents/20080130103545.pdf


Zehtabchi, S. and Jones, A. E.. Democracy, Ambiguity, Scrutiny, and Evidence-Based Medicine. Academic Emergency Medicine, 2009.

http://onlinelibrary.wiley.com/doi/10.1111/j.1553-2712.2009.00387.x/f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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