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파탐지’ 돌고래와 박쥐, 유전자들도 비슷한 '수렴진화'
생물종 아주 달라도 비슷한 형질·모습 띠는 ‘수렴진화’
영국연구팀, 첫 유전체 전체 비교 분석해 근거 찾아내
» 박쥐와 돌고래는 서로 무관한 진화의 길을 걸어왔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음파탐지 능력을 발전시켜왔다. 최근 연구에서 이들이 걸어온 각자의 길은 유전자 염기서열 차원에서는 매우 흡사한 변이를 보이는 것으로 밝혀졌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음파를 쏘아 먹잇감이나 장애물을 인지하는 ‘음파탐지’의 능력자인 땅 위의 박쥐와 바닷속의 돌고래는 아주 다른 환경에서 사는 아주 다른 생물종인데도 여러 유전자들에서 거의 같은 변이의 패턴을 지닌 것으로 나타났다. 6000만 년 전 공통조상에서 갈라지고 4000만 년 지난 뒤 각자 음파탐지 능력을 발전시킨 서로 무관한 진화의 과정에, 유전자 염기서열에선 비슷한 변이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영국 런던 퀸즈메리대학의 스티븐 로시터 연구팀은 과학저널 <네이처>에 낸 논문에서, 박쥐와 돌고래를 비롯해 22종 포유류의 방대한 게놈 정보를 비교해보니 2300여 가지의 공유 유전자가 발견됐으며, 특히 박쥐와 돌고래의 200여 가지 유전자에선 거의 동일한 변이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일부는 음파탐지와 관련한 유전자였으나, 대부분은 아직 기능이 다 밝혀지지 않은 유전자였다. 박쥐와 돌고래의 음파탐지 능력은 지난 1000만~2000만 년 동안 진화의 과정을 거치며 생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연에선 고슴도치와 가시두더지처럼 서로 먼 종인데도 비슷한 형질이나 모습을 지닌 경우가 있는데, 이런 ‘수렴진화’는 대체로 유전자 염기서열과 무관하게 나타난다고 여겨졌다. 그런데 이번 연구에선 수렴진화가 겉의 형질이나 모습뿐 아니라 유전자(단백질) 분자 수준에서 폭넓게 일어남을 보여준 것이다. <네이처>는 “수렴진화를 게놈 차원에서 밝힌 첫 연구”라며 “놀라운 결과”라고 전했다. <사이언스>는 “수렴진화가 생각보다 널리 일어남을 보여준다”며 유전자가 비슷하다는 근거만으로 비슷한 종으로 분류하기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이번 연구는 방대한 데이터와 강력한 컴퓨터 덕분에 가능했다. 연구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여러 종의 게놈 데이터베이스가 이미 발표돼 있었으며,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종종 쓰는 강력한 연산장비(GridPP)를 사용해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한달만에 컴퓨터 분석을 마친 연구팀은 “데스크톱 컴퓨터에서 분석했다면 몇 년 걸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논문 초록(번역)
“일반적으로 진화는 단백질의 분기,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표현형의 분기를 통해서 진행된다고 여겨진다. 그렇지만 유사한 형질(traits)은 유사한 선택압력 때문에 서로 무관한 분류군(taxa)에서도 수렴의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다. 적응을 통한 표현형의 수렴(adaptive phenotypic convergence)은 자연에서 폭넓게 나타나며, 몇 가지 유전자에서 얻어진 최근의 연구결과는 이런 현상이 염기서열 수준에서도 재현되는(recurrent) 진화를 추동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함을 보여준다. 이원동구조의 대체물(homoplasious substitutions)이 나타나지만, 이런 현상은 중립적 과정의 결과로 여겨져 왔다. 그렇지만 평행 진화(parallel evolution)의 통계적 방법을 사용하는 최근 연구들에선 다른 속들(genera) 사이에서 유전체 전체 차원에서 염기서열 수렴이 어느 정도나 일어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적응적인 염기서열의 수렴 진화(adaptive convergent sequence evolution)가 척추동물들에서도 발견될 수 있음이 입증되어 왔다.
이번에 우리는 서로 무관하게 음파탐지를 진화시켜온 포유류의 유전체 염기서열 데이터를 분석해, 수렴이 일부 유전자 지역(loci)에 국한된 희귀한 과정이 아니라 유전자 지역(locus)당 몇몇 자리(site)에 작용하는 자연선택에 의해 일반적으로 추동되며, 폭넓게, 연속적으로 분포함을 제시한다. 이번 연구에서는 22종 포유동물(새로 해독한 4종의 박쥐 유전체 포함)을 비교해 2,326개 이종상동성(orthologous) 코딩 유전자 염기서열을 찾았으며, 그 안의 805,053개 아미노산에 나타나는 수렴적 염기서열 진화에 대해 체계적인 분석을 행해 거의 200개 유전자 지역(loci)에서 수렴과 일치하는 특유의 서열(signature)을 밝혀냈다.
박쥐와 돌고래(bottlenose dolphin) 사이에서 수렴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강력하고 두드러진 근거는 가청(hearing) 또는 난청(deafness)과 연관된 여러 유전자에서 볼 수 있었으며 이는 음파탐지의 연관성과 일치하는 것이다. 예상하지 못한 사실로서, 또한 우리는 시각과 연관된 여러 유전자에서 수렴 현상을 발견했다. 여러 감각 유전자의 수렴적 신호(signal)는 자연선택의 세기와 강한 상관관계를 보였다. 서로 분기한 분류군을 넘나들며 유전체 차원의 수렴적 염기서열 진화를 찾는 이 최초 시도는 이런 현상(수렴)이 지금까지 인식되는 것보다 훨씬 더 널리 퍼져 있음을 보여준다.”(논문 초록에서)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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