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연구자들의 "청춘 스케치"

연구의 맛과 멋을 배우는 젊은 연구자들이 실험실에서, 연구실에서, 그리고 사회와 만남에서 얻는 에피소드와 경험, 그리고 생활의 단상을 전합니다.

은퇴의 순간, 화려함보다 더 빛나는 우직함

홍주은의 ‘천문학 연구생의 동서남북'

[4] 여성 천문학자로 산다는 것

00scholar1.jpg » 퇴임식이 모두 끝나고 지인과 제자와 함께 기념사진 촬영 중. 사진/박근홍
 

근 내 방을 정리하다가 학교에서 발행된 교내 신문이 보였다. 버리기 전에 신문을 쓰윽 넘겨 보다가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발견하고서 신문을 넘기던 손을 멈췄다. 지난 2월을 마지막으로 현직에서 물러나신 교수님들의 소식이었다. 천문학과에도 교수님 한 분이 지난 2월 퇴직하셨다. 이내 몇 달 전 생각이 떠올랐다.


지난 2월 말 교내 천문학과 교수님들은 물론이고 대학원생과 다른 곳에서 활동하는 학과 졸업생들까지 천문학과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30년 동안 학과를 이끈 어느 교수님의 마지막 자리였다. 퇴임을 기념하는 자리였지만 천문학 연구는 변치 않고 계속하실 것을 알기에 참석자들은 모두 퇴임에 대한 아쉬움보다 그동안 함께했던 지나간 시간과 세월을 회상했고 박수를 보냈다.


퇴임식은 퇴임교수의 제자가 진행하고 첫 번째 제자의 영상 편지, 마지막 제자와 동료 교수의 송별사 등으로 이어졌다. 첫 제자가 밝히는 20~30년 전의 소소한 에피소드들, 그 옛날 얘기에서도 지금의 교수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교수님은 첫 제자와 마지막 제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 나도 언젠가 영상 속의 제자처럼 될 수 있을까. 누구나 무엇을 하든 마지막 순간은 오겠지.’ 퇴임식을 보며 교수님의 과거와 내 미래에 대한 상념에 빠져들고 있었다.


사회자는 교수님의 약력을 소개했고 그 긴 세월만큼이나 긴 약력을 읽는 데에는 한참이 걸렸다. 30년 동안의 업적이 나열되고 나서야 새삼스레 세월이란 것이 느껴진다. 내가 듣고 있는 것은 화려한 업적 속에 묻힌 연구에 대한 열정이었을까.



30년 세월에 뭍어나는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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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식에서 이어지는 옛날 얘기에 문득 세월의 흔적을 느꼈던 교수님의 수업이 떠올랐다. 교수님은 수업 시간에 커다랗고 두꺼운 종이 몇 장을 들고와 학생들에게 보여준 적이 있었다. 교수님이 검은 머리였던 젊은 시절에 별의 밝기를 재던 도구였단다. 지금은 디지털 기술인 시시디(CCD)와 컴퓨터의 발전으로 대부분 연구 작업이 자동화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지만, 그 시절 교수님은 사진 건판에 찍힌 별과 종이에 새겨진 흑백 명암을 비교하며 ‘별의 등급’을 추정했다고 한다. [ 시시디(Charge-Coupled Device: 전하결합소자)는 광전 효과를 이용해 빛을 전하로 바꿔주는 장치다. 시시디의 양자효율은 사진건판의 약 100배인 70~95%로 매우 높아, 관측 기기는 사진건판에서 시시디로 바뀌었다.]


또 자료 값만 넣으면 컴퓨터에서 자동으로 계산해주는 ‘선 근사’도 예외는 아니다. 예전에는 가장 근사한 기울기를 찾기 위해 모눈종이에다 직접 점을 하나하나 찍고서 긴 자를 이리저리 움직였다고 한다. 기기의 변화와 세월의 변화에 30이라는 숫자는 생각했던 것보다 길게 느껴진다.


00scholar2.jpg » 2013년 2월 천문학과 교수님의 퇴임식. 첫 제자가 미국에서 영상 편지를 보내왔다. 사진/박근홍 문으로만 들은 ‘1967년 입학 당시 자연대 유일의 여학생’이라는 수식어에 ‘여자라서 천문학 하기 힘들다’는 생각은 부끄러운 엄살로 느껴지기만 한다. 사실 그동안 난 엄살을 부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좋아하던 사람에게서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네가 박사과정생이라서 싫다’는 단호한 말을 듣고서, 도대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뭘까 하며 수도 없이 나에게 답해보라 다그쳤다. 다른 분야 대학원생들도 그렇듯이 천문학자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졸업을 하고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란 걸 잘 안다. 교수든 정규직의 연구원이 되기 위해선 계약직의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몇 번이고 해야 하기에 내 나이와 남은 졸업 학기를 계산하며 손가락을 접어 보기 일쑤였다.


한번은 연구실 식구들끼리 점심을 먹다가 “대학원생은 언제 결혼하는 것이 최선인가”에 대해 토론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여러 대학원생들은 학위를 마치고 바로 결혼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했지만 같은 연구실에 있는 한 박사후연구원은 차라리 대학원생 때 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졸업하고 바로 박사후연구원을 시작해야 하는데 아이는 언제 낳을 것이며, 계약 연장을 하거나 다음 연구원 자리를 구해야 하는 처지에서 아이는 언제 키울 것인지는 쉽지 않은 현실의 문제라고 가차 없이 말씀하셨다. 이런 상황이 여자만의 상황도 아니고 대학원생만의 고민도 아니지만, 괜히 앞서는 걱정은 어쩔 수 없다.


스스로 부끄럽지 않기 위해 나름 애쓰고 있지만 나는 지금 누군가에게는 ‘방황’이라 불리는 시기를 지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적어도 나에게는) 학문의 세계에서 방황이라고는 없어 보였던 교수님의 30년 세월, 그 원동력이 궁금해지기만 하다. ‘천문학 하는 사람은 사이코다. 여기에 미쳐야 할 수 있다’는 어느 다른 교수님의 말씀처럼 순수 자연과학에는 가득한 열정이 당연히 요구된다. 하지만 가끔 원로 교수님들께 묻고 싶은 궁금한 점이 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또는 수많은 현실적 고민으로 인해 연구 열정이 흔들린 적은 한 번도 없으셨을까. 평범하게 살고 싶은 적은 없으셨을까. 그런 숱한 고민을 어떻게 매듭지으며 나아가셨을까.



올림머리에서 본 건 아마도 우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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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궁금증에 대한 나름의 해답은 진부하지만 의외로 사소한 것에서 찾았다. 우즈베키스탄의 마이다낙 천문대(천문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첫 번째 연재 글 참조)를 이용하는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우크라이나, 한국, 일본, 대만의 천문학자들은 천문대의 앞날과 발전 방향을 의논하기 위해 해마다 한 번씩 회의를 연다. 지난 2010년 여름에도 마이다낙 천문대 사용자 미팅에 참석하기 위해 국내 교수님들과 대학원생 몇 명이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했다. 우리는 수도 타슈켄트에서 발표 일정을 모두 마친 뒤 마이다낙 천문대를 답사하기 위해 봉고차에 몸을 실었다. 천문대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아스팔트 위를 꼬박 한나절 가야 닿는 곳이었기에 고개가 꺾어지기도 하며 모두가 졸았다 깼다를 반복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나는 수십 번 머리를 다시 고쳐 매야 했고 단단히 동여 맨 교수님의 올림머리도 이내 점점 풀리고 있었다. 느슨해진 올림머리에 교수님은 머리 모양을 다시 손질했다. 나는 처음으로 길게 내려온 교수님의 머리카락을 뒷모습으로나마 볼 수 있었다. 귀국한 뒤에 동료 대학원생에게 뒷자리에서 본 교수님의 머리 손질 장면을 나름대로 ‘자랑거리’로 들려줄 정도로, 길게 푼 머리카락을 본 사람은 드물었다. 30년 간 고수해온 올림머리는 교수님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다.


임식이 있고 며칠 뒤에 교수님과 함께한 식사 자리에서 한 학생이 물었다.

“교수님! 올림머리가 인상적입니다. 왜 항상 올림머리만 하시나요?”


교수님께 드리는 질문치고 약간은 엉뚱하고 당찬 물음이라 무슨 대답을 하실까 귀를 쫑긋 세웠다.

“그동안 이 머리를 하면서 아낀 미용실 비용을 계산해 봤어요. 대충 오천만 원은 아낀 것 같아요”라는 농담을 하시며 소탈한 웃음을 보이셨다.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가장 편하면서도 간단한 머리에요”라고 덧붙이셨다.


올림머리가 잘 어울린다던지 이마가 예쁘던지, 사소하더라도 어떤 다른 이유를 기대했던 이들에겐 다소 실망스럽게 돌아온 답변이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30년 동안 가장 편한 머리 모양을 고수한 그 우직함이 급변했던 긴 세월을 지켜온 비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변화에 변치 않음으로 대응하는 우직함….



우리 섬에만 있는 열매의 단맛을 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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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의 명칭과 소속은 학과가 개설된 이래 수많은 풍파를 겪으며 천문기상학과, 천문학과, 지구환경과학부, 물리천문학부로 변해왔다. 하지만 이름이 변하고 소속이 변해도 늘 한결같이 ‘천문학’이란 것을 하는 연구자들이 있다.


00scholar3.jpg » 2010년 우즈베키스탄 마이다낙 천문대에 방문해 필터 교체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최창수 시아에 있는지 오세아니아에 있는지 헷갈리는 태평양의 이름 모를 작은 섬 하나. 누군가가 그 섬을 오세아니아로 행정구역을 정했지만 섬사람들은 달라진 것 하나 없이 여전히 열매를 따고 있다. 예전에는 손으로 열매를 땄지만 이제는 막대기도 이용하고 화살도 사용해 따고 있다. 누군가는 열매 따기가 어려워, 누군가는 넉넉하지 않은 열매에, 또 누군가는 다른 큰 섬의 열매를 맛보러 그 섬을 떠나기도 한다. 하지만 오직 그 섬에만 있는 열매의 단맛에 빠져 평생 남아 있는 이도 있다. 다른 이들에게 열매 따는 법을 가르치며, 열매의 특성과 참 맛을 알려주면서.


퇴임식장에 있던 천문학과 가족 모두가 장래에도 백발의 천문학자로 남아 있지는 않을 것이다. 옳은 길과 틀린 길이란 것은 없기에 노력하며 나아가지만 어떨 때는 깊은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다만 누군가는 연구에 대한 열정이나 우직함을, 누구는 여성 과학자에 대한 동경을, 각자 느끼며 퇴임식장을 떠났다. 다른 누군가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자리에서도 오직 우리 섬에만 있는 열매의 단맛은 계속 전해질 것을 믿는다.


식이 끝나고 퇴임식장 앞 화면에는 다음의 글귀가 있었다.

“천문학과에 입학 당시 20명 정원 중 여자는 저 혼자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천문기상학과였죠. 기상 쪽에 여자 선배가 계셨지만, 천문 쪽에는 저밖에 없었습니다. 입학 면접 때에도 교수님이 이런 일을 여자가 할거냐 하는 식의 질문을 했었습니다.”


나는 이상각 교수님의 정년퇴임 기념식장의 문을 나올 때까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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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은 서울대 천문학과 박사과정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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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은 서울대학교 천문학과 박사과정, 대학원생
활동성 은하핵의 기작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는 천문학도. 퀘이사의 환경, 초거대 블랙홀의 성장과 은하진화에 관심이 많다. 죽기 전에 이집트 피라미드는 꼭 직접 보고 싶다.
이메일 : jueunhong.astro@gmail.com      
블로그 : http://ju-o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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