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연구자들의 "청춘 스케치"

연구의 맛과 멋을 배우는 젊은 연구자들이 실험실에서, 연구실에서, 그리고 사회와 만남에서 얻는 에피소드와 경험, 그리고 생활의 단상을 전합니다.

사막의 뙤약볕…그래도 장갑에 흥건한 땀이 그립다

김상규의 ‘사막 위의 식물학자’
[3] 유타 사막 야외실험장에서 보낸 한 달

00desert1.jpg » 차안에서 바람과 함께 바라보는 야외실험장 주변 풍경은 또 다른 느낌이다. 사진/ 김상규 (이하 같음)


난 5월부터 대략 한 달 동안 미국 유타 사막에서 지내면서 야외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가는 비행기 안에서, 숙소에서, 혹은 일하다가 쉬는 시간에 끄적였던 글을 독일에 돌아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서 정리해 글을 올립니다. 그곳에서 주로 하는 일은 관찰과 채집입니다. 자연상태에서 식물이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관찰하고 적당할 때 잎이나 뿌리 혹은 식물이 만들어서 공기중으로 뿜어내는 기체들을 채집해 돌아옵니다. 그러는 중간에 생기는 일들에 대한 생각을 이번 글에 적어보았습니다. 다음에는 이 식물의 생활사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5월 7일, 출발

2013년 야외 실험을 진행하기 위해서 5월 7일 새벽 예나에서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식물의 광합성을 측정하기 위한 휴대용 측정기기(큰 여행가방에 들어 있는)를 들고가야 해 차를 빌려 운전하게 되었다. 독일의 고속도로는 운전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꼭 한번 달려보고 싶은 길일지는 몰라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많은 긴장을 요구하는 곳이다. 도로에서 시속 120~140km로 달려도 여전히 승용차 중에서는 가장 느리게 달리는 차 중 하나이고 그러다보면 가끔 트럭들 사이에서 달리기도 했다.

 무사히 공항에 도착해 안도할 틈도 없이 광합성 측정기기를 비행기에 실기 위해서 공항측 사람들과 조그마한 실랑이가 시작되었다. 독일에서 미국으로 가지고 가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다시 독일로 가지고 들어올 때에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세관 사람들에게 우리가 준비해온 서류를 보여주었지만 똑같은 답만 계속 들었다. 결국은 연구소 담당자가 나중에 문제를 해결하기로 하고 일단 비행기에 측정기기를 실고 라스베이거스로 출발했다.

 라스베이거스 공항 방문은 이번이 세번째다. 그동안 공항은 새 건물로 바뀌어 있었고 주차장 건물도 새로 지어져 있었다. 마중나온 사람들이 아이스박스에 초코파이를 넣어서 선물로 주는 센스와 필드에 도착했을 때 이미 우리를 위한 저녁식사가 준비되어 있어서 편하게 첫 날을 보냈다.



5월 8일, 익숙함 그리고 기도

00desert3.jpg » 필드로 일하러 나갈때는 물과 모자는 필수이다. 텐트에서 자고 일어나서 간단히 세수만 하고 2리터 들이 물통에 지하수를 가득 채우고 모자를 챙겨들고 식물을 심은 곳으로 걸어갔다. 땅의 색깔, 바람 냄새, 피부를 때리는 듯한 태양빛과 여기저기 보이는 도마뱀들이 익숙했다. 아직 식물이 많이 자라지 않아서 식물을 심어 놓은 것인지 깃발을 심어 놓은 것인지 잘 구분이 안 되는 밭에 도착을 했다.

 이 식물들과 함께 앞으로 한 달을 보내야 된다. 또 친한 혹은 조금 어색한 동료들과도 한 달 동안 이 곳에서 보내야 한다. 필드일을 시작하면서 올 한해 농사를 잘 지을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늘에 부탁을 한다. 왜냐면 이 곳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하고 많은 경우 그 할 수 없는 것에 의해서 우리의 실험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어떤 곤충이 언제 찾아와서 식물의 잎을 먹을지 정확히 알 수 없고 지난해 많았던 곤충이 올 해에 또 많을지 알 수 없다. 꽃의 수정을 도와주는 나방이 올 해 이 곳에 와서 화분을 날라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여러 가지 변수를 예측하고 잘 준비해서 때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는 과학자와 농부의 경계가 모호해서 좋다.



5월 9일, 변한 것은 나

이곳의 자연은 그대로인데 겨우 이틀 지나 벌써 체력이 바닥난 것 같은 느낌은…



5월 10일, 자동차

00desert5.jpg » 필드 근처에 있는 국립공원 가는 길. 이런 곳에서 차를 운전하려면 기본적인 수리는 할 수 있어야 한다. 운전면허는 있지만 여기서는 혼자 차를 운전해서 나갈 수 없다. 차를 타고 나갔다가 이런 곳에서 갑자기 차에 문제가 생긴다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림3).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타이어도 혼자 끼워본 적이 없다. 여기 보스(볼드윈 교수)는 자동차 정비사, 트레일러 운전사, 벌목공 등 화려한 아르바이트 경력으로 인해서 이곳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기계적인 문제를 스스로 해결한다. 그래서 가끔 자동차 고치는 것과 연구하는 것을 비교해서 이야기해줄 때가 있다. 혼자 실험할 줄 알고 혼자 문제를 해결할 줄 알고 논문을 자연스럽게 쓸 때가 되면 아무도 없는 곳 혹은 아무도 가보지 않는 곳을 신나게 달릴 수 있을까.



5월 11일, 빨래

00desert4.jpg » 실험에 따라서 다른 식물이나 혹은 다른 처리에 따라서 다른 색깔의 깃발을 사용해서 밭에 표시를 한다. 독일에서 떠나기 전에 짐을 꾸리면서 아직 장속에 있었던 여름 옷들을 그냥 들고 나왔다. 세탁기를 사용해서 빨래하고 말리기보다 여기서 손과 태양열을 이용해 세탁하는 것이 더 쉽기 때문이다. 아침에 큰 통에다가 옷들을 넣고 세제와 함께 물을 받아서 야외에 그대로 둔다. 몇시간 뒤 미지근해진 물을 버리고 지하수로 몇 번 행군 다음에 널어두면 그날 저녁에 빠-짝- 마른 옷을 볼 수 있다. 너무 햇빛에 오래 말리면 옷에 구멍이 잘 생길 수 있다는 점은 주의해야 한다.



5월 16일, 논문

야심차게 준비해 제출했던 논문이 두 달이 넘는 긴 심사일정 끝에 거절되서 돌아왔다. 보통 논문이 거절되면 그 이유를 잘 분석해 부족한 실험을 더 하고 논리를 더 잘 정리해 다른 저널에 제출한다. 그런데 여기 사막에서 실험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그럴 수 없다. 급하다고 여기 일을 정리하고 돌아갈 수도 없다.

 내가 재미있다고 또 의미있다고 생각해 하는 나의 연구에서 나온 논문이 그 분야 전문가들의 신랄한 비판과 함께 거절되어 돌아올 때 큰 실망감이 찾아온다. 어쩌면 여기서 이런 소식을 들어서 다행이었다. 급하게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은 것 같다. 논문 쓰기 위해서 연구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연구를 잘 하기 위해서 논문을 쓰기로 다시 생각한다.



5월 25일, 저녁식사

00desert8.jpg » 새벽일 + 그늘 + 맛있는 과자 = 낮잠 여기에서 아침, 점심 식사는 개인적으로 간단히 해결한다. 저녁은 보통 두 사람이 준비하고 식사를 하면서, 그날 발견한 ‘재미있는 자연’에 대한 나눔이 있다. 운 좋게 그 장면을 사진으로 찍었다면 카메라를 돌려가면서 그 재미를 공유한다. 여러 나라의 사람이 모인 그룹이다 보니 여러 나라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이번 야외 실험 시즌에 알게 된 코코넛 소스와 라면 스프 같은 쌀국수 소스는 완전 최고다. 저녁 식사를 마치면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필드에서 진행되는 실험에 대한 가설을 발표한다. 화이트보드와 펜으로 진행되는 발표는 프로젝트와 화려한 그래픽을 이용해서 하는 발표와는 또 다른 맛이 있다.



5월 27일, 밤, 달, 별

00desert6.jpg » 필드에서 보이는 보름달은 유난히 크다. 밤을 낮 같이 환하게 만들었던 보름달이 점점 작아지면서 달이 뜨는 시간도 점점 느려지고 있다. 이런 달의 게으름을 별들이 놓칠 리 없다. 모기장 같은 텐트에서 자려고 누워도 한 동안 안경을 벗지 못하는 이유는 별이 만드는 강물의 빛들 때문이다.



5월 28일, 덥다

땅은 뜨겁고 공기는 무겁다. 태양을 등지고 일하지만 등에 전달되는 열기는 혈관을 타고 온 몸을 돌아다닌다. 가끔 바람이 불어와서 내 주변의 더운 공기를 날려주지만 바람이 멈추면 금방 내 주변으로 더운 공기들이 되돌아온다. (필드에서 식물 성장을 기록하다가)

 마른 번개가 친다. 비구름이 보이는데 빗방울은 쉽게 땅에 닿지 못한다. 조금 높은 곳에 올라가서 보면 비가 중간에 멈추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있다.



5월 29일, 사막생활 3주차 증상

말수가 줄어든다.

상대방이 하는 말을 쉽게 놓친다.

한숨이 늘어난다.

혼자 있는다.

 


5월 31일, 땀

몸에서 나오는 땀은 바로 마른다. 그래서 실험을 위해서 낀 고무장갑을 벗을 때에만 내가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는지 알 수 있다.



6월 1일, 해먹에 누워

맛있는 저녁을 먹고 브라질에서 온 학생이 틀어 놓은 삼바 음악을 들으면서 해먹에 누워 있다. 나이 때문인가 날씨 때문인가 실험 때문에 가장 뜨거운 오후에 일을 하러 나갔다가 어지럼증을 느껴서 되돌아왔다. 독일에 있는 아이에게 전화를 했더니 레고를 사 주기로 한 약속을 잊지 않고 있다.

00desert2.jpg » 시간이 지나면 식물들이 자라서 필드는 제법 녹색이 된다.


6월 5일, 거의 마지막날

00desert7.jpg » 사막 야생담배의 뿌리에 관심이 많이 있어서 지난해와 올해에는 많은 양의 뿌리를 채집했다. 그동안 함께 생활해온 식물들을 파서 말리고 태워야 되는 시간이다(미국의 유전자변형 유기체[GMO] 관리 규정을 따라 외부 유전자를 지닌 식물은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 집에 돌아간다는 생각에 힘을 내서 일하고 있지만 비워져가는 밭을 보면서 여기서 한 달 동안 있었던 일들이 계속 머릿속을 지나간다. 재미있는 결과를 얻기도 했지만 많은 문제들도 있었다.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통해서 사람들이 더 잘 보인다. 돌아가면 많이 바쁘겠구나….

 발꿈치가 갈라져서 걸을 때마다 아프고 팔에 모기와 파리가 문 자국이 가득한 것을 보니 돌아갈 때가 되었나 보다.



6월 6일, 라스베이거스

아직도 이 글을 적고 있는 수첩에 열기가 남아 있는데 지금은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멕시칸 식당에 앉아 있다. 이렇게 급격한 환경 변화에 아직 몸과 마음이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갑자기 지난 한 달 동안의 생활이 너무 오래 전의 일처럼 느껴진다.



독일 예나 연구소로 돌아와서

무사귀환을 알리는 메일을 보스에게 보냈다. 운전하느라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동승자는 잘 수 있어도 운전자는 잘 수 없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답메일에 적어서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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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규 독일 막스플랑크 화학생태학연구소 연구원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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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규 독일 막스플랑크 화학생태학연구소 프로젝트그룹 리더, 식물분자생태학
하얀 실험복보다 밀집모자가 더 편하고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사람. 언젠가는 농사 짓는 분들한테서 그들의 식물 이야기를 듣고 그분들과 함께 연구하고 싶다.
이메일 : skim@ice.mpg.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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