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깨짐이 만들어내는 수명 증가의 역설
미토콘드리아와 수명의 관계
세포 에너지의 원천인 ATP를 만드는 '세포내 발전소' 미토콘드리아는 수명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최근 연구에서는 미토콘드리아의 본래 기능에서 균형이 깨질 때 수명 증가가 관찰된다고 보고되고 있다. 왜, 어떻게, 균형 깨짐과 수명 증가는 연관관계를 지니는 것일까?
» 동물세포의 세포소기관 구성. 세포소기관: (1) 인(nucleolus) (2) 세포핵 (3) 리보솜 (4) 소낭(vesicle) (5) 조면 소포체 (RER) (6) 골지체 (7) 세포골격 (8) 활면소포체(SER) (9) 미토콘드리아 (10) 액포(vacuole) (11) 세포질 (12) 리소좀 (13) 중심체. 출처/ Wikimedia Commons, http://ko.wikipedia.org/wiki/미토콘드리아.
이번 글의 주제 논문
Houtkooper RH, Mouchiroud L, Ryu D, Moullan N, Katsyuba E, Knott G, Williams RW, Auwerx J. Mitonuclear protein imbalance as a conserved longevity mechanism. Nature. 2013 May 23;497(7450):451-7.
“…
B형 간염 S항원 : 음성
B형 간염 S항체 : 음성
…”
여러분의 간은 안녕하신가요? 조금 구체적으로 물으면, B형 간염 항체는 가지고 계신가요? 저는 얼마 전 학교에서 실시된 건강 검진에서 ‘B형 간염 항체 없음’ 결과를 통보받았습니다. 뒤늦게 백신을 접종하기 위해 보건소로 향한 저는 새로운 고민에 빠집니다. A형 간염 항체는 있던가? 파상풍 예방 접종은 했던가? 수많은 백신 목록을 보고 있노라니 어디까지 비용을 투자해서 대비해야 하는지 혼란이 생긴 것입니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모든 삶에 얼마나 적절히 적용할 수 있을지와는 별개로, 일단 이 말이 백신의 경우에는 잘 맞는 구절 같습니다. 돈을 주고 백신을 맞아 두면 미래에 언젠가 도움이 될 테니까요. 감염 확률이 낮더라도 발병했을 때의 심각도가 크거나 백신의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들지 않는다면 기본 접종은 두루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젊어서 살 수 있는 고생은 백신 말고 또 어떤 게 있는지 생각해보신 적 있나요?
예쁜꼬마선충을 이용한 재미있는 실험 결과가 <셀(Cell)>이라는 유명한 생물학 저널에 발표되었습니다. 단적으로 말하면 ‘젊은 시절에 미토콘드리아를 고생하게 하면 수명이 늘어난다’는 내용입니다. 귀가 번쩍 뜨일 만한 얘기이네요. 그렇다고 미토콘드리아를 마구잡이로 고생시켜서는 안 됩니다. 도움이 될 수 있는 적절한 고생이어야 하겠지요. 과연 ‘적절하고 좋은 고생’의 모습이란 어떤 것일까요?
활성산소 노화가설 떴다가 지는가
세포 안에 있는 소기관 중에서 수명에 강한 영향을 끼지는 것을 꼽으라면 단연 미토콘드리아가 상위권에 꼽힙니다. 그만큼 미토콘드리아는 중요한 기능을 두루 관장합니다. 널리 알려진 역할은 세포의 ‘발전소’로서, 화학적 에너지의 기본 화폐라 할 수 있는 ‘에이티피(ATP, 아데노신 3인산)를 만드는 일입니다. ATP는 대부분 대사과정에 화학적 에너지로 쓰입니다. 다양한 효소나 구조 단백질이 생합성 과정을 비롯해 다양한 화학 반응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우리가 성장하고 움직이고 생각할 수 있게 하지요. ATP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방법이 미토콘드리아에 의한 ‘산화적 인산화'(상자글)입니다.
☞용어해설:
미토콘드리아의 산화적 인산화, 전자전달계, ATP
산화적 인산화란 미토콘드리아가 영양소 분해를 통해 얻어진 에너지를 이용해 ATP를 생산하는 대사과정을 말합니다. 유산소 호흡을 하는 대부분 개체는 산화적 인산화를 이용해 ATP를 생산하는 데 아마도 무산소 과정으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이 좋기 때문일 것으로 예상합니다.
산화적 인산화 과정에서 전자는 전자 주개로부터 전자 받개로 연속적인 산화-환원 반응을 통해 이동합니다. 산화-환원 반응에서 방출되는 에너지가 ATP를 합성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진핵생물에서는 산화-환원 반응을 미토콘드리아 내막에 박혀 있는 단백질 복합체들이 수행합니다. 이 복합체를 통틀어 전자전달계(electron transport chain)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전자가 전자전달계를 따라 흐를 때 방출되는 에너지는 수소이온(양성자)을 미토콘드리아 막간 공간으로 퍼내는 데 쓰입니다(미토콘드리아는 이중막 구조이다). 이때 수소이온의 농도 기울기(농도 높낮이)로, 화학적인 에너지가 저장됩니다. 막을 기준으로 해서, 한 쪽 수소이온 농도가 높고 반대쪽 수소이온 농도가 낮다면, 높은 쪽에서 낮은 쪽으로 수소이온이 돌아가려는 에너지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수소이온은 미토콘드리아의 내막을 자유롭게 투과해 이동할 수는 없고, 오로지 한 통로로 다시 미토콘드리아 내부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바로 ATP 합성효소(ATP synthase)가 그 통로 구실을 합니다. 수소이온이 미토콘드리아 내막 안으로 다시 돌아오려는 에너지를 이용해 ATP 합성효소는 ADP를 인산화시켜서 ATP를 제조할 수 있습니다.
» 상자글 그림. 미토콘드리아의 전자전달계의 구조. 전자전달계는 총 4개의 단백질 복합체로 구성됩니다. Ⅰ,Ⅱ,Ⅲ,Ⅳ로 표시되어 있는 단백질 복합체들은 미토콘드리아의 내막에 박혀 있습니다. 전자가 이동하면서 만들어낸 양성자(H+) 기울기는 ATP 합성효소(ATP synthase)에 의해 ATP를 생산하는 에너지로 사용됩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미토콘드리아가 에너지를 생산하는 ‘방식’ 때문에 세포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주장은 오랫동안 도그마처럼 작동했습니다. 바로 이름도 유명한 ‘활성산소(ROS, Reactive Oxygen Species)’ 때문이지요. 활성산소는 산소 원자를 포함하면서 화학적 반응성이 매우 높은 분자입니다. 소독약으로 사용되는 과산화수소가 활성산소의 일종이지요. 미토콘드리아는 ATP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활성산소도 생성할 수 있습니다. 세포내에서 생성된 활성산소는 디엔에이(DNA)에 손상을 줄 수 있고, 지질이나 단백질을 산화시켜 망가뜨릴 수도 있습니다. 소소한 망가짐은 고칠 수 있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손상은 세포뿐만 아니라 개체에도 치명적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1995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던 데넘 하먼(Denham Harman)이라는 과학자는 미토콘드리아가 생성하는 활성산소가 노화의 주요 원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주장은 처음 제시된 1970년대부터 상당히 그럴듯하게 받아들여졌고 오랫동안 유지되었는데 거의 최근에 와서야 반론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활성산소가 신호전달 매개자의 구실을 할 수 있으며,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성을 높일 수 있음이 알려지면서 활성산소의 좋은 기능이 밝혀진 것입니다. 활성산소 증가는 ‘적응 반응’을 일으켜 스트레스 저항성을 높이고 장기적으로는 산화 스트레스 자체를 감소시킵니다. 실제로 운동을 열심히 할 때 건강해지는 효과가 활성산소 신호에 의존한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되면서 활성산소의 긍정적 역할이 다시 조명되고 있습니다. 활성산소의 양과 수명의 관계를 단순한 상관관계로 놓기에는 난해한 점이 있습니다.
미토콘드리아 기능 감소와 수명 증가
2011년에 <셀>에 발표된 앤드류 딜런(Andrew Dillin)의 논문은 예쁜꼬마선충의 전자전달계 기능이 망가질 때 수명이 증가한다는 실험결과를 보고했습니다. 실제로 효모나 초파리, 쥐의 연구에서도 전자전달계를 암호화하는 세포핵 내 유전자의 기능을 감소시켰을 때 노화가 늦추어지는 현상이 보고된 바 있습니다. 선충은 성체가 되기 직전에 일어나는 전자전달계의 변화를 인지하고 대처함으로써 나머지 생애 동안의 노화 과정을 결정한다고 딜런은 주장했습니다.
이 논문의 핵심은 활성산소를 끌어들이지 않고서도 미토콘드리아와 수명의 연관성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활성산소가 영향을 줄 수 있는 범위는 자신이 만들어진 장소인 세포 내부로 한정됩니다. 그런데 딜런의 연구에서는 일부 세포에서 전자전달계를 망가뜨렸을 때 개체 수명이 변화할 수 있음을 보고한 것입니다(그림1).
» 그림1. 세포 내부에 한정되지 않는 수명을 늘려주는 작용. 딜런의 논문에서는 신경 세포인 뉴런에서 전자전달계의 구성원의 기능을 감소시키면 개체 전체의 수명이 늘어남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때, 뉴런에서 다른 세포들로 퍼져나가는 가상의 수명 증가 신호를 미토카인(mitokine)이라고 부릅니다. 출처/ Durieux J et al, Cell(2011)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전자전달계의 단백질 중 어떤 것의 기능을 줄이면 수명이 늘어나는, 다른 것의 기능을 줄이면 수명이 줄어드는 사례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단순히 ‘전자전달계를 망가뜨리면 수명이 늘어난다’ 식의 단순 명제는 참이 될 수 없습니다. 진실에 다가가려면 전자전달계의 오묘한 설계도를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세포내 소기관은 전적으로 세포핵이 생산하는 단백질로 구성됩니다. 오직 미토콘드리아에만 핵과 단백질을 사이에 놓고 협상을 벌일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동물세포에서 핵을 빼놓고는 미토콘드리아가 유전물질인 DNA를 지닌 유일한 세포내 소기관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신을 구성하는 단백질을 스스로 만드는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미토콘드리아가 DNA를 가지지만, 자신을 만드는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미토콘드리아 설계도의 대부분은 세포핵 안의 유전체에 담겨 있습니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내 공생을 시작한 이후로 자기 태생의 비밀을 숙주인 세포에 아주 많이 넘겨준 셈이지요. 하지만 미토콘드리아의 핵심 기능을 담당하는 유전자들만은 자신한테 남겨두었습니다. 아무리 궁핍해져도 절대 팔 수 없는 가보와 같은 것이었을까요? 그 유전자들은 바로 ATP를 생산하는 데에 중요한 전자전달계 구성 단백질을 암호화하고 있습니다.
전자전달계를 구성하는 여러 단백질 복합체는 핵과 미토콘드리아가 각각 일정 부분을 맡아 생산하고 있습니다. 상자글의 그림을 참고하시면 Ⅰ,Ⅲ, Ⅳ 3개 복합체의 크기가 Ⅱ보다 살짝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Ⅱ번 복합체는 오로지 핵의 정보에서 생산되는 단백질로 구성되는 데 반해, 나머지 복합체는 핵과 미토콘드리아에서 각각 일정 부분을 나누어 생산하고 있습니다.
‘전자전달계를 망가뜨리면 수명이 늘어난다’가 참 명제가 될 수 없는 힌트를 눈치채신 분이 있나요? 사실 아주 살짝 힌트를 드렸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겁니다. 이제부터 자세히 소개할 주제 논문(문헌정보 맨 위)을 차근차근 살펴보면 금방 무릎을 치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미토콘드리아와 세포핵 ‘따로 또 함께’
<네이처>에 발표된 이 논문의 연구가 진행된 과정을 들여다보면, 최초의 목표는 수명에 영향을 끼치는 유전자를 쥐에서 찾는 것이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루지 않겠습니다만, 결과적으로 쥐 유전체의 아주 좁은 영역에 수명을 늘릴 것으로 예상되는 유전자가 포함됐을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후보 유전자 중 특히 관심을 끈 유전자가 엠아르피에스(Mrps: mitochondrial ribosomal protein)라는 유전자입니다. 즉 미토콘드리아의 단백질을 생산하는 리보솜 공장을 암호화하는 유전자였습니다.
미토콘드리아가 전자전달계를 만드는 설계도의 일부를 스스로 지닌다고 말씀드렸는데, 실제 설계도대로 단백질을 생산하는 공장은 핵이 제공해주어야 합니다. 흥미롭게도, 또는 다행스럽게도 Mrps 유전자는 여러 생물종에 잘 보존된 것으로 드러났으며 예쁜꼬마선충에도 비슷한 유전자가 존재했습니다. 그래서 서로 다른 생물종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협력할 가능성이 생깁니다. 쥐 연구를 통해 수명 조절 유전자의 후보들을 추려내는 데 성공했지만 쥐는 수명이 수개월에서 수년에 이르러 직접 수명을 재보려면 장기 실험연구를 각오해야 합니다. 그래서 최대 수명이 20여 일인 예쁜꼬마선충에서 문제의 유전자를 시험하는 연구가 이뤄집니다.
예쁜꼬마선충 실험에서는 mrps 유전자의 기능을 줄이니 수명이 60%가량 늘어나는 놀라운 현상이 관찰되었습니다(그림2). 쥐 연구에서 상관관계를 관찰한 뒤, 예쁜꼬마선충에서 유전자 기능을 직접 시험해보니 실제로 수명을 변화시킨 것이지요. 수명이 증가한 것뿐 아니라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여러 가지 퇴행성 변화들이 늦게 일어났습니다. 입 근처 근육이 밥을 먹기 위한 펌프질을 더 오래 수행했으며 이동성이 더 좋아졌고 근육섬유 구조도 더욱 튼실했습니다. 또한 수명이 늘어나려면 mrps 유전자의 기능 감소가 유충 시기에 일어나야 한다는 것도 관찰됐습니다.
» 그림2. 예쁜꼬마선충에서 mrps-5 유전자의 기능을 감소시키면 수명이 증가한다. 쥐에서 찾아진 후보유전자를 예쁜꼬마선충에서 직접 시험해보았더니 수명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맞는다는 결론을 보여줍니다. 대조군(Vector, 아무 유전자의 기능도 감소하지 않은 상황)의 경우 평균 수명이 20일, 최대 수명이 36일 정도로 보이는 데 반해 실험군(mrps-5의 기능이 감소한 상황)에서는 평균 수명이 32일, 최대 수명이 49일 정도로 보입니다. 또한 오른쪽의 그림을 보면 이러한 효과가 유충 시기에 발생하는 것(larval only)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체에서만 mrps-5의 기능을 감소시키면 수명이 전혀 증가하지 않습니다. 출처/ Houtkooper RH et al. Nature(2013), 이 글의 주제 논문
현상은 명백하고 흥미롭지만 아직 수명이 늘고 건강해진 ‘이유’는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다음으로 연구해야 할 부분은,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mrps 유전자의 기능 감소가 수명 증가로 이어졌는지 그 구체적인 작용 방식을 밝히는 것입니다.
답은 mrps의 정상 기능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발견되었습니다. mrps 유전자는 핵이 제공하는, 미토콘드리아 전용 단백질 생산공장을 만듭니다. 미토콘드리아는 설계도를 가지고 있지만 생산공장을 스스로 만들지 못하므로 핵의 도움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 공장이 망가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전자전달계 Ⅰ,Ⅲ, Ⅳ 3개 복합체를 이루는 단백질 중 미토콘드리아가 담당하는 부분의 수급에 큰 문제가 생깁니다.
결과적으로 핵이 생산해서 보내주는 단백질은 남아돌고 미토콘드리아가 생산할 단백질은 모자라므로 전자전달계는 제대로 완성될 수가 없겠지요. 이처럼 핵과 미토콘드리아의 생산품 사이에 양적인 균형이 깨지는 것을 저자들은 ‘미토콘드리아-핵 불균형’이라고 부릅니다.
“미토-핵의 불균형이 수명 증가와 연관”
미토콘드리아-핵 불균형과 수명 사이의 연관 관계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딜런의 논문에 나온, '미토콘드리아의 기능 감소가 항상 수명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을 설명해줄 개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토콘드리아의 기능 감소는 이런 불균형을 일으킬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측면에서 나눠 생각할 수 있습니다. mrps 유전자 기능이 줄어들면 불균형이 일어납니다. 한편으로는, 전자전달계 Ⅰ,Ⅲ, Ⅳ를 구성하는 단백질을 개별적으로 망가뜨리더라도 불균형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딜런의 논문에서 사용된 cco-1이라는 유전자는 핵에 암호화되어 있는 Ⅳ번 복합체 단백질인데, cco-1의 기능을 줄이면 핵에서 생산되는 단백질이 미토콘드리아가 제공하는 짝에 비해 모자라 불균형이 생깁니다.
» 그림3. 미토콘드리아-핵 불균형. 미토콘드리아와 핵에서 각각 생산되는 단백질들의 양을 정량함으로써 균형 상태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ATP5A는 핵에서 생산되는 단백질이고, MTCO1은 미토콘드리아에서 생산되는 단백질입니다. mrps-5나 cco-1을 기능 감소시킬 경우, MTCO1의 양이 감소하여 대조군(Vector only)의 균형 상태에서 크게 벗어납니다. 그러나 mev-1의 기능을 감소시킬 경우 대조군과 비슷한 균형 상태를 보여줍니다. 수명이 증가하는 경우는 불균형을 유발할 수 있는 mrps-5나 cco-1의 기능이 감소한 경우입니다. 출처/ Houtkooper RH et al. Nature(2013), 이 글의 주제 논문
그런데 똑같이 핵에 암호화되어 있고 전자전달계를 구성하는 단백질을 만드는데도, 기능이 줄어들면 수명도 줄어들게 하는 유전자가 있습니다. 유전자 mev-1은 핵의 생산품으로만 구성되는 Ⅱ번 복합체를 암호화합니다. 즉, mev-1의 기능이 망가지면 Ⅱ번 복합체가 망가지기는 하지만, 짝을 이뤄야 할 미토콘드리아 쪽 단백질이 없기 때문에 불균형은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그림3). 미토콘드리아의 기능 감소와 수명 증가는 단순하게 연관지을 수는 없지만, 미토콘드리아-핵 불균형이 생기면 수명이 증가한다는 것은 현재까지는 참인 명제로 받아들여집니다.
혹시 주변에서 불균형이 긍정 효과로 작용하는 사례를 보신 적이 있나요? 개인적으로 그런 효과를 꼽자면, 사춘기 시절의 반항적인 저와 부모님 간의 갈등이랄까요. 부모님은 나름대로 인생의 과정에서 얻은 경험을 통해 저에게 바라시는 바가 있으셨고, 저는 머리가 굵어지면서 혼자만의 세계를 만들고 싶은 과정에서, 소소한 마찰이 있었습니다. 겉보기엔 갈등, 긴장, 마찰의 관계로 보일 수 있지만, 그 시기를 현명하게 풀어나가는 것도 또한 제가 제대로 성장하기 위한 과정의 일부였습니다. 서로의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대화를 통해 소통하려는 노력이 없었다면 아름다운 마무리가 되지 않았겠지요. 미토콘드리아-핵 불균형도 또한 아름다운 추억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미토콘드리아-핵 불균형이 발생하면 분쟁조절자로서 특수한 세포내 반응이 활성화합니다. 바로 “미토콘드리아 미접힘 단백질 반응”(Mitochondria Unfolded Protein Response; MT-UPR)이라는 긴 이름의 반응입니다. 한글로는 축약해서 표현하기가 어려우니 여기에서는 편의상 ‘해결사’라고 줄여서 부르겠습니다.
출동한 ‘해결사’의 역할은?
» 그림4. mrp 유전자는 MT-UPR을 통해 수명에 영향을 준다. hsp-6라는 미토콘드리아에서 특이적으로 작용하는 샤페론 유전자에 녹색형광단백질(GFP)을 달아서 발현양을 관찰할 수 있도록 한 유전자 변형 선충입니다. 어떤 유전자의 기능도 망가뜨리지 않은 선충(Empty vector)에서는 녹색형광단백질이 관찰되지 않지만, mrps-5 유전자를 망가뜨린 선충에서는 녹색형광이 많이 관찰됩니다. 이런 효과는 이전에 미토콘드리아의 기능 자체를 망가뜨렸을 때 수명이 증가한다고 알려진 cco-1(전자 전달계의 4번 복합체를 구성하는 유전자)돌연변이체의 경우와 유사합니다. 출처/ Houtkooper RH et al. Nature(2013), 이 글의 주제 논문
불균형의 상황에 발생하면 등장하는 이른바 이 ‘해결사’는 본래 미토콘드리아 내에 잘못 접혀 기능을 잃은 단백질이 많이 축적되거나 단백질들끼리 서로 엉겨붙었을 때 활성화하는 반응입니다. 정상 기능을 수행할 수 없는 단백질을 계속 가지고 있는 것은 자원 낭비일 뿐더러 다른 단백질 기능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해결사 반응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반응의 결과, 핵 내에서 다양한 치료용 단백질이 만들어집니다. 일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는 유능한 수선공인 ‘샤페론’ 단백질이 대표적입니다(그림4). 아마도 샤페론 단백질이 많이 생산되어 미토콘드리아 내의 단백질 불균형을 해결하는 도중에 여유가 생긴다면 세포 내 다른 지역에서의 문제들도 살펴볼 수 있을 겁니다.
이는 마치 강도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출동하면 한때 출동 지역 근방의 치안이 좋아지는 현상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경찰이 수사 영역을 사건 발생지 주변으로 확대하면 그 시간만큼은 유사한 사건이 재발할 확률이 상당히 낮아지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미토콘드리아 내에서 불균형이 발생하면 치료 또는 방어 반응으로서 해결사 반응이 등장하게 됩니다. 해결사 반응으로 생산된 수선공들은 불균형을 조정함과 동시에 세포 내의 전반적인 복지에 이바지하게 됩니다. 그 결과로, 개체의 건강이 좋아지고 수명도 길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해결사 반응이 일어나는 단계까지는 논문이 명확히 밝히고 있지만, 해결사 반응에서 수명 증가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는 사실 제가 제시하는 가설일 뿐입니다. 전반적인 수명 연구 분야에서 해결해야 할 큰 문제 중 하나는 세포 내에서 일어나는 특정한 현상이 어떻게 개체 전체의 수명을 증가시킬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미토콘드리아-핵 불균형에 뒤따르는 해결사 반응도 또한 세포 내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세포가 건강해지는 것과 개체 전체가 건강해지는 것 사이의 연결을 명확히 밝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해결사 반응이 얼마나 강력하게 일어나는가와 수명의 증가량 사이에 강력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논문이 보여주고 있습니다만, 원인과 결과로 설명되려면 추가적인 실험이 필요합니다. 우선 불균형 자체는 배제하고 해결사 반응만을 유도해주었을 경우에 수명이 증가하는지 관찰함으로써 해결사 반응이 수명 증가의 원인이 될 수 있는지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해결사 반응으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변화 중 어떤 것이 수명을 직접 증가시키는지 구체적으로 실험해야 합니다.
젊을 때 균형은 사서도 깨뜨린다?
위의 연구결과를 지지해주는 후속 연구보고들이 많이 쌓여 미토콘드리아-핵 불균형이 수명을 증가시킨다는 지식이 확립되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심지어 이런 현상은 인간에게도 보존되어 있고 미토콘드리아-핵 불균형을 유발할 수 있는 약물까지 제조되었다고 해볼까요?
여러분은 수명을 늘리고자 이 약을 드시겠습니까? 이때의 결정은 질병 대비를 위해 백신을 맞을 것인가 말 것인가의 결정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백신을 맞을 때 들어가는 비용은 대부분 금전의 지출로 끝이 납니다. 면역계를 인위적으로 활성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순간 몸이 피곤하다거나 할 수는 있겠지만, 그마저도 드물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러나 수명 약물의 경우 미토콘드리아-핵 불균형을 유발하고 그에 대한 방어체계를 끌어올림으로써 수명이라는 관점에서는 긍정 효과를 줄 수 있지만, 어떤 부정적 효과가 비용으로 지급되어야 할지는 아직 완전히 알 수 없습니다. 진화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 수명이 특정한 정상분포를 이루는 현상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자연선택으로 다듬어진 결과가 현재 상황이라면, 인위적인 조작을 가해 불균형을 유도하는 것이 종합적으로 긍정적일지는 미지수입니다.
불균형이 유발되었을 때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중요성도 다시 한 번 새겨야 하겠습니다. 미토콘드리아-핵 불균형은 해결사 반응이라는 세포 내 방어체계를 통해 수명을 증가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때 불균형이 일어나는 현장은 미토콘드리아이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수선공들은 핵에서 출동합니다. 비단 이번 글에서 소개한 수명의 경우뿐 아니라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불균형들이 나중에 아름다운 추억이 되려면 불균형에 뒤따르는 해결 노력이 꼭 필요합니다. ◑
함께 참고한 문헌
- Durieux J, Wolff S, Dillin A. The cell-non-autonomous nature of electron transport chain-mediated longevity. Cell. 2011 Jan 7;144(1):79-91.
- Haynes CM, Ron D.J The mitochondrial UPR - protecting organelle protein homeostasis. Cell Sci. 2010 Nov 15;123(Pt 22):3849-55.
- Hwang AB, Jeong DE, Lee SJ. Mitochondria and organismal longevity. Curr Genomics. 2012 Nov;13(7):519-32.
- Ristow M, Zarse K. How increased oxidative stress promotes longevity and metabolic health: The concept of mitochondrial hormesis (mitohormesis). Exp Gerontol. 2010 Jun;45(6):410-8.
- Ryan MT, Hoogenraad NJ.. Mitochondrial-nuclear communications. Annu Rev Biochem. 2007;76:701-22.
성상현 서울대 생명과학부 박사과정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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