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순위 매기기' 이대로 좋은가 -유네스코 보고서
‘고등교육의 순위 매기기와 책임’

웬만한 것들에 다들 순위를 매기는 세상이다 보니, 교육·지식의 산실인 대학에도 순위가 매겨지는 건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당연한 대학 순위 평가를 당연하지 않다는 눈으로 들여다보는 이들이 있다. 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 즉 유네스코가 요즘 트렌드가 된 ‘대학 순위 매기기’를 조명해 <고등교육의 순위 매기기와 책임>이라는 보고서를 최근 펴냈다.
대학 순위 평가는 일찍이 1900년 영국에서 처음 이뤄졌다고 한다. 당대 저명인들의 성공 배경을 조사하며 출신 학교의 순위를 매긴 게 시작이었다. 대학 순위 평가는 이후 80년 동안 별 관심을 끌지 못했으나, 1983년 ‘미국 최고 대학들’, 1993년 ‘타임스 좋은 대학 가이드’가 나온 이래 크게 늘었다. 이제 세계 순위는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여러 곳이 순위를 매겨 발표하니 대학 서열화는 나라 안팎의 유행이다.
유네스코 보고서는 대학 순위 매기기에 대한 찬반을 다루되 하나의 결론을 제시하진 않았다. 중립을 내세운 국제기구의 한계이자 장점일 것이다. 대신에 보고서는 순기능도 지닌 서열화가 어떻게 오용될 수 있는지 들여다본다. 눈에 띄는 내용은 이렇다. 세계 100대 대학은 세계 고등교육기관 1만7000여 곳의 1퍼센트도 안 되는 극히 일부다. 상위 대학에 관심이 쏠리니 정작 수많은 이들한테 소중한 평범한 대학들은 소외된다. 개별 대학을 넘어 대학 ‘체제’를 개선하는 데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교육, 연구, 사회적 책임 같은 대학 기능 중에서 특히 과학기술 연구 평가에 집중된 경향은 큰 문제다. 물론 대학 순위는 학생들한테 좋은 진학 정보가 되며 대학에는 평가와 개선의 계기가 되는 긍정 역할도 한다.
보고서는 이렇게 묻는 듯하다. 무엇에 열심히 순위를 매기고, 그 무엇을 순위로 부르고 기억하면서, 우리가 오히려 놓치는 본래의 중요한 가치는 없는가? 순위에 빠져들 때 생기는 문제는 물론 대학만이 아닐 것이다. [한겨레 미니칼럼 ‘유레카’ 8월1일치]
[참고1]
아래는 이 보고서의 서문에 실린, 대학 순위 매기기의 긍정·부정 효과와 관련한 대목을 정리한 것이다(<세계대학뉴스> 사이트의 관련 보도를 함께 참조했다). 유네스코 보고서는, 현재 한정된 기준을 사용하는 평가 방법론을 개선하며, 대안의 평가들을 개발하고, 순위 평가 자료는 고등교육의 질을 평가하는 데 쓰는 여러 정보원 중 하나로 활용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등의 권고를 제시하고 있다..
■ 비판론
- 대학 순위 평가에는 세계 고등교육 기관의 1퍼센트만이 관심 대상이 된다(세계에는 1만6000~1만7000여 곳의 고등교육 기관이 있다). 최고 기관에 대한 초점이 확산하면 학생 대다수는 이런 엘리트 고등교육 기관이 아닌 곳에 다닌다는 사실을 간과하게 한다.
- 순위 평가는 교육, 연구, 사회적 책임이라는 대학의 기능 중에서 연구 기능, 그중에서도 특히 과학기술 연구 기능에 초점을 맞춘다. 연구 기능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교육과 학습 기능을 훼손할 수 있다.
- 세계 대학에 한정된 기준을 적용하다보면, 대학 순위 평가는 고등교육 기관들을 맥도널드화 할 수 있으며 그러다보면 그 기관들을 자신이 놓인 환경에는 무관심한 기관으로 만들 수 있다. 대학 순위 평가는 최고 순위의 200개 대학들이 누리는 이점에 우호적이라는 지적이 있다. 그런 대학들은 흔히 200년 이상 된 곳이며, 학생 수는 2만5000명 이상이며, 교원 수는 2500명 이상이고, 과학기술 연구에 초점을 맞추며, 예산이 미화 20억 달러 이상인 곳이 꼽힌다.
- 대학 순위 평가는 세계 수준의 고등교육 ‘체제’를 구축하는 데에서 세계 수준의 고등교육 ‘기관’을 구축하는 쪽에서 자원을 벗어나게 할 수 있다. 이는 순위 평가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순위 평가 오용의 문제이다. 순위 평가는 한 나라의 고등교육 체제가 모든 학생과 시민을 어떻게 교육하는가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등등…
■ 긍정론
- 대학 순위 평가는 고등교육의 가치와 중요성을 알리는 자명종 구실을 해왔다. 그런 평가가 없었더라면 충분히 투자하지 않았을 나라들에는 더욱 그렇다.
- 세계 대학 순위 평가로 인해, 고등교육계는 더욱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고 다각화할 수 있었다.
- 대학 순위 평가는 고등교육의 질과 관련해 무엇이 의미있는지 측정하지는 않지만, 그 수행능력, 생산성에 관한 양질의 비교정보가 중요하다는 데 관심을 갖게 했다. 양질의 국제적 비교정보는 국가와 제도 차원에서 필수적이다.
- 비교정보는 학생과 연구자들한테 어디에서 무엇을 공부할지, 어디에서 일할지 선택하는 데 도움을 준다. 정책결정자와 대학들에는 고등교육 기관의 장점과 개선할 부분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자료나 증거 기반의 의사결정을 도울 수 있다.
- 대학 순위 평가의 기준과 관련한 한계들을 파악해, 지속적으로 평가 방법론을 개선해나갈 것이다.
등등…
[참조2]
대학 순위 평가의 등장
(이 보고서의 서문인 ‘대학 순위 매기기: 논란의 여러 측면’ 중에서 발췌번역)
대학 순위 매기기가 행해진 것은 1900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 <최고 인재를 배출하는 곳>(Where We Get Our Best Men)이 잉글랜드에서 출간됐다. 당대에 잉글랜드에서 가장 뛰어나고 성공한 사람의 배경을 개인이 어디에서 공부했는지 살핀 조사였다. 그 결과물로 대학들이 내세울 수 있는 저명한 졸업생의 숫자로 순위를 매긴 대학 목록이 제시됐다. 이어 다른 나라에서도 이를 따라하는 조사들이 있었기는 하지만, 학계 바깥에서는 대체로 관심이나 논쟁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뒤이은 80년 동안 다른 조사들도 뒤따랐다. 주로 학부생 프로그램을 조사한 것이었으며, 당혹스러울 정도의 기준이 사용되기도 했으나 대체로 일반 사회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채 지나갔다.
대학 순위 매기기에 대한 전반적인 무관심은 1983년에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 해에 ‘미국 뉴스 월드 리포트(US News and World Report)가 <미국 최고 대학들>(America’s Best Colleges)을 출판했다. 처음으로 미국 고등교육 기관의 대학원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가 널리 구독되는 대중매체를 통해서 미국의 고등학교 학생과 학부모들한테 알려질 정도로 공개적으로 퍼졌다. 10년 뒤인 1993년에 최초의 <타임스 좋은 대학 가이드>(Times Good University Guide)가 영국에서 출간되어, 이전에 미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어떤 교육기관이 더 좋게 더 나쁘게 다뤄졌는지를 놓고서 대중적인 논쟁이 벌어졌다.
1990년대에는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목록과 범주 표, 그리고 순위들이 등장하면서 전문 학교부터 MBA 프로그램과 사기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순위 번호를 매겼다. 그 결과로 목록의 순위를 놓고서 논쟁과 경쟁이 점점 많아졌을 뿐아니라 순위에 오르거나 오르지 않은 고등교육 기관들 사이에서도 회의론이 나타났다.
그렇지만 대학 순위 매기기에 쏠린 관심이 이 분야에 밀려들어 휩쓴 것은 10년 뒤인 2003년 중국 상하이 자오퉁대학의 <세계 대학 아카데미 순위(Academic Ranking of World Universities: ARWU)>가 나오고, 이듬해 <타임스 고등교육 세계 대학 순위(Times Higher Education World University Rankings)>가 나오면서 시작됐다. 대학 순위 평가라는 주제는 이후로 줄곧 고등교육 분야 주요 뉴스와 주류 미디어에서 벗어난 적이 거의 없다. 이와 동시에 이 주제는 순위 평가에 반대하는 논란, 활동, 단체를 점점 더 많이 생겨나게 했다. 이 보고서에도 잘 나타나듯이, 대학에 순위를 매겨야 하느냐 마느냐에 관한 논쟁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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