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같은 가짜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동물실험

미국·일본 공동연구팀, 광유전학 기법으로 가짜 기억 생성

"특정 신경세포에 활성화 자극해 기억 생성 가능함 보인것"

■ 전문가 한마디/ 한진희 카이스트 교수 (아래 상자글)


00memory_ramirez1HR2.jpg » 가짜 기억의 생성 실험을 보여주는 개념도. 아래 설명 참조. 출처/ RIKEN


억, 특히 어떤 경험에 대한 기억은 생각처럼 믿을 만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실험결과가 나왔다. 기억과 관련한 신경세포의 활성을 조작했더니 경험하지도 않은 가짜 기억을 진짜 기억처럼 생성하고 회상하는 것으로 쥐 실험 연구에서 나타났다. 이는 기억도 조작될 수 있음을 보여줄 뿐 아니라 가짜 기억을 진짜 경험처럼 믿는 착각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연구로 받아들여진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와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가 참여한 리켄-엠아이티 신경회로유전학연구센터 연구팀(책임저자 도네가와 스스무, 1987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은 최근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낸 “해마에 가짜 기억 만들기” 제목의 논문에서, 쥐에 가짜 기억을 만드는 실험 결과를 전하며 “우리  데이터는 인위적 수단을 써서 내적으로 표상되며 행동으로 표출되는 공포 기억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실험에서 쥐의 특정한 경험 기억을 간직한 신경세포들을 자극함으로써 새로운 가짜 기억을 만들어냈다. 


이번 연구는 가짜 기억의 과정을 뇌 신경세포들에 일어나는 물리적, 생화학적 과정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연구팀은 특정 경험의 기억을 표상하는 신경세포들에 활성화 자극을 주면 기억을 회상하게 할 수 있음을 보인 이전 연구를 바탕으로, 이번에는 경험 기억를 다른 환경에서 자극함으로써 실제 경험과 다른 가짜 기억을 만들어냈다.


여기에는 광유전학(optogenetics)이라는 최신 기법이 중요하게 쓰였다. 광유전학은 빛에 반응해 세포를 활성화하게 만드는 녹조류의 특정 유전자(‘채널로돕신’)을 관찰하려는 신경세포에 발현시킨 뒤, 특정 파장의 빛을 쪼여 그 신경세포들을 인위적으로 활성화시켜 그 반응을 보는 실험기법으로 사용됐다.


이번 실험과정을 보면, 연구팀은 실험용 쥐를 안전한 환경의 상자(A)에 넣어 거기에서 상자 안 경험의 기억을 생성하도록 했다(위 그림 왼쪽). 이때 경험 기억은 쥐 뇌의 해마에서 특정한 신경세포들에 담긴다. 이 신경세포들은 상자 A의 경험을 형성하고 저장하는 이른바 기억의 저장소, 즉 엔그램(engram)으로 이해된다. 연구팀은 유전자 조작 실험쥐를 사용해서 이런 신경세포들에 광유전학 기법에 반응하는 유전자 채널도롭신이 발현되도록 했다.


하루 지나 이 쥐를 아주 다른 환경의 상자(B)에 넣었다(그림 가운데). 상자 B는 쥐의 발에 전기 충격을 가해, 쥐한테 공포 기억을 생성하도록 설정됐다. 전기충격과 동시에, 쥐 해마에 있는 상자 A 기억의 신경세포들에는 광섬유를 통해 특정 파장의 빛을 쪼여 신경세포들을 활성화시켰다. 즉, 연구팀은 쥐가 실제 상황에서 전기충격의 자극을 받아 상자 B의 공포 기억을 형성하면서, 동시에 상자 A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게 했다. 다시 하루 뒤에, 이 쥐는 처음에 있던 상자 A에 다시 넣어졌다(그림 오른쪽).


연구팀은 쥐가 상자 A에서 얼어붙는 듯한 공포 회상의 반응을 보였다고 보고했다. 공포 기억과 회상에 관해서는 꽤 많은 연구들이 축적돼 왔기에, 연구팀은 여러 변형 실험들을 거쳐 이런 반응이 실험쥐의 가짜 기억에서 비롯한 것임을 쉽게 증명할 수 있었다. 특히 가짜 기억의 반응이 진짜 공포 기억의 회상이 일어나는 뇌 부위와 똑같은 곳에서 일어났으며, 이렇게 볼 때 가짜 기억과 진짜 기억은 구분할 수 없게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연구팀은 전했다.


이런 결과는 이전 경험의 기억과 실제 경험이 결합해 새로운 가짜 기억을 형성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풀이된다. 이와 관련해 책임저자로 실험을 이끈 도네가와(Tonegawa)는 이화학연구소(RIKEN)가 낸 보도자료에서, "인간은 고도로 상상하는 동물이다. 실험쥐와 마찬가지로, 싫어하거나 좋아하는 사건이 일어날 때에 우연히 그 순간에 머릿속에 떠올린 과거 경험과 그 사건이 연결될(associate) 수 있다. 그래서 가짜 기억이 형성된다"고 설명했다.


공포 기억을 선택적으로 지울 수 있다는 논문을 <사이언스>(2009)에 발표했던 한진희 카이스트 교수(생물학과)는 이 연구에 대해 “기억이 실제 경험이 아닌 어떤 정보를 표상하는 뇌 신경세포의 활성에 의해서도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평했다. 그는 “정신분열증 같은 정신질환에서 잘못된 정보가 기억으로 형성되는 경우들이 있는데 이런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면서 "하지만 실험동물 연구에서 단순한 학습 모델을 사용한 것이라 실제 인간의 복잡한 기억에 적용하기에는 아직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책임저자 도네가와는 <뉴욕타임스> 뉴스 보도에서 "이번 연구의 의미 중 하나는 기억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나 믿을만 하지 않은지 사람들한테 전보다 더 많이 보여줄 수 있었다는 것"이라면서도 이런 기억의 특성 때문에 인간의 상상력과 예술적 창조도 가능했을 것이라는 견해를 전했다. 



다음은 이번 논문의 초록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논문 초록


“기억은 믿을 만하지 않을 수 있다(Memories can be unreliable). 우리는 광유전학 기법을 사용해서 해마에 있는 세포들을 포함하는 기억 엔그램(memory engram)을 조작함으로써 실험쥐에다 가짜 기억을 만들어냈다. 특정한 환경(context)에 노출됐을 때 활성화하는 해마 치아이랑(DG, Dentate gyrus) 또는 CA1 뉴런들에 [광유전학 기법에 활용되는 녹조류 유전자인] 채널로돕신-2를 부착했다. 나중에 다른 환경에서 [쥐의 발에 전기충격을 가하는] 공포 조건에 놓여 있는 동안에 광학 조작으로 이 뉴런들을 다시 활성화시켰다. [다시] 발에 [전기를] 가하는 충격이 전혀 없었던 처음의 환경에 놓였는데도, [이런 조작 절차를 거친 실험쥐들인] DG실험그룹은 [공포 기억의 회상으로] 얼어붙는 반응을 더 많이 보였다. 이런 가짜 기억의 회상은 특정 환경과 연결된 것이었으며, 자연스로운 공포 기억을 회상하는 동안에 관여되는 비슷한 하위 영역들을 활성화했으며, 또한 적극적인 공포 반응을 촉발할 수 있었다. 우리 실험자료는 내적으로 표상되며 행동으로 표출되는 공포 기억을 인위적인 수단으로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논문 초록)


■ 전문가 한마디

기억 현상 연구하는 한진희 카이스트 교수



000Q.jpg 사이언스온: 기억의 엔그램(engram)을 조작함으로써 가짜 기억을 형성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하는데요. 이번 연구논문은 대중적으로 관심을 끌 것 같습니다. 가짜 기억을 진짜 기억처럼 떠올릴 수 있다니…. 이번 논문의 의미, 그리고 한계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00HJH.jpg » 한진희 교수. 출처/ https://sites.google.com/site/neuralcircuitandbehaviorlab/ 000A.jpg 한진희: “해마(hippocampus)는 공간에 대한 정보를 표상하는데 이번 논문에서는 A라는 공간에서 활성화되는 해마 신경세포들 (즉, 그 공간에 대한 정보를 표상하는 신경세포들)을 나중에 조작 할 수 있게 유전적인 방법으로 표시하고 그 공간과는 다른 B라는 공간에서 학습을 시키는데 이때 A 공간 정보를 표상하는 신경세포들을 인위적으로 같이 자극을 해 주면 흡사 A 공간에서도 학습이 일어난 것과 같은 현상을 보고하고 있습니다. 이런 아이디어 자체는 아주 새롭다기 보다는 이전부터 생각돼 왔던 것이지만 이런 생각을 실험적으로 처음으로 증명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고 놀랍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연구결과는 기억이 실제경험이 아닌 어떤 정보를 표상하는 뇌 속 신경활성에 의해서도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데 큰 의미가 있고 어떤 정신질환의 경우 (예를 들면 정신분열증의 경우) 잘못된 정보가 기억으로 형성되는 경우들이 있는데 이런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본 논문에서는 실험동물을 이용한 연구이다보니 단순한 형태의 학습 모델을 사용했는데 실제 인간의 복잡한 기억에 적용하기에는 아직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000Q.jpg 이번 논문을 계기로, 이 분야에서 주목받을 만한 후속 연구의 주제들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000A.jpg “기억은 개념적으로 학습과 경험의 결과로 생긴 신경생물학적 표상이라고 말할 수 있고 이를 엔그램(engram) 또는 트레이스(trace)라고 표현합니다. 어떤 하나의 기억에 대한 완벽한 엔그램을 찾는 일은 여전히 기억 연구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기억은 이전의 통상적인 생각과 달리 기억의 회상, 발현에 따라 역동적으로 변화되고 변형된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또한 이번 연구에서도 볼 수 있듯이 기억의 형성, 회상과정에서 뇌에서 발생하는 신경세포들의 활성이 기억을 왜곡시키거나 기억의 발현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앞으로 기억을 찾는 일과 더불어 기억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역동적으로 조절되는지에 대한 신경회로수준에서의 연구가 주목 받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한 정신질환의 경우 이런 과정이 정상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연구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000Q.jpg 그런데 이것저것 자료를 찾아보니 엔그램(engram)은 가설적인 개념으로 나오는군요. 이번 논문에서 엔그램이라는 개념을 직접 언급하며 사용했는데, 과연 엔그램의 물리적/생화학적 실체는 어떤 것인지요? 기억 엔그램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요?

000A.jpg “기억은 개념적으로 학습과 경험의 결과로 생긴 신경생물학적 표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학습과 경험의 결과로 하나의 신경세포 내에서 매우 다양한 물리적/생화학적 변화가 분자수준에서 일어나고 이런 변화는 신경세포들간의 연결부위인 시냅스에서도 일어나며 최근 많은 연구들에서 보여주듯이 신경세포들의 기능적 집합체인 신경회로수준에서도 일어납니다. 이런 모든 변화가 아마도 기억을 표상할 것으로 생각되고 따라서 이런 변화의 전체를 어떤 하나의 기억에 대한 엔그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000Q.jpg 한 교수님이 연구하시는 분야와 관심사, 그리고 앞으로 연구하고자 하는 주제를 소개해주신다면

000A.jpg “카이스트 생명과학과에 있는 우리 랩(신경회로망 연구실)에서는 학습과 기억현상을 중심으로 다양한 뇌기능 및 행동이 신경회로 수준에서 어떻게 일어나며 조절되는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랩에서는 다음과 같은 연구들을 하고 있습니다. (1)기억을 저장하는 신경세포가 결정되는 메커니즘 연구, 신경세포 조절을 통한 기억의 발현 및 변형 과정에 대한 연구. (2)뇌 속 일부 신경회로를 이용해 기억을 형성시킬 수 있는지 그리고 그렇게 형성된 기억이 자연적으로 형성된 기억과는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연구. (3)장기적으로 오래 유지되는 기억을 설명할 수 있는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 (4)뇌 질환의 경우 이런 현상들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에 대한 연구들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000Q.jpg 마지막으로 늘 궁금한 것인데, 기억을 연구하시는 신경과학자들은 ‘기억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과연 기억이란 무엇인가 이렇게 묻는다면 연구자로서 대중에게 어떻게 설명하실런지요?

000A.jpg “기억이란 무엇인가는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아마도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저도 연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기억은 우리가 다양한 학습과 경험을 통해서 얻는 정보가 뇌에 저장되고 유지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뇌는 구조적으로, 기능적으로, 매우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외부 환경에서 오는 모든 감각 정보,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고 느끼고 학습하는 모든 것들이 뇌에 투사되고 뇌 속 처리과정을 거쳐 뇌의 구조 및 기능을 일시적으로 또는 오랜 시간 동안 또는 영구적으로 변화시킵니다. 이런 과정은 자신(self)의 정체를 규정하고 변화하는 외부 세계에서 오는 정보를 처리 및 저장하고, 그리고 이를 통해서 적응을 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이라고 부르는 뇌 기능이 없다면 위와 같은 일들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가 기억이라는 현상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 자료


메사추세츠공대(MIT) 보도자료

이화학연구소(RIKEN) 보도자료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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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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