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바이러스 '판도라' 발견, 최대 크기 기록

프랑스연구팀 “2500개 유전자, 93%는 알려지지 않은 것” 보고

“기존 생명의 나무 계통도와 다른 진화의 길 가능성” 제시 눈길

2003년 미미바이러스 발견뒤 10년새 거대바이러스 잇따라 발견


00pandoravirus5.jpg » 전자현미경으로 얻은 판도라바이러스의 영상(왼쪽). 길이 1.2마이크로미터이며, 2.5메가 염기쌍의 유전체를 지니고 있다. 오른쪽은 판도라바이러스 발견 전까지 최대 크기를 기록했던 메가바이러스의 영상. 출처/ 악스-마르세유대학 구조·유전체정보연구소(SGIL), Wikimedia Commons.  


금까지 알려진 것 중에서 가장 큰 몸집과 유전체를 지닌 '대형 바이러스(giant virus)'를 프랑스 연구팀이 발견했다. 이 바이러스 유전자의 대부분은 기존 바이러스들에서 알려진 것과는 다른 유전자인 것으로 나타나 새로운 생물 분류가 필요할 수도 있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00pandoravirus3.jpg » 아메바 안에서 발견된 판도라바이러스(짙은 점)의 전자현미경 영상. 출처/ 사이언스(Science), 악스-마르세유대학 구조·유전체정보연구소(SGIL).대형 바이러스 연구를 계속해온 프랑스 악스-마르세유대학의 장-미셸 클라베리(Jean-Michel Claverie) 연구팀 등은 최근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낸 논문에서 "2.5메가 염기쌍과 1.9메가 염기쌍의 디엔에이 유전체를 지닌 2개의 대형 바이러스를 발견했다"며 "형태나 유전체에서 이전에 규명된 어떤 바이러스 계통과도 유사성을 지니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초록 번역 아래). 길이는 1.2마이크로미터나 됐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비교하면 크기는 1000배, 단백질 생산 유전자는 200배나 큰 규모다.


흔히 바이러스는 작디작은 박테리아(세균)와 비교하더라도 그 크기가 매우 작은 데다 유전체도 단순하고 원시적이어서, 예컨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기껏 0.1마이크로미터 길이에다 유전자도 10개 안팎에 불과한데, 이와 비교하면 이번에 발견된 것은 '거대한' 바이러스인 셈이다. 연구자들은 새로 발견한 바이러스가 이전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생명 현상을 보여주리라는 기대에서 ‘판도라 바이러스’(학명 Pandoravirus salinus)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바이러스는 칠레 해안의 퇴적층과 오스트레일리아 호수에서 채집한 아메바에서 분리한 것이다.


대형 바이러스는 이번에 처음 발견된 게 아니다. 지난 10년 동안 대형 바이러스들이 잇따라 발견되면서 바이러스는 작고 단순하다는 통념도 서서히 깨져 왔다. 2003, 2004년에는 작은 박테리아 크기의 바이러스가 ‘미미 바이러스(Mimivirus)’라는 이름으로 보고되면서 큰 관심을 끌었다. 미미바이러스는 당시에는 생각하지도 못한 규모인 무려 979개 유전자를 갖춘 1.18메가 염기쌍의 유전체를 지녔다. 2011년에는 이런 기록을 깨고 1.2메가 염기쌍에 1120개 유전자를 지닌 더 큰 바이러스(Megavirus chilensis)가 발견돼 보고됐다. 이렇게 대형 바이러스들이 잇따라 보고되면서, 이들이 기존 생명 계통도에서 진핵생물, 세균, 고세균으로 이뤄진 3대 분류에 없는 새로운 생명영역(domain, 域)을 구성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00pandoravirus2.jpg » 과학저널 '사이언스'의 표지. 그런데 이번 판도라 바이러스의 유전자 분석 결과는 그런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보인다고 연구팀은 해석했다. 연구팀은 이 바이러스 유전자 가운데 6퍼센트만이 이전에 바이러스 유전자로 보고된 것들과 일치하지만 나머지 93퍼센트 이상은 알려지지 않은 유전자라고 보고했다. 이런 연구 결과는 "논쟁 대상이 되고 있는 [진핵생물, 세균, 고세균 외에] 제4 생명영역의 존재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논문을 실은 <사이언스>도 뉴스 보도에서 “대형 바이러스가 생명의 계통도를 흔들다”라는 제목을 달아 판도라 바이러스 발견 소식을 전했다.


연구팀은 <뉴욕타임스>와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지금 바이러스 학설과 관련해,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있다고 생각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대형 바이러스들이 지금까지 알려진 생명 계통에 들지 않았던 세포 미생물이 진화를 거듭해 현재 모습에 이르고 원형이었던 미생물은 사라진 게 아닌가 하는 추측과 가설을 제시하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이런 대담한 가설은 앞으로 새로운 과학 논쟁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론, 적어도 최근 10년 새 대형 바이러스의 잇단 발견으로 바이러스는 작고 단순하다는 통념이 흔들리고 있으며, 대형 바이러스가 이례적인 존재가 아니라 꽤 널리 분포하고 있을 가능성도 제기되는 것은 분명한 흐름으로 보인다.


논문 초록

다음은 판도라 바이러스를 보고한 논문의 초록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10년 전, 가시아메바(Acanthamoeba)를 감염하는 바이러스인 미미바이러스(Mimivirus)의 발견은 바이러스 세계에 있는 상한선을 재평가하게 만들었다. [예전에는] 기생 박테리아 수준인 입자 크기(0.7마이크로미터 이하)나 게놈 복잡성(1000개 유전자 이하)에서 상한선이 바이러스 세계에 존재한다고 여겨졌다. 이런 거대 바이러스들(the Megaviridae)의 다양성은 세계 곳곳의 다양한 해양 환경과 그곳에 연관된 퇴적물에서 채집된 시료를 통해 평가돼 왔다. 우리는 두 가지 거대 바이러스를 분리했음을 보고한다. 하나는 칠레 중앙 해안에서 얻었으며 다른 하나는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 부근 민물 연못에서 얻었다. 그것들은 형태나 게놈에서 이전에 규명된 어떤 바이러스 계통(families)과도 유사성을 지니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알 모양을 한 마이크로미터 단위 크기의 이들 바이러스 입자는 각각 적어도 2.5메가 염기쌍과 1.9메가 염기쌍의 디엔에이 유전체를 지니고 있다. 이들 바이러스는 ‘판도라바이러스’로 명명된 속(Pandoravirus genus)의 첫번째 구성원이다. 판도라 바이러스라는 이름은 이전에 알려진 마이크로유기체와 유사성이 없다는 의미를 담고, 또한 앞으로 이 바이러스 연구에서 나올 것으로 기대되는 놀라움의 의미를 담은 것이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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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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