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연구자들의 "청춘 스케치"

연구의 맛과 멋을 배우는 젊은 연구자들이 실험실에서, 연구실에서, 그리고 사회와 만남에서 얻는 에피소드와 경험, 그리고 생활의 단상을 전합니다.

실험실 동료 뒷담화의 예의

박혜정의 ’센티멘털 과학자의 유쾌해지기’


[2] 가십 문화

* gossip ['ga:sip] 1. (남의 사생활에 대한) 소문, 험담 2.수다, 한담

gossip11.jpg » 우스개 이야기의 소재로 가십은 동료와 친밀도를 높일 수도 있고 스트레스 해소의 통로가 될 수 있지만, 그 강도가 심해지면 연구생활을 황폐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림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마인드'의 특집 기사 일러스트의 일부. 출처/ Frank T. McAndrew. Can Gossip be Good? Scientific American Mind, October/November 2008. http://faculty.knox.edu/fmcandre/SciAm_Gossip.pdf


악산 자락의 연구실에서 제일 좋은 것은 계절마다 변하는 숲을 고개만 돌리면 바로 창 너머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앙상한 나무줄기 사이로 텅텅 빈 땅이 보이던 숲은 어느덧 나뭇가지에 무성하게 나뭇잎이 돋고 나무줄기를 타고 나무의 키만큼이나 올라간 넝쿨까지 합세해 음영을 달리한 푸르름이 빈틈없이 차 있다.


바람이 불 때는 나뭇잎들이 스치는 바람 소리가 연구실 책상까지 흘러 들어온다. 엉겨붙어 있는 저 나무들은 제각기 다른 모양새를 지니고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이리저리 흔들리고 바람 없이 햇빛 쨍쨍한 날이면 잎사귀들도 햇빛을 반사하며 반짝반짝 빛낸다.



연구실 생활, 가십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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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하게 엉켜 있는 숲속 나무들은 제각기 어우러져 규칙이 있는 듯 없는 듯 제자리를 지키며 계절마다 자기 모습을 변화무쌍하게 발현한다. 어느 누구도 이들 존재 자체를 의심하지 않고 자연스러움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더욱이 이 속에서 사람들은 위안을 받기도 한다. 연구실 건너편의 잘 어우러져 있는 무성한 나무숲을 쳐다보고 있자면 언제부터인가 연구실의 공공의 적이 된듯이 사사로운 일상까지도 사람들의 가십 거리로 전락해버린 나는 왜 저 나무들처럼 눈에 띄지 않는 자연스러움으로 인정받을 수 없게 되었는지, 한동안 자기 연민에 빠지곤 한다.


올 8월 말이면 박사학위 받은 지 딱 일 년째다. 석사과정부터 몸 담았던 이 실험실을 그 일 년째 되는 날 그만두기로 했다. `나는 선망의 나라 미국의 어느 유수한 연구실에서 가기로 결정이 되었고, 동료들의 부러운 시선과 축복 속에 여름쯤 출국을 하게 되었다.…’ 이 정도쯤 돼야 모범적인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을까? 사실은 과학자로서 도약할 만한 새로운 연구실을 찾아 옮기게 된 것은 아니다. 다만 8월31일에 그만 두기로 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 ‘위대한’ 박사학위를 이 연구실에서 손에 쥐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연구실에서 하루하루 견디는 것조차 힘이 들었고 과학자로서 더 성장하고 내 꿈을 위해 도약하고 싶다는 열망을 품는 것조차 고문처럼 느껴질 정도가 됐다. 하지만 지금까지 해온 연구를 그 시간 안에 마무리해야 하겠기에 하루하루 버텨내고 있다. 오히려 다른 것보다도 미래에 대한 꿈조차도 꾸고 싶지 않은 현재 내 모습이 더 견디기 힘들다.


지금 이런 상황이 나약해빠진 어정쩡한 과학자의 읊조림으로 들릴지 모르겠으나 많은 연구실에 이런 무기력감과 절망에 빠져 기량을 펼치지 못하는 연구자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내게는 무심히 지나치기엔 위험성이 도사린 가십(gossip)이 연구실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것 중에 하나였다.


여느 사회 집단과 마찬가지로 연구실도 다양한 사람이 모인 곳이라서 그만큼 인간관계에서 주고받아야 하는 것들이 많이 있다.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실험을 시행하고 그 결과를 예측하고 또한 분석하는 일을 주로 하는 실험실의 일상에 갇혀 지내다 보면 사람들은 다소 예민해지고 폐쇄적인 성향을 가지게 될 수도 있다. 연구실 스트레스를 푸는 데 가장 본능적이면서도 위안을 주는 것은 다름 아닌 ‘가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연재 글에서는 우스개 이야기의 소재로 동료와 친밀도를 높일 수도 있고 스트레스 해소의 통로가 될 수 있지만, 그 강도가 심해지면 연구생활을 황폐하게 만들 수도 있는 ‘가십’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왜 가십에 빠져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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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자기보다 보잘 것 없다고 생각되는 사람에 대해서는 관심도 가지지 않아요. 무언가 있어 보이고 자기보다 얻는 것이 많아 보이는 사람들만 비난해요. 그리고 계속해온 그런 뒷담화는 이제는 거의 습관적이 된 것 같고, 왜 미워하는지, 비난해야 되는지 이유도 없는 것 같아요. 습관적으로 누군가를 함께 공격해야 하는 그런 공감대로 그 사람들은 친밀함을 유지하는 것 같아요.”


어느 후배의 말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는 가십의 문화가 심해졌을 때에 얼마나 연구실의 분위기를 해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솔직해지자. 지금까지 오랜 동안 연구실에서 일하며 경험했던 것은 연구실 구성원 누구나 예외 없이 한 번씩은 가십의 먹잇감이 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내릴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잠잠해진다. 그러나 때로는 정도가 심해지기도 한다. 때로는 가십의 주인공은 마치 연구실의 연예인이나 된 듯이 그 일거수일투족이 동료들의 관심거리면서 수근거림의 대상이 되고, 가십의 주인공은 연구실에서 특별한 사람, 별난 사람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나 역시 비슷하게 가십의 주인공이 된 경험을 했고, 장기간 이런 경험이 계속되면서 내 스스로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내리며 평가받고 비난받아야 할 정도로 내가 이상한 사람인지, 나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이상한 건지 판단조차 되지 않았다. 사람들의 가십거리가 되어 품평받지 않아도 되는 그런 범주에 들어가야 하는 것일까? 눈에 띄지 않게 숨어야 할까? 동료들의 시선을 느낄 때마다 당당히 맞서기보다는 위축되는 마음을 감추기 힘들었다. 따가운 시선은 때론 공포스럽게도 느껴져 연구실에서 제대로 실험하기도 어려웠다.


왜 연구실 내에서 학문적 토론을 하는 모습보다도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 가십성 비평을 하는 모습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질까? 사람들은 가십의 이야기에 왜 이렇게 끌려 들어가는 것일까? 실제로 우리 일상 대화를 살펴보면 절반 이상이 가십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왜 가십에 흥미를 느끼고 몰두하는지에 대해 심리학, 사회학, 인류학 분야 학자들이 최근 들어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진화적 적응의 관점에서 본 가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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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십이란 지금 대화하는 자리에 없는 특정 사람의 개인적인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며, 그 이야기는 재미있고 편안하며 일상적인 것들이다.”  진화적 적응(특정 환경에서 생명체가 생존하고 번식할 수 있는 능력을 향상시키는 유전적 특징)의 관점에서 가십의 기원에 대해 살펴보면, 현대 사회 생활에서 가십의 필요성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진화적 적응 관점의 설명은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선사시대의 우리의 조상들은 작은 규모로 무리 지어 생활을 했으며, 같은 무리 안에서는 서로의 얼굴을 다 알 정도의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였다. 한 무리 안에 외부인(이방인)의 출몰은 드문 일이었다. 끊임없는 외부의 침입에 대해서는 대항하면서 한 무리 내의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협력을 해야 하는 구조였다. 그러나 한 무리 내에서 제한된 자원을 나눠 생활을 영위해야 하는 경우 무리 내의 사람들이 서로의 경쟁자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이 때 그 경쟁자가 믿을 만한 사람인지 알아두고, 종족 유지를 위해 건강한 결혼 상대자가 누구인지 잘 파악할수록, 무리 내에서 동료들과 우정이나 협력, 가족 관계를 잘 유지하는 법을 터득할수록, 적자생존에 유리해진다. 이런 환경에서 생존을 위해 다른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끼칠 수 있거나 예견할 수 있는 사회 지성과 다른 사람 간의 사적 관계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자연선택에서 유리한 방안이다. 다른 사람의 삶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일수록 생존에 더 유리하고 이런 개인의 유전자는 세대를 통해 전해진다. 따라서 다른 사람에 대한 정보나 가십에 무심해지는 것은 본능을 거스르는 것 만큼이나 쉽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의 기질과 과거 행동을 상세히 기억해두는 것이 이와 관련된 사회적 기술이다.’



이런 진화적 적응 관점을 연구실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

 

‘연구실 내 생존이란, 좋은 연구주제를 선점하고 그에 대한 좋은 논문을 많이 내는 것일 게다. 덤으로 다른 동료보다 더 많은 급여를 받는 것 정도일 것이다. 연구실 내 동료들과는 한정된 연구  주제와 연구 재료를 나눠서 써야 한다. 이런 것들을 연구자들에게 나눠주고 평가하는 사람은 연구책임자(교수)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구책임자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능력을 갖춘 과학자라는 인상을 각인시켜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연구실 내 동료는 생존을 위해 협력해야 하는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한정된 자원을 나눠 써야 하는 경쟁자다.’



연구실에서 생존 방식은 구성원의 신분에 따라 다르다. 일반적인 경우로 보면, 학생에게는 학위를 받기 위한 요건을 갖춰 학위를 받는 것이 중요한 목표가 될 것이고, 대개 석사후연구원의 경우에는 연마한 기술을 이용해 주어진 연구를 수행하며 안정적 급여를 받는 것이, 박사후연구원의 경우에는 높은 급여를 받으며 지금보다 더 높고 안정적인 정규직 자리를 모색하기 위해 업적 쌓기가 생존의 목표일 것이다.


이렇게 다른 생존 목표 아래에서 동료들과 조화로운 의기투합으로 구성원들이 서로 ‘윈-윈’이 될 수 있겠지만, 불안정한 사회 구조가 그대로 투영되는 연구실이라면, 풍요로운 안정감보다 동료들 사이에 위기감과 불안감이 증폭될 수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가십은 더 많이 돌게 되고, 누군가는 지나친 가십의 사냥감이 된다. 누가 졸업을 먼저 하느냐를 두고 벌이는 날카로운 신경전, 연구원 사이의 노동 대비 급여 차이의 비교 등등에서, 결국은 연구실의 최종 결정권자인 교수님의 인정을 받아야 이뤄낼 수 있는 것들에 대한 투쟁이 눈에 보이지 않게 일어난다.



가십 문화에 대한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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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을 위해, 연구실 내 사람들의 행동을 살피고 누군가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서로 간의 끊임없는 대화(가십)를 통해 직접적 경험을 통하지 않고서도 경제적으로 적과 아군을 구분할 수 있다. 가십을 나누는 것 자체가 서로 깊은 신뢰를 가지고 있다는 신호가 되고 거기에다 비밀을 공유하면 그 결속력은 더 강화한다. 또한 가십을 통해 연구실 연구원들 가운데 표절이나 다른 심각한 문제에 대해 초기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 잘못된 행위에 대한 예방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보통 연구실 자체가 ‘의자놀이’를 하는 것처럼 제한된 자리를 두고 경쟁해야 하는 곳이 아닌데도 서로 견제하며 적과 아군의 구분이 필요해 그 수단으로 가십을 이용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것은 이미 연구실 공동체 의식과 동료애 자체가 깨어져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그 원인은 균형 잡히지 않은 질서로 운영되는 연구실 시스템에 의한 불만과 불안일 가능성도 있다. 또한 동조하는 동료 무리와 함께 연구실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데 가십을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2010년 1월 <사이언스>의 '사이언스 커리어(Science Carreers)' 코너에 연구실에 만연한 가십에 대한 글이 실린 적이 있다. 이 글을 보면 우리나라 연구실뿐만 아니라 세계의 여느 연구실에도 가십 문화를 둘러싸고 비슷한 환경과 문제가 도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글에 실린 다음과 같은 경고는 새겨들을 만하다.


  • 될 수 있으면 가십을 피하라. 만약 동료들과 가십을 하게 된다면 사려 깊게 해라 :지나치게 개인적인 일이나 빈정되거나 적대적인 내용의 가십을 함께 나누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탈무드>는 가십이 세 갈래로 갈라진 혀와 같다고 말하며 가십은 살인보다 더 위험하다고 경계한다. 살인은 한 사람을 죽이지만, 가십은 가십을 퍼뜨리는 사람과 방관하며 듣고 있는 사람과 그 가십의 주인공이 되는 사람 모두를 죽이는 것이라고.
  • 만약 가십을 듣게 된다면, 나름의 판단 기준을 가져라 : 누군가에 대한 가십을 하는 사람의 말을 들을 때, 그 사람의 동기를 파악해야 한다. 그 행위가 그 사람의 권력이나 지위를 올리는데 유리한 것인지에 대해 파악할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잘못되거나 증명되지 않은 정보로 자기 자신의 향상이나 조작을 위해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네가 듣는 모든 것을 믿지 마라. 언제 어떻게 가십에 대해 선을 그을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 마음을 상하게 하는 내용의 가십에 휘말리게 될 때, 조심스럽게 그 가십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다른 주제로 환기를 시키거나 긍정적인 형태로 대화의 수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
  • 가십의 문제점은 어느날 가십의 주인공이 바로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 가십 문화에는 순기능도 있지만 가십이 왜 위험하거나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하는지를 보여주는 직접적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내가 바로 악의적인 가십의 표적이 되었을 때, 가십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는 그 싸움에서 일단 한 걸음 물러서 있는 것이 좋다. 공공의 장에서는 가십에 대해 무시하고 과학(학문)에 집중하고, 오히려 내가 들은 것(가십)으로 내가 좀 더 효율적이고 전문직업인으로 일하는 원동력으로 이용하라. 그리고 친한 친구를 모아 좀 더 명확하게 나 자신을 변호하고 그 가십에 대해 반박하고 그것이 비공식적인 방법으로 퍼뜨려질 수 있도록 부탁하는 것이 좋다. 자기 스스로 방어하려 할수록 가십에 대한 해명보다 더 큰 의문을 가지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런 가십, 지나친 가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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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 제롬 바코(Jerome Barkow)의 말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보에 관심을 가진다고 한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 또는 경쟁자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이야기꺼리를 찾아 그것을 나쁜 방향으로 이용하고 싶어 하고, 나보다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의 부정적 정보에 대해서는 별 쓸모가 없어 흥미를 가지지 않는다. 반대로 협력자의 긍정적인 정보는 좀 더 퍼뜨리려고 하고 경쟁자의 좋은 이야기에는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의 이익을 증대하는 데 전혀 도움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가십이라는 것이 우리가 사회적 동물로서 살아가기 위해 만들어진 진화의 산물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왜 가십에 끌리며 열광하는지에 대해 어느 정도는 관용의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그 행위 자체가 지나치지 않도록 늘 조심하는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도록 서로 경계심이 필요하다. 또한 불가피하게 악의적인 가십에 휩싸인 동료가 어느날에는 나 자신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며 가십이라는 양날의 칼을 조심스레 다뤄야 할 것이다.


연구실에서는 사람에 따라 학위과정 자체가 무척 더딜 수 있고, 좋은 연구결과를 낸다는 것도 그저 열심히만 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 또 연구결과가 논문인용지수(Impact Factor)의 잣대로 평가될 때, 내 능력과 노력이 그만큼 가시적인 결과를 내지 못할 수도 있다. 정형화한 인생의 시간표나 과학자의 시간표 같은 것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교수 자리를 얻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업적과 이미지 관리 같은 스펙 쌓기에 몰두하는 것이 과학자가 추구할 삶의 방법론은 아닐 것이다.


얼마 전에 <오마이뉴스>에서 덴마크인의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에 대한 인터뷰 형식의 기사를 흥미롭게 읽었다 (“행복지수 1위, 덴마크의 비결을 찾아서 ⑦- 미국인 저널리스트의 덴마크 취재기”) 덴마크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요소로는 ‘평등’과 ‘헤게(Hygge)’라는 문화를 꼽는다고 한다. 평등하면 남 눈치를 보지 않고 남을 부러워하거나 질투하는 일이 없고, 남보다 잘 되는 것도 목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헤게’라고 불리는 ‘느긋하게 함께 어울리는 문화’가 평등 문화가 결합되어 덴마크 사람들이 행복을 많이 느끼며 산다고 한다.


팍팍하고 치열한 연구실 공기에 싸여 긴장감을 가지고 서로 경계하며 살피는 듯한 분위기보다도 설사 조금 모자라더라도 남을 존중하며 서로 비교하지 않으면서 느긋하게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연구실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굳이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진 가십보다도 각자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와 흥미로운 연구주제 토론과 같은 것으로 대화의 주제가 옮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참고한 자료


Irene S. Levine. Mind Matters: Gossip in the Lab--Proceed with Caution. Science Careers in Science, January 2010

http://sciencecareers.sciencemag.org/career_magazine/previous_issues/articles/2010_01_29/caredit.a1000012


Frank T. McAndrew.  Can Gossip be Good? Scientific American Mind, October/November 2008
http://faculty.knox.edu/fmcandre/SciAm_Gossip.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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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정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생화학교실, 박사후연구원(줄기세포학)
외로이 홀로 떠있는 구름, 가난하고 어진 선비(孤雲), 고상한 운치(高韻)를 지닌 센티멘털 과학자.
이메일 : hyepark@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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