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연구자들의 "청춘 스케치"

연구의 맛과 멋을 배우는 젊은 연구자들이 실험실에서, 연구실에서, 그리고 사회와 만남에서 얻는 에피소드와 경험, 그리고 생활의 단상을 전합니다.

태어난 딸을 보며, ‘가족과 연구, 삶의 균형’을 생각하며

신동화의 “유럽에서 포닥으로 살기 -이탈리아”


[4] 내 딸이 태어나다

00daughter1.jpg » 딸아이 사진. 태어난 지 나흘 쯤 되었을 때 병원의 신생아 집중진료실에서 수유를 하기 위해 들어갔을 때 찍은 사진입니다. ‘배냇웃음’이라고 하던데, 저는 그렇게 웃는 아이 모습이 흐루시초프 닮았다고 했다가 아내에게 혼났습니다.

이 태어났습니다!

2013년 6월 1일 오전 11시57분에 딸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저는 5월 31일에 아내한테서 ‘진통’이 온다는 연락을 받고 허겁지겁 비행기 표를 구해서 두바이를 거쳐 오후 4시 쯤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는데, 오후 7시가 되어서야 아내와 아이가 있는 병원에 가서 아이를 처음 봤습니다. 아내의 진통이 시작되었다는 말에 서둘러 비행기 표를 구했다가 병원에서 ‘가진통’인 것 같다며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비행기 표 예매를 미루었다가 불과 몇 분 차이로 그 표를 다시 예매하지 못한 탓에, 아이가 태어난 지 다섯 시간 뒤에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표를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밀라노 공항에서 두바이로 가는 항공편을 기다리며 통화할 때만 해도 아내의 목소리는 힘들지 않은 듯했고, 저도 그다지 불안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두바이에 내린 뒤 연결편을 기다리며 전화를 했더니 상황은 일변하여 진통이 심해 무통 주사를 맞아야 한다며 쥐어짜는 목소리로 간신히 말하는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마음이 몹시 불안해졌습니다. 정말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아내가 아이를 낳고 있을 때 제가 두바이에 있을 줄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인천공항에 도착해 휴대전화 심카드를 갈아 끼우니 어머니와 장모님이 보내주신 아이 사진이 도착해 있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초음파 사진과 꼭 닮았더군요. 갓 태어난 아이 사진을 보면서 초음파 장비회사 엔지니어들이 장비를 참 잘 만드는구나 하며 감탄했습니다.



홀로 모든 것을 해냈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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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병원에 도착했더니 아내는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걸어다닐 수도 있고 밥도 잘 먹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아이가 문제였는데 기관지가 아직 충분히 단단하지 못해서 울거나 젖을 빨 때처럼 숨을 많이 들이쉬는 상황에서 기도가 좁아지는 증상을 보인다고 하더군요. 전에 잘 모르고서 연료전지 실험을 할 때 충분히 단단하지 않은 튜빙을 펌프에 연결했다가 유속이 빨라지면 튜빙이 쪼그라들었던 생각을 하면서 아이의 증상을 이해했습니다. 의료진이 일정 기간 금식을 하며 관찰하는 게 좋겠다고 해서 아이는 신생아 집중진료실에 있어야만 했습니다. 지금은 무사히 퇴원했지만 대략 한 주일 동안 정해진 시간에만 아기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것 말고도 아기가 태어나기까지 아내는 정말 많은 일을 혼자 감내해야 했습니다. 과로로 인해 조산의 위험이 있었을 때 아내는 아기가 위험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회사 일을 해야 하는지를 두고 정말 괴로워하기도 했습니다. 법과 제도는 임산부의 모성 보호를 위해 정비되어 있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결과적으로 아내는 언제 분만할지 모르는 상태에서도 야근이나 휴일 근무를 해야 했습니다. 저는 정말 분통이 터졌습니다. 하지만 지구 반바퀴 밖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정말로 아내에게는 미안한 마음 뿐이고, 이 글이 실릴 때쯤 이탈리아로 돌아가야 하는 제 마음은 여전히 가볍지 않습니다. 



“가족이야말로 진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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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태어날 즈음에 한 가지 난감했던 것은 서울로 오는 휴가를 받아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아내 혼자서 살던 원룸형 오피스텔에서 방이 있는 아파트로 이사하기로 했는데, 아이가 태어나는 일정에 될수록 맞추었는데도 6월 말에 이사하는 일정 밖에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원래 출산 예정일이 6월 7일이었으므로 6월 말에 이사까지 마무리하고 이탈리아로 돌아가려면 적어도 3주 정도는 휴가를 내야 했습니다. 첫 아이는 예정일보다 늦게 태어날 확률이 높다는 말을 듣고, 원래 비행기 표를 예정일에 가깝게 잡아두었는데 아이가 한 주일 정도 일찍 태어나면서 아내가 산후조리원에 있는 동안에 제가 이사 문제를 해결하려던 계획도 수정해야 했습니다.


아무튼 5월 초에 제가 연구생활을 하는 토리노공대(‘폴리테크니코 디 토리노’) 연구실의 지도교수와 논문과 관련해 면담을 하던 날, 제 휴가에 관해 말하기로 마음먹었지만 거의 한 달이 될지 모르는 휴가 일정에 대해 말을 꺼내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우물쭈물하며 아내의 출산 예정일에 관해 이야기를 꺼내자 지도교수가 곧이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족이야말로 진짜 일(real buisiness)이라네. 연구란 자네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반쯤은 취미(half hobby) 아닌가? 기간이나 여기 일은 신경쓰지 말고 필요한 만큼 다녀와도 좋네.”



“취미로 학교 다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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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daughter22.jpg » 처가에서 아이와 함께. 산후조리원에 아이를 보러온 미혼의 후배는 제가 전에 다른 이의 신생아를 보러 산후조리원에 갔을 때 했던 것처럼 ‘사실 예쁜지 잘 모르겠어’라고 생각하는 듯이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이제 아빠가 되어 보니 우리 아기는 정말이지 너무 예뻐 보이네요. 물론 그 시점에 저를 위로하고 걱정을 덜어주려는 뜻에서 한 말이었겠지만 “연구란 반쯤은 취미다”라는 말은 두고두고 되새겨 보게 됩니다. 사실 돌이켜보면 한국에서는 이런 말과는 정반대의 말을 더 많이 들으며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취미로 학교 다니냐?” 이건 우리나라 학생들이 꾸지람을 들을 때에 자주 듣는 말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저도 선배랍시고 연구실 후배들에게 비슷한 말을 했던 적이 있으니까요. 자신이 맡은 일을 진지하게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다른 사람의 태도를 걸고 넘어간 것은 조금은 지나치지 않았나 합니다. 제대로 된 결과이기만 하다면 각자 좋아서 하는 일이니 재미삼아 하는 것도 굳이 잘못은 아니니까요. 그렇게 연구를 일로만, 진지하게만 대할수록 오히려 연구의 재미와 기쁨을 점차 잊게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또 모두가 자신의 진짜 일은 회사나 공부뿐이라고 말한다면, 가정의 행복은 누가 고민해야 하는 걸까요? 훌륭한 대학, 훌륭한 회사를 위해 구성원의 노력이 필요하듯이, 행복한 가족을 위해서도 그것을 ‘진짜 일’로 받아들이는 누군가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제가 과연 제가 연구나 실험을 할 때만큼 주도적으로 출산과 육아의 과정에 임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저는 아내가 사라는 것을 사고, 하라는 것을 했지, 제가 무엇이 아기에게 필요하고 어떻게 해야 아기를 건강히 키울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무지했다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내의 경험이나 지식도 아직 깊지 않아 제가 공부하면 곧 따라잡을 수 있을 듯 하지만(^^), 아이 키우는 일을 단지 재미삼아 할 수는 없는 없는 일이니 그 어려움은 그 무엇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것입니다.

 

 

‘일’과 ‘가족’의 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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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교수의 말은 이탈리아 사람들의 생각을 얼핏 보여주는 듯합니다. 대체로 남유럽 사람들은 가족, 친구 등의 인간관계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좀 덜 개인적이라고들 이야기합니다. 저야 개인적으로 아는 북유럽 사람도 없고, 국가 간의 문화 차이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 비교한다는 게 무리일 수 있지만, 제 개인 경험으로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상당히 사교적이고 다정다감하다고 느껴집니다. 결혼해서 부모님과 함께 산다는 사람도 상당수 있는 걸로 보아 가족관계가 끈끈하다는 것도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토리노공대는 이탈리아에서 꽤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연구기관이고, 이곳 교수들은 대체로 상당히 바쁩니다. 우리보다 먼저 산업화되었고,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문제들, 그러니까  아내가 회사에서 겪어야 했던 것과 비슷한 일들을 먼저 겪은 나라에서 바쁜 시절을 살아온 교수가 “가족이야말로 진짜 일이다”라고 말한 것은 지금의 제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줍니다.


저도 일과 삶의 균형을 잘 잡으며 스스로 하는 모든 것을 재미있게 할 수 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딸이 태어난 일이 제게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큰 일이어서, 예정에 없었지만 딸 이야기와 저의 가족생활, 연구생활에 관해 글 한 편을 쓰게 되었습니다. 다음 글부터는 애초 쓰려던 집필 계획으로 돌아가, 이탈리아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사는 연구생활의 이야기를 주로 쓰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리고, 예쁜 딸을 낳아준 아내와 다시 건강을 찾은 딸아이 재인이에게 사랑한다고 전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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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화 이탈리아 토리노공대 박사후연구원, 컴퓨터공학
이탈리아 토리노공대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있다. 공인된 분류를 따르자면 설계자동화 분야를 연구하고 있고, 구체적인 전공은 내장형 컴퓨팅 시스템의 저전력 설계 기법인데 사실은 납땜부터 코딩까지 가리지 않고 다했다. 취미랑 전공이 비슷해서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메일 : donghwa.shin@polito.it      
블로그 : http://mimosa.snu.ac.kr/~zira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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