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의 "논문 읽어주는 엘레강스 펜클럽"

생물학 연구의 모델동물인 ‘예쁜꼬마선충(별칭 엘레강스)’을 연구하는 다섯 명의 젊은 연구자들이 발생과 진화를 비롯해 생물학의 굵직한 주제를 담은 최신 논문을 소개한다. 실험실 안과 밖의 진지하고 유쾌한 소통을 시작한다.

내시의 장수 비결은 청춘 호르몬?

[4] 생식과 수명, 그리고 호르몬


생식과 수명에는 강한 연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식과 수명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는 것일까? 어떤 물질이 이들 사이에 연결고리를 만들어내는 것일까?


00elegance_Foutainyouth.jpg » 젊음을 유지하려는 인간의 꿈은 여러 이야기를 낳았다. 진시황은 불로초를 열망하고, 알렉산더 대왕은 청춘의 샘을 찾아 헤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청춘의 샘(Fountain of Youth)". 작가/ Lucas Cranach the Elder (1472–1553), 출처/ Wikimedia Commons

이번 글의 주제 논문


Shen Y et al. (2012) A steroid receptor-microRNA switch regulates life span in response to signals from the gonad. Science 338, 1472-6.



서고금을 막론하고 큰 관심사인 ‘무병장수’의 꿈은 그 열망의 세월에 걸맞게 다양한 신화와 속설 그리고 예술작품을 낳았습니다. 그 중 오래된 속설 하나는 성기능이 없거나 거세당한 사람이 장수한다는 것입니다. 이 속설은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노화 이론에 의하더라도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정된 자원을 지닌 개체가 유전 정보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생식세포에다 자원을 많이 투자하다 보니 한번 쓰고 버려질 체세포를 유지하는 데 충분한 자원이 배분되지 않아서 노화가 발생한다는 이른바 ‘일회용 체세포(Disposable soma)’ 이론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최근 이 이론의 흥미로운 사례가 될 만한 결과를 국내 연구진이 발표했습니다. 고려대 이철구 교수 연구팀은 조선시대에 거세당한 환관(내시)들의 족보인 양세계보와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의 기록을 살펴보니 환관의 수명이 양반보다 평균 14년 넘게 긴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습니다. 심지어 조사 대상이 된 81명의 환관 중 3명(약 4%)의 수명은 100세 이상이었습니다. 2012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상국 중 가장 높은 100세 비율을 지닌 프랑스에서도 그 수치가 0.04% 정도에 불과한 것과 비교하면 이것이 얼마나 높은 비율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보면 생식과 수명에는 강한 연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생식과 수명은 어떤 방식으로 서로 연관되는 것일까요? 어떤 물질이 이들 사이에서 연결고리를 만들어내는 것일까요? 한 예쁜꼬마선충 연구팀이 이 연결고리를 규명하는 연구에 뛰어들었습니다.



생식과 수명의 상관성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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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의 일부를 차지하는 무언가의 기능을 알고 싶을 때 쉽게 쓸 수 있는 방법은 그 부분을 없앴을 때 전체에 나타나는 변화를 관찰하는 것입니다. 어떤 유전자의 기능을 알고 싶을 때 그 유전자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개체에서 어떤 변화와 차이가 나타나는지 관찰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생식과 수명의 관계를 규명하는 연구에서도, 가장 먼저 해볼 실험은, 다른 모든 것이 같은 상황에서 생식 능력만을 완전히 제거했을 때 수명에는 어떤 변화가 있는지 관찰하는 일입니다. 199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학의 신시아 캐년(Cynthia Kenyon) 교수 연구팀은 예쁜꼬마선충의 생식 능력을 완전히 제거하는 실험을 수행하였습니다.


예쁜꼬마선충의 경우에, 네 개의 생식 전구세포(precursor)에서 완전한 생식기관과 생식세포(정자, 난자)가 만들어집니다. 즉, 불과 네 개의 세포가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거듭해 수많은 세포로 구성된 생식기관을 만들어 냅니다(그림 1). 예쁜꼬마선충은 길이 1mm밖에 안 되는 작은 크기이기 때문에 생식기관만 외과적으로 적출하기는 매우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이 연구팀은 생식기관의 시작점인 네 개의 전구세포를 발생 초기단계에서 레이저로 제거하는 실험을 고안하게 됩니다. 그 결과 생식기관이 온전히 제거된 개체를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00elegance4_1.jpg » 그림 1. 예쁜꼬마선충의 생식기관 발생. 출처/ [1]

그런데 이 개체는 예측과 달리 수명의 변화를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요? 연구팀은 생식기관이 통째로 제거된 상황이 개체에 좋지 않은 어떤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생식기관은 온전히 유지하면서 생식 능력만 제거된 개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생식 전구세포 중 2개는 생식기관을, 나머지 2개는 생식세포를 만든다는 연구결과는 이미 나와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레이저를 이용해 4개의 생식 전구세포 중에서 생식세포를 만들어내는 2개의 세포만 제거하고서 수명 연관성을 관찰하는 실험을 수행했습니다. 그 결과 생식세포만 제거된 개체에서는 수명이 무려 60%가량 늘어났습니다(그림 2).

00elegance4_2.jpg » 그림 2. 생식 전구세포 제거 실험. 출처/ 좌 [1], 우 [2]

이렇게 모든 생식세포를 제거하면 그 개체는 더 이상 자손을 남길 수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수명 증가는 자손을 포기하는 방식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을까요? 이 연구팀은 혹시 생식세포 중에서도 특정한 세포만을 제거해 수명이 증가하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우선 정자를 만들지 못하는 개체와 난자를 만들지 못하는 개체를 대상으로 수명을 각각 측정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정상적인 개체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습니다.


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생각해보지요. 생식세포는 정자와 난자만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발생이 끝난 정자와 난자 이외에도 지속적인 분열로 정자와 난자 세포를 만들어내는 세포 공급 담당자인 생식 줄기세포가 따로 존재합니다. 흥미롭게도 정자, 난자는 남겨두고, 생식 줄기세포만을 제거했을 때 수명 증가가 관찰되었습니다(그림 3). 반대로 생식 줄기세포의 분열이 과도하게 일어나면 도리어 수명이 감소하는 현상도 나타났습니다. 또한, 이미 정자와 난자가 충분히 생성된 성체시기에 생식 줄기세포를 제거하더라도 수명 증가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00elegance4_3.jpg » 그림 3. 생식 줄기세포 제거 실험(glp-1 : 생식 줄기세포가 제거된 예쁜꼬마선충). 출처/ [3]

따라서 예쁜꼬마선충에서는, 생식기관이 온전히 존재하는 상태에서 생식 줄기세포가 제거되었을 때 수명이 증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자손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고도 수명을 늘릴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정자, 난자가 아니라 생식 줄기세포가 사라졌을 때 수명이 증가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생식 줄기세포는 어떠한 정보, 즉 분자신호를 개체에 제공하고 있는 것일까요?



젊음을 유지하는 ‘청춘 호르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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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모든 것을 가지고 있던 수많은 권력자도 결국 늙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몸을 한탄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진시황이 불로초, 알렉산더 대왕이 청춘의 샘을 찾아 헤맸다는 유명한 일화는 이런 생각을 대변할 것입니다. 이렇게 청춘을 되돌리는 물질을 찾아 헤매는 행동의 바탕에는 자신의 늙음이 ‘청춘을 유지하는 물질의 상실’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이 있었을 겁니다.


이러한 생각 가운데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소녀의 피를 마셨다는 클레오파트라의 이야기가 현대에 들어와 생물학 실험으로 재탄생했습니다. 2005년 <네이처>에 실린 논문에 의하면 이 이야기가 과학적으로 어느 정도 신빙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논문에서는 나이 든 쥐와 젊은 쥐의 혈관을 외과적 접합으로 이어 두 쥐의 피가 서로 통하게 만들었습니다(그림 4). 그 결과 나이 든 쥐의 근육과 피부 세포가 젊음을 되찾았습니다. 흥미롭게도 혈관이 연결된 젊은 쥐의 세포가 노화하는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결과로 미루어 보면 나이가 들수록 노화물질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젊음유지 물질이 사라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00elegance4_4.jpg » 그림 4. 나이든 쥐와 젊은 쥐의 혈관 접합 실험. 출처/ [4]

렇다면 혈액에서 사라진 ‘젊음 유지 물질’은 무엇일까요? 유력한 물질은 혈액을 따라 흐르는 호르몬입니다. 호르몬은 우리 몸의 한 부분에서 분비되어 혈액을 타고 표적기관으로 이동하는 일종의 화학물질입니다. 예쁜꼬마선충의 몸에도 나이가 듦에 따라 양이 감소하는 호르몬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디에이(DA: Dafachronic Acid)라는 호르몬입니다.


예쁜꼬마선충은 네 단계의 유충기를 거쳐 성체가 됩니다. 각 단계를 넘어가기 위해서는 단계에 맞는 적절한 유전자의 스위치가 켜지고, 꺼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조절은 요즘 주목받고 있는 이른바 ‘꼬마아르엔에이’인 미르(microRNA)에 의해 이루어집니다(상자글 1).


네 단계의 유충기 중 특히 두 번째에서 세 번째 유충기로 넘어가는 선택은 선충의 생존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두 번째 유충기가 환경에 대한 정보를 취합해 ‘대안적 유충 단계(dauer)’로 들어갈지 말지 결정하는 단계이기 때문입니다. 대안적 유충 단계로 들어가면 길게는 6개월가량 먹지 않고 버틸 수 있기 때문에 충분한 먹이가 없는 야생에서 생존하는 데에는 매우 중요한 대안의 단계입니다. 만약 두 번째 유충이 환경을 좋은 상태로 인지하면 DA 호르몬이 합성됩니다(그림 5). DA 호르몬은 특정 미르들(미르-84와 미르-241)의 발현을 유도해 예쁜꼬마선충이 세 번째 유충기로 들어가도록 합니다.

00elegance4_5.jpg » 그림 5. 환경에 반응하여 발생을 조절하는 DA 호르몬. 출처/ [5]

세 번째 유충기에 최대치를 보이는 DA 호르몬은 점차 감소하여, 선충의 생식이 끝날 때쯤이면 몸에서 완전히 사라집니다. 즉, 나이가 듦에 따라 점점 사라지게 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혹시 이 호르몬이 바로 진시황이, 클레오파트라가 찾아 헤매던 ‘청춘을 유지하는 물질’이 아닐까요?


[상자글1] 마이크로RNA, 미르(microR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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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정보를 암호화하고 있는 이중나선의 DNA는 단백질로 번역되기 이전에 단일 가닥의 RNA로 전사되는 과정을 거칩니다. 단일 가닥의 RNA에는 유전정보가 전사된 전령 RNA(messenger RNA)를 포함한 다양한 종류의 RNA가 있습니다. 그 중 마이크로RNA(미르, miR)는 20~25개의 핵산으로 구성된 단일가닥의 RNA 분자입니다. 미르는 예쁜꼬마선충 연구를 통해 처음 보고되었고, 사람의 몸에도 수백 개나 존재합니다. 각각의 미르는 특이적인 염기서열을 가지게 되는데 이 서열과 상보 결합가능한 RNA는 미르의 표적이 되어, 미르와 이중가닥을 형성하게 됩니다. 이렇게 이중가닥이 된 RNA는 주로 분해되어 단백질로 번역되지 못하게 됩니다. 미르는 다양한 유전자의 발현을 시기와 상황에 따라 껐다 켰다 하는 데 주로 쓰입니다.

00elegance4_box1.jpg » 마이크로RNA 작동 기작. 출처/ http://classygenes.wordpress.com/2011/11/28/11/



예쁜꼬마선충의 청춘 호르몬 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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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예쁜꼬마선충의 수명 연구로 돌아가 봅시다. 생식 줄기세포가 제거된 개체에는 대체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요?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아담 안테비(Adam antebi) 교수 연구팀이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정상 개체에서 세 번째 유충기 이후에 점점 감소하는 DA 호르몬의 양이 생식 줄기세포가 제거된 개체에서는 세 번째 유충기 이후에도 급격히 증가하는 경향을 보입니다(그림 6). 증가한 호르몬은 성체가 된 첫 날 정점을 찍고, 점차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생식 줄기세포가 제거된 개체는 성체가 된 지 10일이 지난 뒤에도 정상 개체에서 가장 높은 시기, 즉 세 번째 유충기에 나타나는 수준의 호르몬 양을 유지합니다.


따라서 생식 줄기세포가 제거되면 원래 감소해야 하는 DA 호르몬이 오히려 증가하고, 나이가 들어서도 증가한 양을 유지한다는 것이지요. 또한 DA 호르몬을 합성하는 유전자가 망가지면 생식 줄기세포가 제거되어도 수명이 증가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DA 호르몬은 생식 줄기세포가 수명을 늘리는 데 반드시 필요한 물질 입니다.

00elegance4_6.jpg » 그림 6. 시기에 따른 DA 호르몬의 경향성. 출처/ [6]

개체에게 DA 호르몬의 양이 증가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DA는 벌레가 두 번째에서 세 번째 유충기로 성장하도록 해주는 호르몬입니다. 따라서 나이가 들어서 DA 호르몬의 양이 증가한다는 것은 성장기에만 일어나던 일이 나이든 개체에도 영향을 끼침을 의미할 것입니다. 흔히 성장기에는 몸을 자라게 하는 유전자뿐 아니라 생식 가능한 시기까지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관여하는 유전자의 발현도 증가합니다. 그렇다면 성장기에 작용하던 호르몬이 다 자란 성체에도 작용한다면 어떤 일을 하게 될까요? 성체는 더 이상 성장을 할 수 없으므로 아마 DA 호르몬이 주로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유전자의 발현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지 않을까요?


예상대로 성체에서 증가한 DA 호르몬은 예쁜꼬마선충의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구실을 하는 전사인자인 DAF-16을 조절합니다(상자글 2). DAF-16은 영양분이 충분한 환경에서는 세포질에 머물다가 불충분한 영양분 때문에 인슐린의 양이 줄어들면 세포핵으로 들어가 다양한 스트레스 저항 유전자의 발현을 증가시켜 몸이 그 환경을 버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구실을 합니다.


여기에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DA 호르몬이 DAF-16을 조절하기 위해 새로운 단백질을 발현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 번째 유충기로 성장하는 데 스위치로서 작용했던 미르들을 이 대목에서 다시 이용합니다. 성장기에 중요한 구실을 했던 미르들이 성체에서는 다른 기능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성체에서 다시 발현된 미르들은 DAF-16이 세포핵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는 AKT-1이라는 단백질의 발현을 저해합니다.


합해보면 나이가 늘어나면서 줄어드는 DA 호르몬이 생식 줄기세포가 제거된 조건에서는 다시 증가하고, 이 호르몬에 의해 DAF-16이 핵 안으로 들어가 다양한 스트레스 저항 유전자의 발현을 유도해 개체가 좀 더 오래 살 수 있게 돕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DA 호르몬이 클레오파트라가 그토록 원하던 젊음을 유지해주는 물질일까요? 안타깝게도 정상적인 예쁜꼬마선충에게 DA 호르몬만 먹인다고 해서 수명이 증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생식 줄기세포의 제거로 말미암은 수명 증가에는 여러 물질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즉, DA 호르몬과 아직 알지 못하는 다른 물질의 작용이 동반되어야 수명 증가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예측할 수 있습니다.


[상자글 2] 전사인자 DAF-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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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 대학의 신시아 캐년 교수 연구팀은 하나의 유전자 조작만으로 예쁜꼬마선충의 수명을 2배나 늘린 결과를 <네이처>에 발표했습니다. 이후에 많은 연구자가 수명을 조절하는 유전자를 규명하려고 예쁜꼬마선충 연구에 뛰어들었습니다. 이 연구자들은 예쁜꼬마선충이 지닌 거의 모든 유전자의 기능을 대상으로 수명 연관성을 실험하고 측정했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수명을 조절하는 것으로 보이는 대부분 유전자가 DAF-16이라는 단백질의 기능에 의존적이었습니다.

DAF-16은 전사인자(다양한 단백질의 기능 중 흔히 알려진 효소작용이나 구조유지 작용이 아닌, 다른 유전자의 발현을 돕는 기능을 하는 단백질)로서 인슐린에 의해 조절되는 신호전달 체계에서 최하위에 있는 단백질입니다. 다양한 이유로 영양분의 섭취가 줄어들면 체내 인슐린의 양이 줄어듭니다. 인슐린이 줄면 세포질에서 DAF-16이 핵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는 구실을 하는 AKT-1 단백질의 활성이 사라져, DAF-16이 핵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핵으로 들어간 DAF-16은 다양한 스트레스 저항성 유전자의 발현을 증가시킵니다. 이런 신호전달체계는 대표적으로 예쁜꼬마선충이 안 좋은 환경을 만나 대안적 발생단계(dauer)로 들어갈 때 중요한 구실을 합니다.

00elegance4_box2.jpg » 영양분에 따른 DAF-16 조절기전. 출처/ [7]



사람도 DA호르몬을 가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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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되었든 DA 호르몬이 예쁜꼬마선충에서 생식과 수명을 연결하는 데 중요하게 작용하는 물질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도 DA 호르몬과 같은 호르몬이 있을까요? 사실 인간은 이름부터 생소한 DA 호르몬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러나 아직 실망하기는 이릅니다. 성호르몬으로 잘 알려진 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 그리고 테스토스테론은 DA 호르몬과 상당히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DA 호르몬처럼 생식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는 호르몬입니다. 흥미롭게도 이 호르몬들도 젊은 나이에 정점을 찍고, 나이가 듦에 따라 감소하는 경향성을 보입니다.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30대 초반까지 높은 수준을 유지하다가 점차 떨어지고,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은 생리주기에 따라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다가 폐경 이후에 낮은 수준을 유지합니다.


또한, DA 호르몬이 성장에 필수적인 호르몬인 것처럼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도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호르몬입니다. 실제로 남성의 갱년기나 여성의 폐경이 초래하는 근육량 저하, 신체 기능 저하와 같은 증상들은 성호르몬이 수행하던 성장 관련 기능의 저하와 관련이 깊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증후군들에 대해서는 성호르몬이 치료제로 쓰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사실들로 미루어보면 성호르몬이 DA 호르몬처럼 수명을 늘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생깁니다.


그러나 이들 호르몬이 지닌 성장 촉진 기능은 민감한 특정 기관에서는 암 발생률을 올린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또한 동물모델을 이용한 연구에서 남성호르몬이 수명을 감소시킨다는 보고가 있으며, 여성보다 남성의 수명이 짧은 이유가 남성호르몬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러한 보고에 따르면 성호르몬, 그 중에서도 남성 호르몬은 수명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이런 논쟁적인 상황으로 미루어 보면 성호르몬이 인간의 수명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결론을 내리기는 아직 어려워 보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성호르몬은 예쁜꼬마선충의 DA 호르몬과 비슷한 점을 많이 지니고 있고 비슷한 기작을 이용하고 있을 가능성도 물론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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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미세한 유전적 변화로 더 오래 살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데도 예쁜꼬마선충은 왜 딱 그 정도의 수명을 가지도록 진화하였을까요? 무한한 젊음을 누릴 수는 없을까요?


우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고정관념 하나를 깰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죽음’ 하면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는지요? 병상에 누운 노인의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흔히 우리의 고정관념에 늙음과 죽음은 서로 연관돼 혼재하는 이미지로 존재합니다. 그러나 잠깐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듯이 늙음이 죽음의 전제조건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 우연한 교통사고로 숨지는 사람의 수만 해도 한 해 5000명 가까이 된다고 합니다.


물론 지금은 의학과 보건·위생의 발전으로 자연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우연히 숨지는 비율이 낮아져 평균 수명이 80세에 육박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수명의 큰 변화가 일어난 최근 100년은 진화의 시간으로 비추어보면 매우 짧은 순간입니다. 인간은 역사 대부분의 시간에 우연한 죽음에 훨씬 더 가까이 있었습니다. 인간뿐 아니라 야생의 많은 생물도 같은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죽음이 흔한 상황에서 지금까지 자신의 유전자를 전달할 수 있었던 개체들은 어떠한 전략을 취했던 것일까요?


아마도 자신이 죽을 확률이 높아지기 전에 자신의 유전자를 될수록 많이 다음 세대로 전달하기 위해 발버둥쳤을 겁니다. 생존경쟁 속에서 조금은 더 건강하고, 생식을 잘하는 개체가 선택되는 과정이 반복되었을 것입니다. 그 결과 다음 세대로 자신의 유전자를 전달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유전자들만 지속적으로 선택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개체가 생식을 끝낸 이후 바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가 무한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생식 이후의 시기에도 좋은 유전자로 잘 조절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유전자에게는 자기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성공적으로 전달한 이후의 삶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이기적 유전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미 복제를 통해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채웠기 때문에 운반자에 불과한 몸은 더 이상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유전자를 성공적으로 전달한 이후에 발생하는 변화는 자연선택의 철저한 무관심 속에서 무작위적인 선택을 받게 됩니다. 무작위적인 선택의 결과, 몸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유전자들도 같이 선택되어 몸이 점점 닳는 노화가 나타나게 됩니다.


렇듯 노화는 야생의 높은 사망률 속에서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잘 전달하기 위한 사투에서 빚어진 필연적인 산물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언젠가 늙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항노화(anti-aging)의 홍수 속에서 인생의 한 시기에 불과한 젊음이 과도하게 칭송되며, 늙음이 마치 질병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영화 <은교>에서 “너희 젊음이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는 유명한 대사처럼 늙음을 늙음 그 자체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자신의 유한성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유한한 우리이기에 이 순간 하나하나가 소중한 것이 아닐런지요.



함께 참고한 문헌



[1] Hsin H and Kenyon C (1999) Signals fromthe reproductive system regulate the lifespan of C. elegans, Nature 399, 362-366.

[2] Mukhopadhyay A et al. (2007) Reproduction and longevity: secrets revealed by C. elegans. Trends in Cell biology 17, 65-71.

[3] Arantes-Oliveira et al. (2002) Regulation of Life-Span by Germ-Line Stem Cells in Caenorhabditiselegans. Science 295, 502-505.

[4] Rando TA et al. (2012) Aging, rejuvenation, and epigenetic reprogramming: resetting the aging clock. Cell 20, 46-57.

[5] http://www.age.mpg.de/science/research-labs/antebi/research/dauer-formation-and-longevity/

[6] Shen Y et al. (2012) A steroid receptor-microRNA switch regulates life span in response to signals from the gonad. Science 338, 1472-6.

[7] Lant B, Storey KB. (2010) An Overview of Stress Response and Hypometabolic Strategies in Caenorhabditiselegans: Conserved and Contrasting Signals with the Mammalian System. Int J BiolSci 6(1), 9-50


Guarente L et al. Genetic pathway that regulate aging in model organisms. (2000). Nautre 408, 255-262.

Kenyon C et al. (1993) A C. elegans mutant that lives twice as long as wild type. Nature 2, 461-464.

Kirkwood TBL, Austad SN. (2000) Why do we age? Nature 408, 233-238.

Min K et al. (2012) The lifespan of Korean eunuch. Current biology 22, 792-793.

Yamawaki TM et al. (2010) The Somatic Reproductive Tissues of C. elegans Promote Longevity through Steroid Hormone Signaling, PLoS Biology 8(8): e1000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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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아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유전과 발생 연구실, 박사과정
실험보단 논문과 책읽는 것을 좋아하는 박사과정생입니다. 이야기 될 수 있는 과학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이메일 : kimchuna8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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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음의 작동을 보는 '신경망 시각화 기법' 어디까지마음의 작동을 보는 '신경망 시각화 기법' 어디까지

    논문 읽어주는 엘레강스 펜클럽이대한 | 2014. 09. 15

    '신경세포와 그 작동을 보다'칼슘은 우리 몸에서 뼈를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기본 원소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칼슘의 중요한 쓰임새는 그뿐이 아닙니다. 칼슘은 신경망에서 정보를 처리하는 매개 물질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

  • 바이러스와 인간, 경쟁과 공존의 경계에서 만나다바이러스와 인간, 경쟁과 공존의 경계에서 만나다

    논문 읽어주는 엘레강스 펜클럽성상현 | 2014. 08. 12

    인간유전체 속에 숨어 있는 바이러스의 비밀생명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에도 인간은 바이러스에 끊임없이 시달리고 공격받고 있습니다. 인간은 바이러스를 정복할 수 있을까요? 이번 글에서는 단순한 질병학을 넘어 바이러스와 인간 사이에 벌...

  • '길들여짐'의 슬픈 유전학'길들여짐'의 슬픈 유전학

    논문 읽어주는 엘레강스 펜클럽최명규 | 2014. 07. 07

    '실험실의 모델동물'사실 작물 재배나 목축을 통해 사람이 다른 생물의 유전체에 인위적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인류 역사에서 아주 흔한 일입니다. 그런데 목축업자가 아닌, 생물학자들도 그런 일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실험실에서도 비슷한 종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