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연구자들의 "청춘 스케치"

연구의 맛과 멋을 배우는 젊은 연구자들이 실험실에서, 연구실에서, 그리고 사회와 만남에서 얻는 에피소드와 경험, 그리고 생활의 단상을 전합니다.

대형망원경 관측시간 따내기, 하늘의 별 따는 심정

홍주은의 ‘천문학 연구생의 동서남북'


[2] 관측의 시작, 관측 제안서 쓰기

00astro33.jpg » 미국 키픽 국립천문대 전경. 사진/ 전이슬  


2011년 여름, 우리은하에서 약 3000만 광년 거리 떨어져 있는 어느 은하('M101')에서 초신성이 폭발했다. 3000만 광년은 천문학 하는 사람들한테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이고, 그렇게 가까운 은하에서 터졌기에 초신성은 매우 밝았다. 학교 안에 있는 지름 24인치(약 60 센티미터) 망원경으로도 관측할 수 있어 무려 6개월 넘게 후속 관측을 했다.


내가 관측 당번인 날에는 저녁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가면서 하늘을 한번 올려다 본다. 천체 관측을 하기에 날씨가 괜찮다는 판단이 서면 밥을 후다닥 먹고는 천문대로 돌아와 돔을 열었다. 이렇듯 교내 망원경은 날씨만 좋으면 언제든 곧바로 관측에 이용할 수 있어, 초신성처럼 시간에 따라 밝기(광도)가 변하는 밝은 천체를 모니터링 하는 데 꽤나 손쉽게 쓸 수 있다.


지난달 말에도 강력한 폭발을 일으킨 천체('GRB 130427A')가 나타났는데, 교내 망원경으로도 충분히 관측해 등급을 구할 수 있었다. 수시로 밝기가 변하는 천체일 때에는 측정 시간대가 다양할수록 등급 판정을 할 때 여러 측정 자료가 쓰이기 때문에 교내 망원경으로 찍은 자료도 연구용으로 가치가 있다.

00astro1.JPG » 서울대 제2 광학천문대('신천문대'). 24인치 망원경이 있다. 사진/ 전이슬


관측시설 이용하기

00dot.jpg

하지만 연구를 하다보면 때때로 이미 갖고 있는 자료 외에 다른 관측 자료가 추가로 필요할 때가 생긴다. 미국 하와이에 줄지어 서 있는 대형 망원경처럼 지름이 큰 망원경이 필요하거나 지구 대기의 영향을 받지 않는 허블 망원경 같은 우주망원경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때로는 가시광선이 아닌 적외선이나 엑스선, 자외선 관측처럼 다른 파장의 자료가 필요하기도 하며 이미지는 물론 스펙트럼이 필요할 때도 있다.


문학 연구를 하다 보면 각양각색의 망원경과 장비가 필요한데, 필요한 장비를 교내 망원경처럼 언제든 사용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교외의 다른 시설을 이용하려면 비용을 부담하던지 훌롱한 관측제안서를 내어 선택되어야 한다.


돈을 내고 관측할 때에는 망원경 구경이 클수록 비용은 기하급수로 늘어난다. 하룻밤에 10만 원에서 100만 원 하는 소형 망원경이 있는가 하면 구경이 3~4미터급 망원경에는 하룻밤 시설 이용비가 1000만 원에 육박하기도 한다. 10미터급 대형 망원경의 사용료를 따지자면 하룻밤에 1억 원의 비용이 들기도 한다. 연구비가 아무리 넉넉해도 이처럼 어마어마한 액수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국내에선 보현산천문대와 케이브이엔(KVN) 전파망원경 같은 관측시설이 관측 제안서를 받아 관측 시간을 허용하고 있다. 얼마 전 한국천문학회는 케이브이엔 21미터급 전파망원경의 2013년 전반기 관측 제안서를 받는다는 공고를 냈다. 케이브이엔(Korean VLBI Network)은 서울 연세대, 울산 울산대, 제주 탐라대에 있는 석 대의 21미터급 전파 망원경을 잇는 한국 우주 전파관측망이다. 서울과 울산, 제주를 잇는 거대한 삼각형으로 전파간섭계를 만들 수 있다. 전파망원경 1대의 구경은 21미터이지만 세 곳을 이으면 케이브이엔의 분해능은 무려 500 킬로미터나 되는 대형 전파망원경이 되는 셈이다.보현산천문대에서는 고분산 분광기를 갖춰 별의 금속 함유량 연구를 비롯해 갖가지 연구를 할 수 있다. 국내의 많은 연구진이 관측 제안서를 내어 보현산천문대를 이용한다.


국 관측 시설의 경우에는, 자기 나라 사람만이 이용할 수 있는 관측소도 있지만 외국 사용자한테 특정 시간대를 내주는 관측소도 있다. 어마어마한 돈 대신에 연구의 잠재력을 평가해 관측 시간을 내어 주는 것이다. 한국 연구자들도 관측 제안서를 통해 관측 시간의 확보를 노려보지만 대형 망원경이나 우주망원경의 사용 경쟁은 치열하다.


망원경마다 관측 제안서를 지원하는 방식이 각양각색이다 .그래서 웃지 못할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한다. 연구실 선배는 컴퓨터 바탕화면에 미국 시계, 유럽 시계를 띄워놓고 밤새 관측 제안서를 작성했지만 마감시각에 5분 늦어 제출하지 못한 적이 있었다. 며칠 뒤에 다른 망원경 관측 지원의 공모 마감 10분 전 연구실에서는 그 누구도 숨소리조차 내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가 연출됐다. 어떤 관측소는 마감시각보다 관측 제안서를 늦게 냈지만 받아줬다며 선배는 그날 무척 행복했다.


허블 우주망원경 같이 관측 경쟁이 큰 망원경은 국내 연구진이 관측 시간을 따낸 것만으로도 화제가 된다. 대형 망원경이나 우주망원경의 관측 시간을 따낸 사람을 보고 있으면 사법고시에 합격한 것처럼 대단하게 느껴진다.

00astro2.JPG » 미국 키픽 국립천문대에는 전파망원경부터 광학망원경까지 많은 망원경들이 있다. 사진/ 전이슬



‘신천그녀’의 3월

00dot.jpg

관악산의 3월 아직 패딩 의류를 걸쳐야 오돌오돌 추위에 떨지 않을 만한 초겨울 날씨였다. 버스를 타고 관악산을 한참 올라가면 둥그런 철제 돔이 보인다. 제2 광학천문대, 우리는 ‘신(新) 천문대’ 또는 줄여서 ‘신천’이라 부른다. 천문대 건물은 천문대 겸 연구실이라서 이곳에서는 낮에 연구하고 밤에 관측할 수 있다.


지난 3월에 이런저런 일로 신천을 자주 갈 수 없어 연구실의 내 옆 자리에 앉은 언니와 대화를 자주 나누지 못했다. 수다나 맘 놓고 실컷 떨까 싶어 “언니 요즘 바빠요?” 라고 물었다. “그러게, 지금 3월이잖아...” 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 3월이었지! 3년 내내 하루에 12시간씩 바로 옆에서 서로 보다 보면 별말 안 해도 상대가 어떤 상태인지 알아차리게 되는 것 같다. 그에게 3월은 꽤나 의미심장하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옆자리 언니의 별칭은 자칭 ‘신천그녀’다. 그는 바쁘지 않은 날이 별로 없지만 놀러가고 싶을 만큼 날씨가 좋은 3월과 9월에는 특히나 더 바쁘다. 연구 분야의 특성상 그한테는 구경이 크고 분광기가 달린 망원경이 필요한데 3월과 9월에는 그가 쓰고 싶은 망원경 관측 제안서의 제출 마감일이 몰려 있다.


그는 우주 초기(적색편이 5.5~7 또는 우주 나이로는 약 7억 년에서 10억 년 정도)에 있는 ‘퀘이사’를 찾고 있다. 현재 우주 나이는 137억 년가량이다 (우주 나이는 우주상수를 어떻게 가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지금 퀘이사를 찾는다는 것은 137세인 사람이 유치원 시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흐린 기억으로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것과 같다. (*적색편이: 멀어지는 천체에서 나오는 빛은 도플러 효과에 의해 파장이 길어진다. 가시광선으로 생각하면 파장이 적색쪽으로 이동한다. 멀리 있는 천체일수록 멀어지는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에 적색편이는 커진다.)


퀘이사는 보통 은하의 스펙트럼에서는 볼 수 없는 강한 방출선을 내보인다. 강한 에너지를 내뿜는 엔진은 중심부에 있는 초거대 블랙홀이다. 퀘이사는 중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에너지 때문에 아주 멀리 떨어져도 볼 수 있으며 이미지로 보면 꼭 별처럼 생겼다. 그가 퀘이사를 찾는 이유는 우주 초기의 재이온화 과정과 초기 초거대 블랙홀의 생성과 진화를 퀘이사를 통해 연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구에 있는 모래알 수보다도 많은 별 중에서 퀘이사를 찾아내기란, 백사장 모래에 숨어 있는 바늘 찾기도 아닌 모래알과 섞여 있는 흑설탕을 찾는 것과 비슷하다. 무수히 많은 모래알 중에서 모래 하나하나의 밝기와 색 등의 정보를 구하고 흑설탕의 색과 비슷한 모래를 찾아놓는다. 하지만 이렇게 걸러진 모래가 진짜 흑설탕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색만 흑설탕과 비슷한 모래인지 뼛속까지 흑설탕인지 알기위해서는 스펙트럼이 필요하다.


그가 골라놓은 ‘흑설탕’ 후보의 스펙트럼을 얻기 위해서는 장시간의 분광 관측이 필요하다. 그는 세계 각지의 분광기를 쓰기 위해 관측 제안서를 제출한다.


측의 시작이 관측 제안서라면 관측 제안서의 성공적인 끝은 관측이다. 연구실의 다른 선배가 관측 제안서를 통해 하와이 마우나케아 산 정상에 있는 3미터 적외선 망원경(IRTF)의 관측 시간을 얻은 적이 있었다. 관측소는 하와이에 있지만 연구실에서 원격으로 관측을 수행했다. 이 관측에서 ‘신천그녀’도 연구 대상 천체의 영상을 몇 개나 찍을 수 있었다. 관측 시간을 얻은 사람이 특정 시간에 찍을 천체가 없을 때엔 다른 사람에게 관측 시간을 선물하기도 한다.


다행히 신천그녀도 자신이 제출한 여러 관측 제안서 중 몇 개가 통과돼 관측 시간을 따냈고 지난 1월에는 미국 애리조나에 있는 천문 연구단지(KPNO)에 다녀올 수 있었다. 그곳은 전파 망원경부터 광학 망원경까지 다양한 망원경들이 모여 있는 연구단지로 유명하다. 하지만 날씨와 여러 상황 탓에 그가 추려낸 ‘모래알 속의 흑설탕’ 후보를 다 찍을 수는 없었다. 계절별로 볼 수 있는 별자리가 따로 있듯이 각 천체는 지구에서 볼 수 있는 시기가 따로 있기에 이미 잡힌 관측 자료가 더 있는데도 그는 분기별로 계속 관측 제안서를 제출하고 있다. 다가올 9월에도 아마 관측 제안서를 작성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얼마 전 그는 퀘이사 후보의 스펙트럼 관측 자료를 얻으러 또다시 미국과 칠레로 떠났다. 하루 빨리 그가 발견된 천체 중 가장 오래된 ‘흑설탕’을 찾기를 기원한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지만

00dot.jpg

2011년 2월 어느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일본 센다이에 있는 도호쿠대학교를 방문했다. 학회가 본격적으로 열리기 전에, 비슷한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끼리 발표하는 자리가 있었다. 참석한 교수와 대학원생, 박사후연구원의 발표가 모두 다 끝나고 학부생 발표가 이어졌다. 학회의 비공식 일정이라서 뚜렷한 연구 결과가 없더라도 모든 학생이 자신이 하는 연구 진행 사항을 소개하고 발표했는데, 한 학부생 발표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연구는 아직 초반 단계였고 대학원생에 비해 서투르다는 느낌을 많이 주었다. 하지만 그 학생이 사용하는 자료를 보고서는 다들 깜짝 놀랐다. 하와이에 있는 8미터급 스바루 망원경에서 얻어낸 자료였다. 아무리 일본이 소유한 망원경이라 하지만 아직 학부생인데 8미터 대형 망원경의 자료를 쓰다니! 부러우면 지는 거라 하지만 부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10미터급 대형 망원경 자료를 써본 대학원생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소유한 대형 망원경이 없다 보니 관측 제안서로 대형 망원경 사용 승인의 문턱을 넘기는 어렵다. 나라가 소유한 대형 망원경이 있다고 해서 자유롭게 그 망원경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 나라 연구자가 쓸 수 있는 확률은 아무래도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측 제안서는 좋은 관측 자료를 얻기 위해 천문학자에게는 필수적인 요소다. 관측 제안서 하나에 울고 웃고, 번번이 관측 실패에 좌절하다가도 좋은 망원경 관측 시간을 얻게 되면 짜릿해 하는 선배에게 진심으로 축하를 보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3~4미터급 망원경의 관측 시간을 따낸 일이 축하할 일이 아닐 정도로 일상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저 다양한 망원경을 확보해 다양한 관측 자료를 얻어낼 수 있는 문턱이 조금은 더 낮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 구글
  • 카카오
  • 싸이월드 공감
  • 인쇄
  • 메일
홍주은 서울대학교 천문학과 박사과정, 대학원생
활동성 은하핵의 기작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는 천문학도. 퀘이사의 환경, 초거대 블랙홀의 성장과 은하진화에 관심이 많다. 죽기 전에 이집트 피라미드는 꼭 직접 보고 싶다.
이메일 : jueunhong.astro@gmail.com      
블로그 : http://ju-on.tistory.com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눈물 짓는 의사’: 좀 더 인간적인 의학을 그리며‘눈물 짓는 의사’: 좀 더 인간적인 의학을 그리며

    청춘 스케치김준혁 | 2017. 05. 12

    김준혁의 이야기: ‘경계에 선 연구자의 유학생활’뒤늦게 의료인문학이라는 낯선 분야에 뛰어든 김준혁 님이 유학생활 동안에 겪는 ‘틈바구니에서 연구하기’, ‘경계선 위에서 생각하기’의 삶을 이야기한다. [2] 의사의 덕목, 공감과 감정억제 사...

  • 의학과 사회 중간에서, ‘의료인문학’의 길의학과 사회 중간에서, ‘의료인문학’의 길

    청춘 스케치김준혁 | 2017. 04. 14

    김준혁의 이야기: ‘경계에 선 연구자의 유학생활’뒤늦게 의료인문학이라는 낯선 분야에 뛰어든 김준혁 님이 유학생활 동안에 겪는 ‘틈바구니에서 연구하기’, ‘경계선 위에서 생각하기’의 삶을 이야기한다. [1] 연재를 시작하며▒ 2년 전, ...

  • 학술대회서 얻는 다채로운 배움, 아이디어, 인연…학술대회서 얻는 다채로운 배움, 아이디어, 인연…

    청춘 스케치양우석 | 2016. 06. 30

    양우석의 이야기: ‘한국에서 이공계 대학원생으로 살아가기’한국 이공계 대학원생의 생활을 대학원생 양우석 님이 개인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합니다. 비슷한 길을 걸었던, 걷고 있는, 걷게 될 사람들에게 조그만 공감과 도움이라도 되길 바라는 마...

  • 매력적이지만 순탄치 않은 이 길을 걷는 이유매력적이지만 순탄치 않은 이 길을 걷는 이유

    청춘 스케치양우석 | 2016. 05. 10

    양우석의 이야기: ‘한국에서 이공계 대학원생으로 살아가기’한국 이공계 대학원생의 생활을 대학원생 양우석 님이 개인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합니다. 비슷한 길을 걸었던, 걷고 있는, 걷게 될 사람들에게 조그만 공감과 도움이라도 되길 바라는 마...

  • ‘훌륭한 타자라고 어떻게 늘 홈런을 치겠어요?’‘훌륭한 타자라고 어떻게 늘 홈런을 치겠어요?’

    청춘 스케치양우석 | 2016. 04. 14

    양우석의 이야기: ‘한국에서 이공계 대학원생으로 살아가기’한국 이공계 대학원생의 생활을 대학원생 양우석 님이 개인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합니다. 비슷한 길을 걸었던, 걷고 있는, 걷게 될 사람들에게 조그만 공감과 도움이라도 되길 바라는 마...